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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종북주의 해부하기 - 6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4-24 10:34:41  |  조회 4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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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제 통일과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목표로 활동해온 강원대 자주대오 등 3개 대학운동권 조직으로부터 입수한 서적과 물건들.

확고한 종북주의 운동가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북한의 주장과 동일한 반미자주와 조국통일을 지지했거나 그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있다. 넓게 본다면,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종북주의 운동에 직간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확고한 종북주의 운동가이거나 주사파 혁명가는 아니다. 최소한 수령관이 확고히 서 있어야 제대로 된 주사파 혁명가, 또는 종북주의 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수령관의 핵심은 수령에 대한 조건 없는 충실성이다. 과거 종북주의 학생운동세력은 대학생들에게 수령관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에 하나가 ‘장군님’의 ‘혁명위업’과 ‘인민에 대한 사랑’을 담은 각종 영화와 책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운 바람이 아침부터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1993년 7월. ○○지역 비공개 학생운동 지도조직의 교육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은수와 정훈이가 ○○대학교 공과대학 1호관에 나타났다. 방학이라 눈에 띄는 학생이나 교수가 거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주위를 조용히 살피며 2층에 있는 ‘생활방’ 문을 열었다.

 

공대 학생회 임원들이 숙소로 쓰고 있는 생활방. 작은 강의실의 의자와 책상을 들어내고 바닥에 장판을 깔아 만들었다. 90년대 중반까지 웬만한 대학에는 활동가들이 집단으로 기숙하는 생활방이 여러 개씩 있었다. 오른편에는 사회과학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이 하나, 출입구 맞은편 벽에는 VTR과 TV가 포개져 놓여 있었다. 정훈이가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테이프 라벨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테이프를 VTR에 끼워 넣은 정훈이 TV의 음량을 줄였다.

 

김일성 미화한 영화 돌려보며 흠모

 

화면에서 김일성이 젊은 시절 만주에서 벌인 반일 사회주의 운동을 담은 영화 ‘조선의 별’이 흘러나왔다. 은수와 정훈의 임무는 영화 ‘조선의 별’을 스무 편 정도 복사하는 것이었다. ○○지역에 있는 열다섯 개 대학교와 조직의 주요 간부에게 배포하기 위함이었다. 각 대학에 테이프를 배포하면, 각 대학에서는 또 각 단과대학에 내려 보낼 테이프를 자체로 복사할 것이었다.

 

“야아 이거, 화질이 너무 안 좋다.”

 

교육팀장 은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리는 들을 만했지만, 화질은 형체만 겨우 알아볼 정도로 좋지 않았다. 은수와 정훈이가 받은 테이프도 여러 차례 복재를 거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정훈이가 공테이프를 끼워 넣으면서 대답했다. 원본 화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2배속 녹화 기능을 이용하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녹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1시간 반짜리 영화 한편을 복제하는 데 1시간 반이 고스란히 걸렸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을 꼬박 복사를 한다 해도 겨우 여섯 편을 복사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이나 테이프를 갈아끼우는 자투리 시간을 고려하면 실제로 가능한 복사량은 하루 다섯 편 정도였다. 스무 편 정도를 복제하는 데 꼬박 나흘이 걸릴 터였다.

 

“형, 형, 시작했어요.”

 

“그래. 야, 야, 자리 잡고 앉자.”

 

은수와 정훈이는 TV 앞에 2m 정도 거리를 두고 책상다리를 하고 정좌했다.

 

‘장군님’의 ‘혁명위업’과 ‘인민에 대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김일성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을 기르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김일성이 혁명활동에서 보여준 혁명사업방법과 혁명에 대한 태도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은수와 정훈이에게 ‘조선의 별’을 복제하는 것은 교육팀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행위이자,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과 사업방법을 공부하는 학습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한여름 날씨에 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꽉 닫힌 창문. 숨이 막히고 땀이 흐르고, 오랫동안 책상다리로 앉아 있었던 탓에 온몸이 굳어왔지만, 은수와 정훈이는 TV 속에서 ‘장군님’의 혁명활동이 펼쳐지는 동안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썼다. 참을 수 없는 고역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북쪽에 자랑스러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이제 남쪽에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민족자주정권을 세우는 혁명위업을 쪽잠에 주먹밥을 마다않으시고 지도하고 계시는 장군님을 생각하면 그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녁 6시, 복제한 테이프 다섯 개를 가방에 챙겨 넣고 생활방을 나오는 정훈이의 마음은 뿌듯함이 차올랐다.

 

‘장군님의 위대한 혁명업적을 이렇게 생생하게 확인하다니. 장군님의 혁명적 사업방법을 따라 배운다면, 나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륭한 혁명가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각 대학의 수많은 동지들이 내가 복제한 이 영화를 통해 감동과 배움의 기쁨을 맛보겠지.’ 정훈이는 장군님의 혁명 활동을 눈으로 확인한 오늘, 장군님의 지도 아래 민족의 해방과 조국통일의 길에 들어선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숙소로 향하는 정훈이의 발걸음이 힘차고 당당했다.

 

수령에 대한 충성심 이론 통해 학습

 

김일성의 활동을 담은 영화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 책으로는 ‘닻은 올랐다’, ‘봄우뢰’ 같은 불멸의 역사 총서 시리즈, 그리고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종북주의 세력은 김일성의 업적을 담은 영화와 책을 지속적으로 학생들에게 보이고 읽혔다. 과장되고 왜곡되고 미화된 것들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읽은 젊은이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로 변해갔다.

 

종북주의 세력의 수령관 교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가르쳤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사람에게는 육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이 있다. 육체적 생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고 사회정치적 생명은 사회생활과정에서 얻어진다. 육체적 생명은 먹고 마시고 자는 본능적 행위로 유지할 수 있다. 사회정치적 생명은 배우고 대화하고 창조하고 투쟁하는 사회정치적 활동을 통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때 유지된다. 사람에게는 먹고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돼지와 같은 생물학적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본질로 하는 사회적 존재다. 따라서 자신에게 육체적 생명을 준 부모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준 사회의 대표자, 곧 수령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논리에 따라, 수령의 귀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 수령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수령을 자신의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고 무한히 충성하는 사람이라야 사람이 동물과 다른 사회적 존재임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혁명적 수령관이란 혁명투쟁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가장 올바른 견해와 관점이며 수령을 진심으로 높이 모시는 입장과 자세”라는 명제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이어졌고, 각 대학 지하조직 책임자나 각 대학 학생회장에 대한 열광으로 확대되었다. 수많은 학생들은 진군가와 찬가를 부르며 총학생회장을 맞이했고, 그 순간 ‘우리는 하나’라는 희열과 감동을 맛보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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