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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에 충성맹세 했던 민혁당 재건 세력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5-09 10:27:06  |  조회 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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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이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상견례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 비례대표 2번에 배정된 이석기 후보의 종북 활동 검증 등으로 각종 논란을 일으켰던 통합진보당(진보당)이 4·11 총선 결과 13석(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을 차지하며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에 이어 제3당의 자리로 뛰어올랐다. 지역구에서는 노회찬(서울 노원병), 심상정(고양 덕양갑), 김선동(순천·곡성), 김미희(성남 중원), 강동원(남원·순창), 이상규(서울 관악을), 오병윤(광주 서구을) 등 7명이 당선됐고, 윤금순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이석기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김재연 전 한국대학생연합 집행위원장,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총장, 박원석 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비례대표 당선자로 확정됐다. 강령에서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하고 제주 해군기지 전면 재검토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진보당 의원들의 대거 입성으로 19대 국회에서 이념 갈등이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경기동부연합’ 실체 논란, 색깔론으로 번져
진보당은 4·11 총선 과정에서 이정희 공동대표의 후보 사퇴 문제로 당 주류의 배후 세력 논란을 야기했다. 지난 3월 17~18일 서울 관악을 야권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이 대표 측의 여론조사 조작 시도가 드러나자 단일화 상대였던 민주통합당 김희철 후보가 이에 반발해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대표는 초기에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여론의 압박에 밀려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스스로 사퇴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당권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한 당 주류 배후세력의 압력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와 관련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 대표가 속한 계파(系派)의 조직문화다. 제가 그 당에 있어 봤다.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위장전입 등 여러 편법이 많았다”며 “당시에는 소수 정당의 내부 다툼이어서 공론화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민주당이다 보니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이 대표가 속한 계파란 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을 의미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시작으로 각종 매체와 인터넷 상에서는 이들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석기, 김미희, 김재연, 정진후 당선자 등이 ‘경기동부연합’ 소속이거나 이들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거론됐다. 진보당은 총선을 앞두고 민노당을 주축으로 진보신당 탈당파(심상정·노회찬)와 국민참여당(유시민)이 합해 만든 정당으로 이 대표가 사퇴할 경우 당권을 다른 파벌에 넘겨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당 주류인 ‘경기동부연합’이 사퇴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경기동부연합’은 북한 추종 노선을 걷는 운동권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여야 정치권의 공방도 가열됐다. 새누리당은 “(경기동부연합은) 김일성의 신년사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묵념을 하고 회의를 시작하는 분들, 국회 본회의 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분들”이라고 비난했다. 진보당은 이에 대해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전면 부인하면서 “새누리당의 색깔론은 야권연대를 흔들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정희 대표도 한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직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맞서는 등 ‘경기동부연합’의 실체 논란은 총선 기간 상대편 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한 색깔 논쟁으로 변질되어 갔다.

진보당 주류는 舊민혁당 세력
그러자 선거를 겨냥한 해묵은 색깔 논쟁보다는 제도 정치권 진입을 시도하는 이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과거 NL(자주파·김일성주의 추종세력) 운동에 몸담았다 전향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용어는 실체가 없는 단어이며 이들이 과거 남한 내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건설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간부 출신이라는 증언이 제기되기 시작됐다. 민혁당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김영환, 하영옥 등이 1992년 3월 결성한 지하당 조직으로 1989년 결성된 반제청년동맹이 모태가 됐다.

당시 법원은 민혁당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노선)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의 지하 전위당으로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민혁당은 총책 김영환이 북한에 대해 비판적 태도로 돌아선 이후 1997년 7월 해체 선언을 하면서 분수령을 맞았으나 하영옥 등이 조직을 장악해 활동을 지속했다.

하영옥 등은 김영환의 해체 결정에 불복해 자신이 관할하던 영남위원회와 경기남부위원회를 수습 하는 한편, 남파간첩 원진우와 접선하여 북으로부터 대호명 ‘광명성’을 부여받는 등 지하당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다 1998년 12월 북한으로 복귀하던 원진우가 탄 잠수정이 우리 해군에 의해 격침되고, 다음해 3월 인양된 잠수정에서 나온 단서로 인해 하영옥의 활동이 국정원에 포착되며 전모가 드러났다.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됐던 주요 관련자들은 2000년대 초반에 대부분 석방됐다. 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소위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지적하고 있는 진보당 이석기 당선자는 구 민혁당 하부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이다.

그는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3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5월 검거돼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번 4·11 총선에서 민주당-진보당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의엽 진보당 정책위의장도 민혁당 간부 출신이다. 민혁당 부산지역위원장으로 2000년 9월 말 검거돼 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다. 2010년 민노당에서 이정희 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됐던 사람들도 2000년대 초반에 석방되면서 대거 민노당에 참여했다.

“이석기, 민혁당 서열 5위”
최근 「진보의 그늘」(부제: 남한의 지하혁명조직과 북한)을 출간한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경기동부’는 원래 90년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서 경기 동부지역 학생운동을 지칭할 때 쓰던 말로 이후 전국연합 활동을 진행하면서 성남 등 주변 지역의 재야운동까지를 포괄해서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동부연합은 현재 뚜렷한 실체가 없는 용어다. 오히려 현재의 통합진보당 당권파들의 실체를 가리기 위해서라면 구(舊)민혁당 관련 세력으로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민혁당 사건으로 수감 중이다 8.15 특사로 가석방된 이석기씨가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동료와 민가협 어머니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photo 연합

▲ 민혁당 사건으로 수감 중이다 8.15 특사로 가석방된 이석기씨가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동료와 민가협 어머니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photo 연합
이번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 기장을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하태경 당선자도 “민주노동당(진보당의 전신) 내부에 북한과 직접 연결된 지하조직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경기동부연합’ 외 진보당 내 또 다른 좌파그룹에 관한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것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이었던 하 당선자는 “일심회 사건(2006년)에서 보듯 민노당 내부에는 북한과 직접 연결된 지하조직이 존재했고 그 사례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을 받은 이석기 후보”라고 실명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지하조직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으로 (당시) 서열 5위 안에 드는 핵심 고위직이었다”며 “(진보당) 후보 중에는 과거 북한과 연결된 지하조직원으로 활동한 분이 5명 이상 된다”고도 했다.

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위원장이던 이석기 당선자는 민혁당이 1997년 해체 선언된 이후에도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한 하영옥의 지시로 조직을 재건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 당선자는 하 씨에게서 경기남부뿐만 아니라 영남위원회 조직까지 책임지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민혁당은 1997년을 기점으로 조직이 이분화 되는데, 이 당선자는 사상적 전향을 거부하고 북한의 지도에 충실한 후기 민혁당에서 더 큰 중책을 맡게 됐다. 이 당선자는 또한 민혁당을 이탈한 후배 박모 씨를 만나 “조직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알고 있느냐. 조직 내부에 사상적으로 변절한 사람들(김영환 등)이 있어 전부 제명시켰다”면서 “제명된 인간들이 마치 조직의 중앙위원인양 행세하며 많은 동지들을 이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민혁당 해체를 인정하지 않은 하 씨와 함께 활동하다 1999년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지하로 잠적해 3년여 간 수배생활을 했다. 전향한 민혁당 성원들이 사건 발표 즉시 공안당국에 자수했던 것과도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는 이후 공개적으로 자신의 사상적 전향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왔다. 그러다가 이번 4·11 총선에서 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지명되며 과거 민혁당 활동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北간첩, ‘민노당’ 주류 장악 끊임없이 시도
민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1990년대 후반까지는 “선거 공간과 의회 연단의 중요성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이를 절대화하면서 선거변혁과 의회주의를 주창한다면 이는 변혁운동의 기본원칙을 저버리는 수정주의로의 탈선이며 투항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합법정당으로 대거 진입한 것은 검거 후 신분이 수사기관에 노출되면서 지하활동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실제 이들은 민노당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기 위해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민혁당 사건은 위로부터 조직이 발각됐는데 당시는 김대중 정부 시절로 공안사건을 확대할 의사가 없었고, 지하조직의 특성상 1:1의 단선으로 연계되는 조직방식으로 인해 상층 인사들만 검거된 채로 조직의 하부 구성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민혁당 출신인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이사는 저서 ‘지성과 반지성’에서 민혁당의 당원 수가 “전국적으로 100명 정도”라고 했는데, 산하의 중간조직 성원을 비롯해 직접적 영향권에 있던 사람을 포함하면 수천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김영환 지휘 하에 있던 수도권의 공개 단체 지하지도부와 전북위원회는 사상 전환 후 활동을 그만두거나 북한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향하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북한의 대아사와 인권유린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활동을 중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생각이 별로 변화되지 않은 채 민노당에 진출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민노당은 사회민주주의를 당의 이념으로 2000년 1월 30일 창당했다. 2000년 총선에서는 원내 진출에 실패했으나 2004년 총선거에서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획득해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진출을 달성했다. 초기에는 평등파로 불리는 민중민주(PD)계열이 당 활동을 주도했으나 200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자주파로 불리는 민족해방(NL)계열이 대의원 수 등에서 우세를 보이며 당내 주도권을 행사했다.

이후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저지 시위,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시위, 이라크 파병 반대, 평택 미군 기지 이전 반대 활동 등 민노당 활동의 주요 초점은 반미투쟁에 맞춰졌다. 민노당은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방식 통일을 당 강령으로 삼을 만큼 반미친북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세계 유례없는 3대 세습을 실시한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북한식 정치질서’‘통일 세력으로 존중’‘남북관계 개선 차원’ 이라는 논리로 사실상 옹호하고 있다.

NL계열 주도로 간첩단 연루된 당원 재명 안해
지난 2006년 국가기밀을 북한에 빼돌렸던 일심회 사건 때 간첩행위 당원 제명 처리 건이 거부된 사례에도 이런 민노당의 현실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평등파 세력과 분당 사태를 감수해서라도 간첩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민노당의 태생적인 한계라는 지적이다.

일심회 사건은 2000년대 이후 소위 ‘386 세대’ 운동권 출신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결성한 최대 간첩 사건이라는 것이 검찰의 평가다. 국정원은 2006년 10월 24일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일심회 총책 장민호와 조직원인 민노당 전(前) 중앙위원 이정훈, 모 학원장 손정목을 체포했다. 검찰청과 국정원은 장 씨 등이 2006년 3월 재야인사 2명과 함께 중국으로 출국해 북한 공작원을 만나 국내 정보 동향 및 특정 정당의 정보를 제공하고 각종 지령 및 공작금을 수수했다고 발표했다.

민노당 등은 공안 분위기를 만들어 반북, 반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국정원의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일심회 사건 관련자 전원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일심회 사건은 초기에는 민노당을 중심으로 조작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됐으나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북한을 추종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조작 의혹을 제기한 민노당은 당시 거센 후폭풍에 휩싸여 소위 PD 세력이 집단 탈당해 분당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민노당은 2007년 12월 일심회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 두 달 뒤인 2008년 2월 임시 전당대회를 열고 당 내 종북주의 청산 일환으로 ‘일심회 연루자 제명 안건’을 상정했다. 당시 9시간에 걸쳐 격렬한 찬반 토론을 진행했지만 NL계열 대의원들이 연루자 제명안을 삭제하는 수정동의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면서 안건이 자동 폐기됐다. 이로써 민노당 당대회의 최대 쟁점인 종북주의 청산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PD계열은 민노당을 탈당했다.

北 미사일 발사에도 침묵하는 진보당
북한 노동당 225국과 연계해 20여년 가까이 반국가단체 활동을 해 온 간첩단 ‘왕재산’ 조직원들이 북한에 ‘6·2 지방선거에서 포섭 대상인 민노당 후보를 시의원이나 구의원으로 당선시켰다’고 활동 보고한 것도 북한과 지하당이 민노당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1년 8월 당시 사건 수사 결과를 브리핑 한 이진한 공안1부장검사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 등이 북한에 포섭돼 국내 지하당을 구축하고 20년 가까이 암약하면서 간첩활동 해 온 사실을 적발했다”며 “북한이 정치권까지 침투해 상층부 통일전선을 구축하려 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었다.

당시 ‘왕재산’ 사건과 관련해 현직 구청장부터 시의원, 전 국회의장 정무 비서관 등까지 공안당국의 수사 대상에 오르며 종북(從北)세력들의 제도권 진입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이들의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386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비호 아래 지하당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맺고 있는 인사들까지도 정부 및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었던 영향 탓이다. 사실상 종북 세력의 제도권 진출에 발판이 된 민노당이 간첩활동의 온실(溫室)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 당선자는 “주사파의 본산으로서 당 출범 때부터 북한과 연계됐던 민노당은 여전히 종북 집단의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에서 남한 내 적극적인 협력자를 구할 때 민노당 내부를 살펴볼 정도로 민노당은 북한의 1차적인 공작 대상”이라며 민노당 사무부총장까지 연계됐던 일심회 사건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진보당이 이번 총선에서 총 13석의 의석을 차지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에 진정한 진보 야당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우리 국민들의 바람이 대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법원으로부터 반(反)대한민국 활동을 벌인 혐의가 인정된 진보당의 일부 당선자들이나 주류 당권파들에게는 자신들의 이념이나 활동이 현재는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해묵은 색깔논쟁의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정 운영의 한 몫을 담당할 공당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요구다. 북한이 남한의 지하당 조직에게 정치 제도권에 진출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꾸준히 이러한 시도를 해 온 정황이 드러난 만큼 이들 지하당 출신자들의 사상 전향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진보당은 아직도 북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과 입장 표명을 꺼려하고 있다. 여야 정당은 4월 13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일제히 북한의 도발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통합당도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며 매우 유감스럽다”고 북한을 강하게 비난했다. 진보당과 종북 논란 끝에 분당한 진보신당도 “북한은 일방적인 군사적 모험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규탄했다. 반면 진보당은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를 둘러싸고 북미간 대립으로 한반도 긴장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안보리의 제재 일변도 방식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여전히 북한에는 단 한 마디도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국회는 헌법기관, ‘사상’ 전환 과정 밝혀야
진보당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비판 대신 대화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종북성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커지고 있다. 진보당과 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은 북한인권·3대세습·북핵 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민노당 대표 당시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고 했으며,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는 “국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이 법안은 인권으로 북을 국제사회에서 망신 주는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지령에 의해 결성된 지하당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또 어떤 사람들이 그 안에서 활동했었는지 아직 그 전모가 다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과 세력들이 아직도 한국 내 존재하고 있으며, 또 그들이 정치권 진출을 통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는 것만은 최근의 간첩단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기홍 대표는 이에 대해 “과거 전력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가 더 중요하다”며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면서 과거의 종북 이념이나 활동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입장 표명이 전혀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도 “이들의 원내 진입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면 과거의 생각에 대해 지금 어떤지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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