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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vision] 김정은 체제에서 장성택의 위상과 역할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2-14 10:12:53  |  조회 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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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후계 체제의 출범과 함께, 김정은만큼이나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장성택이다. 많은 사람에게 김정은과 장성택의 미래관계는 제로섬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현재 양자는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고 있지만, 미래의 한 시점에 한 사람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마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우리가 알고 있듯이, 김정일도 알았고, 김정은도 알고, 장성택도 알고, 현재와 미래의 고위 권력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김정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예방행마를 두었을까?

 

이 글은 그동안 장성택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본다. 다음으로 그로부터 장성택의 정책 성향과 세력기반이 어떠한지 알아본다. 다음으로 단중기 및 중장기로 구분하여 김정은과 장성택의 관계를 예측해본다.

 

장성택의 행적

 

장성택은 1946년 1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3년 김일성대학에 입학하여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장성택은 1972년 평양시당 지도원부터 출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당원등록과장을 하고 외화벌이를 진두지휘하는 외교부 담당 과장을 거쳤다. 장성택은 1978년 동평양 외교초대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 측근들과 파티를 벌이다 보위부에 적발됐다. 이 때문에 그는 강선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추방되어 2년 동안 ‘혁명화’되어야 했다.

 

그는 1982년 당 청소년사업부 부부장이 되었으며, 1985년에는 당 청소년사업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1988년 12월에는 당 청소년사업부 부장이 되었다. 그는 이 직책으로 김일성청년동맹과 청년돌격대를 관장하면서,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개최를 위한 평양건설에 참여했다. 장성택은 김일성청년동맹을 이끌면서 2000년대 후반 들어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주요 인물들과 인연을 맺었다. 또한 청년동맹은 평양건설 자금 조달을 명목으로 외화벌이 사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은 평양건설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4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고, 같은 해 7월 당 청년 및 3대혁명소조 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1989년 6월에 당 중앙위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92년 12월에 당중앙위 정위원이 되었다. 장성택은 1995년 11월 조직지도부(행정담당) 제1부부장이 되었다. 그는 국가보위부, 사회안전성, 중앙검찰소와 최고재판소를 관장했다. 장성택은 39호실 산하 대성회사에도 관여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장성택의 두 형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장성택이 행정담당 제1부부장인 상태에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심화조 사건이 진행되었다. 사회안전상 채문덕은 ‘간첩색출’을 명목으로 한 심화조를 조직했다. 이 사건으로 중앙당 비서였던 문성술과 서윤석을 비롯 대략 25,000명이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감금당했다. 그런데 김정일은 2000년 마음을 바꾸어 먹고, 오히려 심화조 사건의 책임자들을 처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윗선이라고 할 수 있었던 장성택은 아무 일 없이 살아남았다.

 

장성택 부상 후 남북협력 종사일꾼 숙청

 

2000년대 장성택의 행적은 현재의 장성택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준다. 그는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2004년 2월경 다시 실각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비롯한 당시 주도 세력과 대립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종파행위’와 ‘권력남용’으로 비판받았다. 이 때문에 가택연금 또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이제강 주도 검열 등의 처벌을 받았다.

 

장성택의 재부상은 2005년 이후에 추진된 반(反)개혁 세력의 득세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초부터 박봉주의 개혁정책에 대한 반대가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서 2006년 1월 장성택은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부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시장 억압이 강화되는 가운데 장성택은 승승장구했다. 2006년 3월 장성택은 중국공산당 초청으로 중국 여러 도시를 순방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07년 10월 장성택은 행정부장으로 승진했다. 아울러 시장 억압은 대폭 강화되었다. 2008년 장성택은 평안북도 지역에 대한 강력한 검열을 주도했다. 주요 타깃은 군부 무역회사였다. 2008년 장성택은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빈번하게 수행했다. 장성택의 부상과 함께 2000~2007년 동안 개혁정책을 주도했거나 남북협력에 종사했던 일꾼들이 숙청되었다. 2008년 8월부터 10월 김정일 와병 시기 장성택이 대리하여 국정관리를 했다는 설도 있다. 이 시기 조직지도부에 대해 장성택의 행정부의 권세가 더 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성택의 재부상은 김정일의 의중에 따른 행마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김정일은 이와 같은 장성택의 부상을 허용했을까? 이를 자세히 보자. 김정일은 1995년 선군정치를 시작하면서, 당보다는 군부를 중시하는 정책을 폈다. 이는 김정일이 70년대와 80년대 당을 중시했던 것과 대비된다. 그런데 군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해졌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군부는 1995년 선군정치와 시장 확대 과정에서 영향력을 증대해왔고, 2002년에는 고영희 개인숭배를 시작하는 등 권력 세습을 가장 먼저 주창하고 나왔다. 후계자까지 군부의 영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이는 독재자에게 위험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일은 2005년부터 군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당세력을 키우기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업에서 2006년 복권된 장성택이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민간당료는 1995년 이후 선군시대 및 시장 확대 과정에서 강화된 군부의 영향력과 또한 번성한 시장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그 대안은 국가부문 재건과 그 비용조달 목적의 외화벌이 사업 진흥이었다. 이것이 성공하면 시장을 억압해도 된다. 이러한 목적에서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은 장성택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동시에 내부적으로 계획경제를 강조하고 시장활동을 현저히 억압한다. 장성택은 행정부장으로 승진한다.

 

그러나 2008년부터 한국과의 관계 악화는 군부가 다시 발언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민간당료를 대신하여 군부가 대남관계를 장악하고 군사화시켜버렸다. 군부 입김이 강화된 상황에서 2009년부터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이 가속화됨으로써, 군부의 후계 과정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되었다. 이는 군부에 대한 균형추로서 당세력을 키우고자 했던 김정일의 기획에 차질이 생긴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김정은, 총정치국서 행보 시작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민간당료파는 변화된 환경에 맞게 기존의 전략을 2009년 재추진했다. 2009년 11월 화폐개혁 실시 직후인 2010년 초 대풍을 앞세우고 국가개발은행과 10개년 경제계획이 공표되었다. 이를 보면, 화폐개혁 실시 또는 시장에 대한 강한 타격과 대풍을 앞세운 외화벌이 확대 계획이 상호 연관을 갖는 것을 알 수 있다. 외화벌이 파트너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설정되었다. 그 기초는 2009년 10월 원자바오의 평양방문에서 닦여졌다. 아울러 군부 무역회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계속되었다.

 

김정일은 2010년 6월 최고인민회의 개최 때까지 선군시대의 주요 공신을 모두 무력화시키면서, 장성택 계열에게 문을 다시 열어주었다. 군부 또한 물갈이되어 신군부가 등장했다.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통해 중앙당이 재정비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군시대에 소외되었던 장성택 계열의 인물이 대거 중용되었다.

 

김정일은 선군시대 구(舊) 공신을 무력화하면서, 신군부와 장성택 주도 민간당료를 새로이 밀어주었지만, 이들을 견제하는 것도 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2009년 초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을 본격화하면서, 김정은에게 무엇보다 ‘정보정치’를 주문했다. 김정은은 후계 체제 구축 시작 이후 군대에 대한 당적 감시기관인 총정치국에서 행보를 시작했다. 아울러 김정은이 정찰총국, 국가보위부, 보위사령부와 같은 공안공작기관을 가장 먼저 담당했다. 또한 2011년에는 김정일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이명수가 인민보안부장에 임명되었다. 김정일의 이러한 행마는 공안기관 및 사법기관을 담당해야 하는 당행정부장 장성택의 권한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첫 공식 직책으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 당중앙군사위 구성원은 대부분 군인들인데 여기에 장성택을 끼어 넣었다. 나아가 2011년 일년 내내 김정은은 함경북도, 양강도, 평안북도에 대한 이례적으로 장기간이며 강도가 높은 ‘비사투쟁(비사회주의 현상에 대한 투쟁)’을 직접 지휘했다. 사실상 김정은이 장성택의 행정부장 역할을 대리했던 셈이다.

 

이러한 사건 전개를 보면, 장성택 및 장성택 계열로 분류되는 인물들에게 부여한 임무와 권한은 내치(최용해 비서, 간부부장 김평해, 문경덕 평양시당비서)와 대남·대외관계(김영일 국제부장, 김양건 통전부장)라고 할 수 있다. 총참모장 이영호도 장성택 계열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영호의 직책상 구조적 이해관계가 민간당료그룹과는 다르다.

 

장성택은 김정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앞으로 김정은과 장성택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단중기적으로 확실한 것은 장성택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모시고 김정은 체계의 공고화에 협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명분상의 이유이다. 세습 후계자로서의 김정은의 선점효과 때문에, 그를 대신하여 다른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북한의 경우 이미 권력 세습의 선례가 있으며, 권력 승계에 대한 다른 어떤 방식의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와 같은 선점 이익을 가지고 있는 김정은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명분상 논리상으로 취약점을 극복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김정은을 위협하는 정변이 발생하는 것은 북한 정권을 크게 약체화시키고 기득권 세력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엘리트 내부에서의 협조를 얻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실질적 어려움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제거할 만큼의 세력을 결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김정일은 37년 이상 궁중암투와 권모술수의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았다. 김정일의 지위를 유지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장치는 엘리트가 서로 공모할 수 없도록 견제와 균형, 상호 경쟁, 철저한 감시와 상호 불신 조장의 메커니즘이었다. 비록 김정일이 추진한 김정은 후계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김정일의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는 장성택을 활용하면서도 그가 김정은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력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김정은이 공안을 담당하고, 군부와 민간당료가 상호 견제하면서 김정은에게 충성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마련해나가는 중에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

 

중장기적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장성택 계열의 세력이 강화될 수도 약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장성택의 이제까지의 정책 마인드를 요약해보면, 아마도 <공안 + 외화벌이>일 것이다. 현재 장성택 계열은 내부적으로 반(反)개혁 + 공안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특히 중국과의 외화벌이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이 노선의 핵심은 외화벌이 사업 성패 여부이다. 외화벌이만 잘되면, 개혁 안 하고 내부 억압정책을 유지하며 핵 문제에서 시간을 끌면서도 정권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렇지 못하면 내부 개혁도 해야 하며, 핵문제에서 쪼개 팔기(살라미전술)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이러면 대내외적으로 여러 복잡한 문제가 생길 것이며, 대내외 줄타기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서 장성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장성택 계열이 주도하는 외화벌이가 흥성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북한 정권의 돈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장성택과 그의 측근은 영향력을 현재보다 현저히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 반대의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또는 성공했다고도 실패했다고도 볼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장성택 계열과 다른 세력들 간 분쟁 가능성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장성택 계열과 북한 내 다른 세력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바오가 평양을 방문하여 북중 경제관계가 새로이 확대하는 초석을 놓았던 2009년 10월 이후의 중국은 2007년 10월의 한국만큼 헤프지 않은 것 같다. 북한정권이 붕괴하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북한정권에게 주어지는 원조자원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에 대해 중국은 훨씬 비관적 판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관계에서 아마도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장성택이 북중경제관계를 확대하려면, 중국이 요구하는 북한 제도와 정책 개선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장성택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국과 과거 유형의 큰 거래를 재개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 이것이 2009년 이후 실패한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 시도의 배후에 장성택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황이 진전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북측 내부에서 이를 혐오하는 세력이 노골적으로 대내외적으로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북한 내부 갈등은 앞으로 김정은 시대에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김정은도 장성택도 위험해질 수 있다. / NK비젼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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