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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종북주의 해부하기(4)-“등록금투쟁으로 대학을 장악하라!”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4-19 10:02:37  |  조회 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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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3월 14일 서울대에서 등록금 부당 인상 저지 및 학원 자주 쟁취를 위한

 

1989년 3월. 겨우내 쌓였던 눈을 녹인 것은 봄바람이 아니었다. 전국 대학에 회오리처럼 몰아닥친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의 열기였다. 선배들은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동맹휴업’ 동참을 호소했다. 교정에는 ‘깻잎 팔아 학교 보냈는데, 등록금 인상 웬 말이냐?’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강철같은 동맹휴업으로 학원자주화 실현하자’는 현수막이 학내 곳곳에 봄꽃처럼 내걸렸다. 법과 대학 1학년 강의실에도 선배들이 찾아왔다. 단상에 오른 단과대 학생회장이 말했다.

“시골에서 온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농도(農道)에 있는 지방대학인데다, 당시는 농촌 거주인구가 적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자연히 농촌출신 대학생들이 많았다. 농촌 출신 가운데 등록금 납부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저희 어머님은 올해 예순 일곱이십니다. 아침 다섯 시면 일어나십니다. 일어나자마자 쌀을 정결히 씻어 밥을 올리시면, 바짓가랑이에 차가운 이슬을 적시며 어둠이 덜 가신 밭으로 나가십니다. 어머니의 무릎뼈는 다 닳아, 앉고 서실 때마다 또닥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럴 때면 몸서리가 날만큼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절룩거리시며 새벽 밭일을 끝내고, 일곱 시쯤 집으로 돌아와 자식들 깨워 밥 먹여 학교 보내고 나면, 쉴 사이도 없이 또 다시 밭으로 나가십니다. 어머니는 웬수같은 그 다리를 끌고 뜨거운 뙤약볕으로 나가 밤이 어두워져 고추색깔이 안보여 고추를 더 딸 수 없을 때까지 일하십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어머니는 그렇게 벌레처럼 밭을 기어 다니며 일을 했고, 우리 두 형제를 대학에 보냈습니다.”

등록금 동결위해 총장실 점거
시골 출신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논밭에서 땀흘리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몇몇 학생은 고개를 바닥으로 기울였다. 학생회장이 말을 이었다.

“저에게 등록금은 어머니의 땀입니다. 눈물입니다. 하루하루 닳고 있는 뼈이고, 시시각각 말라가는 피입니다. 학교당국은 1989년 등록금을 13%나 올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어머님의 뼈가 닳아야 합니다. 얼마나 더 어머님의 피가 말라야 합니까?”
몇몇 학생의 눈은 붉게 상기됐고 또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학교의 주인은 학교 당국만이 아닙니다. 교수와 학생도 학교의 주인입니다. 13%라는 학교 당국의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총학생회가 제시하는 인상률은 5%입니다. 다 같이 단결 투쟁하여 부당하고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안을 철회합시다. 총학생회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무기한 동맹휴업을 결의했습니다. 학우 여러분! 동참해 주십시오.”

학생들은 교수님의 눈치를 살폈다. 멈칫 거렸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학생회장을 따라온 또 다른 학생회 간부가 외쳤다.
“새내기 여러분. 다 같이 동맹휴업에 동참합시다.”

그 순간, 학생들이 책걸상을 삐걱이며 일어서 교실을 줄줄이 빠져나갔다. 나도 친구들 속에 파묻혀 교실을 빠져나갔다. 동맹휴업에 동참한다는 의사표시였다. 동맹휴업에 동참한 학생들을 학생회 선배들은 법학과 현관에 모이게 했다. 선배의 안내에 따라 현관 바닥에 앉았다. 잠시 후 대열을 정비한 법과대학 학생들은 깃발을 앞세우고 본관 앞으로 향했다. 법과대학 재학생의 수는 500명이었다. 그날 깃발을 따라 본관으로 향하던 사람은 15명을 넘지 않았다. 대열의 뒤쪽에서 걷고 있던 나는 궁금했다. 친구들과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괜히 대열을 따라왔나?’하는 후회가 삐죽하니 머리를 내밀기도 했다. 그러나 본관이 가까워지면서 울려퍼지는 투쟁가와 구호 속에 의문과 후회도 스스로 녹고 말았다.

본관 앞에 도착했다. 300~4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총학생회의 안내에 따라 학생들은 본관으로 진입했다. 총장실, 부총장실, 학생처장실, 총무과, 학생과를 가리지 않고 점거했다. 소파와 탁자를 한쪽으로 밀고, 그 자리에 둘러앉아 구호를 외쳤다.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 투쟁으로 박살내자’, ‘강고한 동맹휴업으로 학원자주화 실현하자.’ 각 농성장마다에서 울려나오는 농민가의 열기가 3월의 늦봄 추위를 녹였다.

등록금투쟁으로 학생운동가 단련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 배달의 농사 형제 울부짖던 날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 진리를 외치는 형제들 있다.”

그렇게 시작된 본관 점거 농성은 학생들이 방학을 맞이해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6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등록금 투쟁에 참가했던 새내기들은 낮에는 시위를 했고, 밤에는 학습과 토론을 반복했다.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노동자의 철학, 전태일 평전, 주한미군 범죄사,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와 같은 이념서적을 그 때 읽었다. 밤이 늦어지면 선배들과 새내기들은 막걸리와 김치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새내기들은 대학생활, 연애문제, 집안문제로 인한 크고 작은 고민들을 털어놓았고, 선배들은 애정어린 조언과 따끔한 충고로 새내기의 고민과 걱정을 나누고 그들과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쌓았다. 선배들은 새내기들에게 독재에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서 지식인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세의 지배와 분단으로 신음하는 가엾은 조국의 청년학생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법과대학의 경우 등록금 투쟁과 본관 점거 농성에 참여했던 10여명의 새내기들 대부분이 학생회 임원이 되었고, 학생운동 동아리의 회원이 되었다. 3개월이 지나자 그들 가운데 일부가 반미자주와 반독재 민주화, 그리고 조국통일에 청춘을 바치겠노라고 결의했다. 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

부당한 등록금 인상을 반대한다는 간결한 논리에서 출발한 ‘등록금 투쟁’의 산물이었다. 학생도 학교의 주인이므로 주인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학원자주화투쟁’의 결과였다.

대중들은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에 민감하다. 일반적인 대중의 경우 정치적 문제보다는 경제적 문제에 대한 이해관계에 밝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그랬다. 종북주의 학생운동은 이점을 파고들었다. 등록금자율화 조치가 시행된 1980년대 말부터 등록금투쟁을 총학생회의 첫 번째 역점사업으로 삼았다. 각 대학 학생회는 학원자주화투쟁과 등록금투쟁을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지지와 동참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했다. 실제로 학생운동가로 성장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등록금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새내기들이었다.

새내기들은 등록금투쟁에 동참하면서 광범위한 대중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결합해야 한다는 원리를 배웠고,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학원자주화와 등록금 투쟁은 종북세력이 학생회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 대학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면서, 동시에 학생운동가를 훈련하고 단련시키는 ‘실천학교’이기도 했다. 지금은 학생운동과 관계없이 전국의 대학에서 매년 등록금투쟁이 마치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다.

추신 : 부모님이 피땀흘려 번 돈의 소중함을 내세워 등록금 인상을 반대했던 당시 학생들은 부모님이 뼈 빠지게 번 돈으로 보낸 대학에서 공부에 소홀했다. 한때 수업에 들어가지 않거나 시험을 제대로 보지 않는 문화가 학생운동 진영에 만연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피땀흘려 번 돈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낭비한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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