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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3-15 17:41:35  |  조회 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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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인물은 많다. 그러나 이 천재 음악가만큼 한편의 영화 같은 극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광복 이후 친일파가 싫어 월북을 했고, 이후 유학생 신분으로 소련에서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북한에 쫓겨 살아온 천재 음악가 정추.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책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구해우·송홍근 지음/시대정신)가 출간됐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사회주의자였던 형을 따라 북으로 떠난 음악가 정추는 소련 유학 중 김일성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두 조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러시아의 변방에서 산 비운의 인물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인 학창시절, 영화감독이자 연출가인 형의 소개와 본인이 음악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난 문화·예술계 거장들의 역사적 이야기를 증언할 수 있는 현대사의 산증인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차이코프스키 4대 제자로 인정받으며, 세계 3대 음악원 중 하나인 차이코프스키 음악대학 최초 졸업작품 만점을 받은 천재 작곡가. 세계 최초 우주 비행 성공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소련 당국의 요청으로 자신의 곡을 연주했던 천재 음악가인 그가 자신의 조국에 정착하지 못한 채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북한 독재의 패망을 노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일성 우상화 반대 시위로 평생 쫓겨

 

학창시절 정추는 형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해방공간에서 좌익 영화계의 중심인물이던 정준채는 1946년 사회주의 혁명 분위기가 고조되던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는 북한에 도착한 직후 동생을 평양으로 불러올렸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떠난 정추는 평양음대 교수를 맡는다. 북한 음악계의 중심에서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계 숙청이 이뤄지면서 그의 입지가 급속도로 좁아졌다. 1956년부터 북한은 김일성 주도로 반종파 투쟁을 추진했다. 남로당계에 이어 소련파, 연안파를 숙청하면서 소련 유학생에 대해서도 사상 검열을 했다. 당시 유학 중이던 정추를 비롯한 일부 유학생은 “반종파 투쟁은 김일성 우상화로 가는 길이며, 그것은 스탈린주의의 우상숭배와 다를 게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 후 김일성 우상숭배 반대 시위는 정추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북한 당국은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의 도망자 생활이 시작됐다.


 

정추가 말하는 문화·예술계의 거장들

 

격동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정추는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과 인연이 많다. 정추의 형은 북한 영화감독의 시초이자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초대 서기장을 지낸 정준채이고, 서울에 사는 그의 동생은 어린이에게 친숙한 노래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을 만든 동요 작곡가 정근이다. 또한 러시아에서 정추와 같이 공부한 친구이자 라이벌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북한의 애국가’를 만들어 북한 내에서 추앙받는 음악가 김원균이다. 정추는 일본의 한글말살정책에 맞서 한글사전 편찬에 진력했던 장지영 선생의 중국어 과외, 민족을 대표하는 음악가 현제명 선생이 운영하는 음악학원에서 음악을 배웠던 사건, 어린시절 형 정준채가 무용수 최승희 공연에 감동했다가 훗날 북한에서 다시 최승희를 만나 그녀의 영화를 만들었던 인연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예술계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리고 정추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건에 참여했던 지인들의 증언을 전달한다. 소련과 북한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되고, 숙청의 바람이 불게 된 원인이었던 흐루시초프와 김일성 면담의 일화를 당시 촬영기사였던 이진환의 증언을 통해 들려준다. 또한 『먼지』란 작품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이태준의 숙청 이유도 밝힌다.


 

정치적 사건과 인물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추는 1938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크게 보도된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를 통해 겪었던 당시 일화와 남로당 당수 박헌영과 세 번 만난 일화 등을 생생히 증언하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의 도움으로 지인이 알마티 신문사 운영과 대학교를 운영했던 이야기도 전해준다.


 

차이코프스키 계보 있는 천재 음악가 정추

 

정추는 러시아 음악의 대가 차이코프스키 음악 계보를 잇는 ‘4세대 작곡가’로 불린다. 타네예프라는 이름의 작곡가이자 이론가가 유일한 차이코프스키의 제자이고, 그 타네예프의 제자가 정추를 가르친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이다. 그런 스승에게 음악을 배운 정추의 차이코프스키 음대 졸업작품 ‘조국’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만점을 받는다. 그 후 우주 최초 비행사를 기리는 행사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수 있도록 소련 정부의 요청을 받는다.


 

이방인으로 반세기 넘게 살아온 카자흐스탄에서는 정추를 기리는 음악회가 열린다. 그는 카자흐스탄 음악계가 존경하는 거장이다. 그들은 ‘검은 머리의 차이코프스키, 정추’를 사랑한다. 카자흐스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 60곡에 달한다.


 

고려인의 한(恨)을 악보에 옮기다

 

그의 카자흐스탄 정착기와 함께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고통을 겪은 20만 명의 고려인들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당시 고려인들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버려졌다. 이주한 고려인 수는 20만 명가량인데, 그중 1만여 명이 이주 도중에 숨졌다. 그러나 정추는 고려인들이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집단농장을 경영해, 현재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 사는 민족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는지 당시 상황을 생생히 증언한다.


 

정추는 말도 통하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타지에서 겪는 고려인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노래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정추의 노력은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스탈린’ 교향조곡을 작곡해 고향을 잃고 타지 생활을 하는 고려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기를 바란다. 또한 20년간 채록한 1천여 편의 고려인 노래를 책으로 출간해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남기는 공훈을 세운다.


 

정추의 바람

 

정추는 누구보다 북한의 민주화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북한의 세습 왕조 타도’라고 말한다. 북한이 생지옥이자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진 것은 독재정권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정추는 2012년 한국 나이로 아흔이 됐다. 그이 90년 삶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나 정추는 여전히 꿈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개혁개방과 민주화가 이뤄져 통일조국을 이룰 수가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바람에 우리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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