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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여는 사람들]황인철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대표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3-21 09:27:54  |  조회 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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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은 36년이 지나 해방됐지만,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 문제는 43년이 지나서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이하 가족회)’ 황인철(46) 대표는 아버지 황원 씨(납북 당시 32세)와 43년간 헤어짐의 아픔을 이렇게 절규했다. KAL기 납치사건 하면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1987년 KAL기 폭파사건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KAL기 납치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KAL기 납치로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납북자가 11명이다. 그들의 가족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했다. KAL기 납치사건은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김포로 향하던 KAL YS-11기가 강원도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북으로 납치됐던 사건이다.


 

납치는 이륙 10분 만에 발생했던 일로 납치 비행기는 함경남도 원산 근처 선덕비행장에 착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엔에서는 규탄결의안이 채택되는 등 국제사회 비난여론이 커지자 북한은 승무원·승객 전원 송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결국 39명만 납북 66일 만인 이듬 해 2월14일 송환했다. 북한은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자유의사에 따라 남았다’며 지금까지도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이들 대부분에 대해 북한은 현재까지 생사확인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 KAL기 납북자 11명이 포함된 전후 납북자 517명(조선적십자회 문건 571명)에 대해 북한은 “의거 입북자는 있어도 납북자는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 해가며 회피해 왔다.


 

하지만 KAL기 납치는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기록에 의해 납치 입증이 가능한 국제범죄 행위다. 또 제네바협정에 따라 조건 없이 민간인을 송환해야 했지만 나서지 않았다. 황 대표는 KAL기 납치문제 해결이 북한의 납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KAL기 납치는 전 세계가 아는 역사의 팩트(fact)로 북한이 납치를 인정하냐, 인정하지 않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적 사건에 대해 북한이 답변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UN 강제적·비자발적 실종 실무반 접수

 

지난 2월 14일, 황 대표는 KAL기 납치 간첩 조창희를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로부터 ‘공소시효 완성’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사건 자체를 각하한 것으로 사건을 조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황 대표는 “이번 고소는 대한민국 법적 판정을 묻고자 했다기보다 우리가 풀지 못한 사건, 우리가 앞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가 무언지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당시 한창기라는 가명을 사용해 여객기에 승객으로 위장 탑승했던 납치범을 2006년 6월까지 납북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가족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납북자 명단에서 뺐을 정도로 이 문제에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황 대표는 또 “일본 정부가 1970년 3월 일본 항공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한 요도호 납치범을 기소하고, 궐석재판에서 유죄판결했다. 또 국제수배범으로서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서 “한국 정부도 국제 공조를 통해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하기 위해 조창희를 고소했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납치와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국제사회는 전쟁범죄와 마찬가지로 중대한 ‘조직적 국제범죄’로 간주해 시효를 두지 않고 있다. 그가 2010년 6월 17일 유엔 인권이사회(UNHRC) 산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 실무반’(실무그룹)에 조사 요청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국내 납치피해자 중 최초로 접수한 일이다. 이 실무그룹은 사건이 접수되면 가해자에 지목된 국가에 이를 통보한 뒤 명확한 조사 결과를 보고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실무그룹은 황 대표 등 KAL기 납치 사건과 관련한 3건의 사건을 접수받고 KAL기 납치사건과 관련 송환과 생사확인을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에 지난해 8월말 요구하는 통보서를 보낸 상태다. 실무그룹이 최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2010년 인권이사회에 새로 접수된 3명의 실종자는 한국 국적의 최정웅, 황원, 이동기 씨로 이들은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김포행 대한항공 YS-11에 탑승한 채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북한에 이에 대한 소명을 요구했다.


 

만일 북한이 무조건 부인 또는 비협조적일 경우, 실무그룹은 유엔 총회나 UNHRC에 보고해 ‘납치문제가 심각한 국가’라는 국제적 비판과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된다. 올해 8월말까지 북한의 소명이 부족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KAL기 납치사건은 북한에 영원히 따라붙는 꼬리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실무그룹에는 5만 건의 접수서류가 쌓여 있을 만큼 매우 바쁜 곳이다. 2명의 실무진이 실무그룹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처리하는 사안도 1년이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런 조건에서 KAL기 납치 문제가 UNHRC의 새로운 이슈로 제기된 데에는 한국 정부의 역할도 컸다고 황 대표가 귀띔했다. 통일부와 외교통상부가 실무그룹에 KAL기 납치 사건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아 일이 쉽게 성사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부의 역할이 정말 고마운데 진작에 했었어야 할 일을 너무 늦게 했다”며 아쉬워했다.


 

北, 생사확인 불가 통보…아버지 생존은 확신

 

가끔 북한 선박이 고장으로 남하했다가 북한의 요구로 북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황 대표로서는 괴롭기만 하다. 그는 이럴 때마다 통일부 앞으로 달려가 우리 정부도 KAL기 납치자 생사확인과 제3국 상봉을 추진하라고 1인 시위를 펼친다. 2009년 미국 여기자 2명이 억류 141일 만에 풀려나는 장면을 목격할 때도 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2월 표류해 남하됐다가 50여일 만에 27명이 북으로 송환하던 날, 황 대표는 그날도 송환되는 인천 연안 부두에 나가 ‘북한이 인도주의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도 인도주의에 따라 가족을 만나야 한다’고 외쳤다.

 

북한은 납치자 문제가 남북간 대화 의제로 상정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지난해 3월말 우리 정부가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KAL기 납치 피해 가족들의 편지를 전달하겠다고 하자 북한 연락관은 서한 접수 자체를 거부했었다. 황 대표는 다시 4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통해 생사확인을 북측에 요청했다. 북한은 역시나 “생사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했다. 납치 당시 32세였던 아버지가 생존해 있다면 올해 75세가 된다. 고령인데다 북한에서 가해진 모진 탄압에 끝에 사망했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생존해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황 대표는 오히려 북한의 ‘확인 불가’ 통보가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것이라는 확신을 강하게 만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실제 2001년 제3차 이산가족상봉 당시 납치 여승무원인 성경희 씨가 남측 가족인 모친 이후덕 씨를 만나 또 다른 여승무원인 정경숙 씨와 한동네에 살고 있다고 말했고, 상봉 당시 성 씨 가족들이 케익을 먹으라 권하자, “집에 가지고 가서 정경숙 씨와 함께 먹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경숙 씨에 대한 생사확인 요청에 2006년 북측 적십자는 ‘생사확인 불가’라고 통보했었다.


 

실제 부기장이었던 최석만 씨도 북한의 사망 통보와 달리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 역시 지난해 8월 아버지가 평양 근교에 살아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핸드폰에 녹음된 제3자와의 전화통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2007년 밝혀진 외교기밀문서에 따르면 1970년 1월 30일자 주미 대사의 전문에 “KAL기 승무원 및 승객의 송환문제에 관하여 한국 정부는 무조건 송환해야 한다는 방침을 바꾸어 대한적십자 대표로 하여금 (귀환자들의) 인수증에 서명하게 한다는데 합의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또 전문에는 “우선 승무원과 승객이 송환될 것으로 보이며, 그 후에 적절한 경로를 통하여 기체 및 조종사의 송환 교섭을 추진할게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황 대표는 “대한민국은 미귀환 납치자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면서도 “일본 정부가 자국의 납치자 문제를 국제사회를 향해 귀에 못이 박힐 만큼 제기하듯이 우리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삶 고단하지만 납치자 구출위한 활동 계속

 

“꿈에서만 뵈어 온 아버지, 이제는 만나고 싶다. 꼭 제 손으로 아버지 몸 구석구석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 황 대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버지를 만나면 목욕탕에서 몸을 닥아 드리면서 자신과 너무나 닮은 아버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미 빛이 바랜 아버지 사진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자신과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빼닮았다고 아버지를 소개했다. 39명 송환자들을 통해 들은 북한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그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단체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이라고 밝혔다.

 

“당시 북한은 하루 4시간씩 납치들과 사상논쟁을 했는데, 아버지는 세뇌당하는 게 싫어 북한 교관과 사사건건 논쟁을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화가 난 교관이 ‘이 새끼 남산의 백골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는데도 ‘내가 백골이 된다고 해도 네 얘기는 도저히 못 들어 주겠다’고 맞섰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또 납치들을 회유하기 위해 회식자리가 마련됐는데, 아버지가 ‘내고향 남쪽 바다~’로 시작되는 가곡 ‘가고파’를 선창했고, 나머지 분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해요. 그 다음날부터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답니다.”

 

그가 KAL기 납치자 단체를 재출범 시킨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겨우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던 황 대표가 아버지를 추억할 만한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큰아버지, 할머니, 어머니로부터의 전해들은 이야기와 아버지 사진들로 조합해 만들어진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아버지 황원 씨는 강릉 MBC(당시 경동 MBC) 프로듀서로 서울 출장을 위해 비행기를 탔다. 그때 월급이 2만9천원을 받았는데, 일반 노동자가 5천원 월급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유복한 형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납북은 한 가정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황 대표는 2005년 납북자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운영해왔던 조그마한 대학교재 출판사도 아내에게 맡겼다. 최근에는 아파트에서 월세로 옮겨가는 신세가 됐다. 단체활동을 하며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곳을 이제는 아침 7시부터 밤 9시 반까지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가끔 단체활동을 할 때면 회사로부터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황 대표는 딸만 셋이다. 큰 딸은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고, 나머진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생이다. 자신은 여동생을 둔 남매였던 터라 자식들은 동성(同性)이길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아버지 납치로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됐다. 어머니는 항상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편집성 인격 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다. 어머니와도 소통이 안됐는데, 사춘기가 되자 남매지간 마저 소통이 단절되는 일이 있었다”고 자신이 동성 자녀를 원하는 이유를 털어놨다. 어머니는 지금 5년째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2년 전까지 만해도 정신병원에 계시다 사지가 굳어 중환자실로 옮겨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괜찮아져 노인병원에 계신다고 한다.

 

경기도의회 ‘납치납북자 생환촉구 결의안’ 통과

 

황 대표는 유년기 시절 어머니와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도 털어놨다. “아버지가 없자 어머니는 저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어요. 제가 자전거를 타는 것조차 반대했습니다. 아마 제가 죽으러 가는 줄 알고 그랬을 겁니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대부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주저 않게 돼요. 그래서 어릴 적엔 평범한 가정을 가장 부러워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비극인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단체를 이끌고 있지만 형편이 녹록치 않다. 사무실은 한 단체 사무실 한켠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작은 공간에 책상 하나에 전화, 팩스가 전부다. 11명 납치 가족들 간의 교류도 잘 안 되는 실정이다. 현재는 11가족 중 정경숙 씨, 최정웅 씨, 이동기 씨 가족만 연락이 닿아 있는 상태다.

 

“그동안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았던 터라 가족들도 과연 해결될 수 있는가 회의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작년부터 다시 힘을 내고 있다. 지난해 9월말부터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시작해 김포청사, 경기도 의회, 국회 등 12월 11일까지 총 10여 곳에서 사진전과 서명 캠페인을 벌였다. 사진전을 둘러본 시민들은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뭐냐’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게 실망스럽다’ ‘이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통탄스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황 대표는 시민들의 뜨거운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국민들이 몰라서 그렇지 제대로 안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활동 덕분일까. 경기도의회 민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KAL기 납치 납북자 생환촉구 결의안’이 제출돼 2월 14일 통과됐다. 황 대표는 “KAL기 문제로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1천만 경기도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관심을 가져줬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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