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뉴스
[기획연재] 종북주의 해부하기-나는 주사파였다(2)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3-20 09:20:13  |  조회 419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이광백.jpg

▲ 김일성 주체사상 등에 입각해 활동해온 강원대 자주대오 등 3개 대학운동권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물품들.photo 연합
3월. 법과대학 학생회실.
설레임과 호기심 어린 눈을 두리번거리며 새내기 네댓 명이 학생회실에 들어왔다. 학생회 임원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온 이들이었다.

“학생들을 대표해 학우들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것이 학생회가 할 일이야. 이번에 임원을 뽑는 부서는 기획부, 총무부, 홍보부야.”

총무부장이란 사람이 말했다. 중학생처럼 앳된 가무잡잡한 얼굴에 둥근 뿔테 안경을 꼈다. 새내기 가운데 두어 명이 각 부서에서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물었고, 총무부장의 답변이 짤막하게 이어졌다. 새내기 하나가 손을 들고 자신이 일하고 싶은 부서를 말하려던 순간, 학생회실 문이 덜컹 열렸다.

선배 하나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터억 터억 들어오더니, 새내기들 앞 소파에 털썩 앉았다. 다짜고짜 물었다.

“세상의 주인은 민중인거야”
“야, 뭘 하려고 대학 들어왔냐?”
“…….”
“좋은 데 취직해보려고 왔냐?”
기습을 당한 새내기들은 대답할 틈을 찾지 못했다.
“취직 잘 해서 뭐 할래? 잘 먹고 잘 살래?”
“…….”
당황한 새내기들. 누구는 눈을 내리깔았고, 누구는 옆 자리에 앉은 학생회 선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야, 너희들이 먹고 입고 쓰는 것들, 누가 만들었냐? 그 옷, 누가 만들었어? 응? 너희들이 든 그 책 누가 만들었냐고? 책상이랑, 저기 있는 저 문, 칠판, 가방, 신발, 그리고 이 법학관 건물, 너희들이 아침마다 먹는 밥과 반찬, 다 누가 만들었어?”
“…….”
혼을 내는 것 같기도 하고, 가르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세상을 경멸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배설하는 듯한 분위기가 복잡하게 뒤섞인 질문이 이어졌다.
“몰라? 노동자, 농민이잖아. 민중이잖아.”
“…….”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학생회 총무부장이 말렸다.
“야, 그만해라.”
“가만 있어봐…. 그래서 세상의 주인은 민중인거야.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자, 농민들 어떻게 사냐? 일한 대가도 제대로 못 받고 천대받고 멸시 받고…이게 제대로 된 세상이냐? 갈아엎어야 할 거꾸로 된 세상이지….”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분노


거침없고 무례하게 일장연설을 하던 그 선배가 학생회실을 박차고 나간 후, 학생회 선배들은 그가 인문계열 수석으로 입학한 선배라고 귀띔했다.

똑똑하고 잘난 선배가 내뱉었던 ‘민중’이란 말이 그날 이후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그날 학생회 홍보부에 지원한 나는 선배들과 학습모임도 시작했다.

<전태일 평전>,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노동자의 철학>, <경제사학습>, <민중의 역사>와 같은 책을 읽었다. 3월 학생회실에서 무례한 인문계열 수석 선배가 던진 ‘민중’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해방’이란 말로 끝나는 책들이었다. 열심히 일하고도 가난한 사람들. 천대받는 사람들. 그들을 밟고 올라 권력과 돈을 움켜진 사람들. 불평등한 세상. 책속에서 그런 세상과 만날 때는 우울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하고 불평등한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가면서까지 투쟁하는 사람들. 그들을 만날 때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늦은 밤 학습을 끝내고 차가운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면 가난한 농사꾼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이 떠오르기도 했다. 성실함으로 악착같이 일해 온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검게 그을린 얼굴. 늘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시는 어머니. 뙤약볕 아래서 밭고랑을 기어 다니다시피 일 하시면서도 불안과 근심에 짓눌린 얼굴.

 

이념서적 읽으며 혁명의 길로 들어서


어렵게 빚을 내 등록금을 보내주시던 어떤 날. 그날은 초등학생 시절 어느 소풍날이 생각나기도 했다. 돈 천원을 주며 오백 원을 남겨오라시던 어머니 말씀을 어기고 다 써버린 그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오래 오래 울었었다. 가난이 서러워서였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심장을 칼에 베인 듯 아픈 설움이 밀려왔었다. 어머니의 삶이 슬퍼서였을 것이다. 소풍갔다왔던 그날 나는 돈 오백 원이 때론 눈물이 되기도 하고, 설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선배들의 확신에 찬 태도와 열변, 수많은 사회과학서적에 그려진 불평등한 현실과 그럴듯한 논리, 그리고 가난한 나의 성장환경이 섞여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빠르게 변해갔다.

‘세상의 주인은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노동으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살고 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가난하고 천대받는 것은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이 민중이 노동으로 생산한 것을 가로채기 때문이다. 민중의 권리를 억압하고 민중의 노동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이 사회의 본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행복을 강탈당한 민중을 사회의 주인으로 세워야 한다. 그러나 가진 자들은 그것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는다. 투쟁이 필요하다. 민중을 일깨워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가난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거꾸로된 세상을 부숴야 한다. 민중이 주인 되는 제대로 된 세상을 다시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혁명이다. 혁명의 길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그 책에서, 그리고 침을 튀겨가며 했던 토론에서,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방문하고, 논밭에서 농민과 함께 모심고 고추 따며 우리가 얻었던 세계관이다. 마르크스의 계급주의적 세계관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었다.

 

시각교정 통해 노동해방투사로 변신


선배들이 들려준 오월 광주는 새내기 대학생의 마음에 군사정권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심어주었다.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젊은이라면 반독재 민주화의 길에서 투쟁해야 한다는 결심을 갖게 했다. 그러나 반독재 민주화 의식을 심어주는 것만으로 사회주의 혁명가, 또는 종북주의 혁명가를 만들 수 없다. 세상을 보는 시각, 즉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보다 사회주의 사회가 더 우월하다는 사회관,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민중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세계관, 인류의 역사는 자본주의 사회 단계를 거쳐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역사관을 갖게 해야 했다.

세상을 볼 때에는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그 때 민중, 즉 계급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집요하게 배웠다. 이와 같은 단계의 교육과정을 ‘시각교정단계’라고 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막 생겨나던 20대 초반, 나를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세계관을 제거하고 계급주의적 세계관으로 시각을 교정하여 노동해방투사, 민중민주전사가 되었다. (다음호에서 계속)

   
157 北인권·탈북자 문제 해결 위해 여의도로 간다!  NKnet 12-04-10 4295
156 “북송된 탈북여성 고문·성폭행 피할 수 없어”  NKnet 12-04-10 5767
155 [전문가좌담]“생계형 탈북에서 체제불만형 탈북 증가”  NKnet 12-04-09 4422
154 김정일 유훈, 김정은 지시도 양강도에선 '먹통'  NKnet 12-04-09 4425
153 "김정은 女동생 여정 당대표자로 비공식 선출"  NKnet 12-04-09 4048
152 北희천발전소 개소식…"실제 전기 공급은 글쎄?"  NKnet 12-04-09 4525
151 종북 혁명가들에 대한 슬픈 기록 '진보의 그늘'  NKnet 12-04-05 6139
150 北, 협동농장 농장원에 농사비용까지 떠넘겨  NKnet 12-04-05 3417
149 北노동당, '이명박 사망' 헛소문 조직적 유포  NKnet 12-03-29 3565
148 "새 사람(김정은) 등장해 괜찮겠다 했는데…"  NKnet 12-03-23 3830
147 [통일을 여는 사람들]황인철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대표  NKnet 12-03-21 5007
146 [기획연재] 종북주의 해부하기(3) - “美제국주의 타도하고 식민지 조국을 해..  NKnet 12-03-21 5154
145 "광명성 3호는 김정은 동지의 고귀한 창조물"  NKnet 12-03-21 4435
144 "여맹號 땅크를 또 만드나?"…北주민 '부글부글'  NKnet 12-03-21 4255
143 [REVIEW] 『포스트 김정일』  NKnet 12-03-20 4650
142 [기획연재] 종북주의 해부하기-나는 주사파였다(2)  NKnet 12-03-20 4191
141 北시장 외화 통제 풀려…물가 완만한 상승세  NKnet 12-03-20 4392
140 [종북주의 해부하기] 나는 주사파였다(1)  NKnet 12-03-19 4370
139 “한국도 핵테러 가능성…핵안보 보장돼야 평화 누려”  NKnet 12-03-19 3941
138 [ZOOM 人]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NKnet 12-03-19 4374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