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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김일성 사망 때까지 20년간 권력승계한 김정일 인쇄하기
이름 NKnet
2012-06-15 09:31:53  |  조회 4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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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권력승계는 혈통승계의 제도화를 바탕으로 제도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후계경쟁이나 지배엘리트들의 저항을 받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혈통승계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권력승계 과정에서 후계자와 지배엘리트의 행동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혈통승계를 비교해보면 혈통승계의 제도화 수준에 따라 후계자와 지배엘리트의 행동에 차이가 발견된다.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혈통승계의 제도화가 이루어지기전이었기 때문에 후계경쟁을 거쳤고 지배엘리트들의 제한적 반발에 부딪쳤다. 김정일은 김영주와의 권력투쟁을 거쳐야 했고 김성애와 김평일의 잠재적 위협을 극복해야 했다. 일부 지배엘리트들은 후계자로 선정된 김정일에게 반발하기도 했다. 김정일은 후계자의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당과 군대 내에 권력기반을 구축해야 했다. 반면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혈통승계의 제도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후계자는 수령과 거의 동일한 권위와 권한을 갖는다. 후계경쟁도 없고 후계체제에 반발하는 지배엘리트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배엘리트들은 후계자를 적극 지원하고 협력한다.

김정일, 74년부터 권력승계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1974년 당내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거의 20여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김정일은 1964년 조선노동당 지도원으로 당 생활을 시작했고,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에 선출되면서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북한당국은 약 6년 후인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을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하면서 후계자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권력을 이양 받은 것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였다. 김정일은 권력승계 과정에서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원로그룹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순탄치 않았다. 김정일은 김영주와 후계경쟁을 벌였고, 김성애와 김평일의 위협을 극복해야 했다. 일부 지배엘리트들은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반면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김정일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김정은은 2007년 김정일의 결정에 의해 후계자가 되었고, 2009년 1월 8일 당내에 후계자로 결정되었다는 교시가 하달되었으며, 불과 19개월 만인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국내외에 공개되었다. 이후 김정은은 후계체제 구축을 시작했다. 김정일 현지지도에 동행하고 김정일의 중국방문에도 동행했으며 외국 국가원수를 접견하는 공식적인 외교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다. 당·군·보위기구 등 핵심 통치기구에 대한 권력승계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김정은은 현재 30살에 불과하고 후계자로 선정되기 전까지 정치적 경험과 국정운영 경험이 전무했다. 권력투쟁을 경험한 적도 없다. 그는 혁명에 참여한 경험도 없고 당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 것도 없다. 김정은은 후계경쟁도 거치지 않았고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에 부딪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정은은 사실상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되었다.

김정은 권력승계는 김정일 권력승계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배엘리트들이 저항하거나 반발하지 않는 것일까? 김정일은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에 부딪쳤는데 김정은은 연륜과 경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왜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에 부딪치지 않는 것일까?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지배엘리트들의 전략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김정일은 후계자 경쟁을 거쳤는데 김정은은 왜 후계자 경쟁을 거치지 않았을까? 이 연구는 이상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혈통승계의 제도화 수준에 따라 후계자와 지배엘리트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노동당 규약에 권력승계 규정 없어
북한의 노동당 규약이나 헌법에는 권력승계와 관련한 규정이 없다. 권력승계 전례와 규칙이 없었기 때문에 김일성의 후계문제는 조선노동당 내부의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의 권력은 김일성에게 집중된 상태였고, 김일성에게는 더 이상 견제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노동당도 김일성을 견제할 수 없었다. 김일성은 자신의 절대적 권위를 바탕으로 김정일을 후계자로 결정했다. 김일성은 1972년 김정일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서의 권력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10대 원칙과 후계자론을 통해 후계자의 지위와 역할, 지배엘리트의 자세를 제시했다. 김정일은 권력승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혈통승계를 제도화했다. 김일성의 후계문제가 논의될 때 공식적인 권력승계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김정일과 김영주 사이에서 후계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은 김영주와 후계자 경쟁을 벌였고 김성애의 부상과 김평일의 존재에도 위협을 받았다.

김정일은 김영주·김성애 등과의 권력투쟁을 거쳐서 후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권력장악을 시작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당·군·정권기관에 지도체계를 세우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김정일은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974년 4월 14일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발표하고, 10대 원칙 재접수·재토의 사업을 전당적으로 진행했다. 김일성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일은 김일성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일이기도 했다. 김정일은 당내에서 후계자의 권위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김정일은 10대 원칙에서 수령의 권위와 후계자의 권위를 일치시키면서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후계자의 권위를 절대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수령의 권위가 절대화될수록 후계자의 권위도 절대화되었다.

김정일은 당·군·정권기관에 자신의 지도체계를 세우는 데 주력했다. 김정일은 10대 원칙에서 수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고 수령의 영도 밑에 당중앙의 유일적 지도체계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일은 유일적 지도체계에 끝없이 충실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과 군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1973년 8월부터는 당의 조직부문과 선전선동부문을 장악했고 1975년 5월경에는 정치위원회와 군사위원회를 제외한 전당을 장악했으며 1974년 후반부터 1975년 중반까지는 군대에서 유일지도체제를 수립했다. 김정일은 당과 군에 자신의 지시만 따르는 지도체계·보고체계·사업체계를 구축했다.

김정일은 당의 주체사상 해석권을 독점했고 수령의 개인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주체사상을 활용했다. 1974년 2월 19일 주체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론·방법의 전일적 체계를 김일성주의라고 제시하면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방침을 제시했다.

김정일 후계 반대한 간부들 숙청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었을 때는 혈통승계가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혈통승계가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지배엘리트들 중에는 혈통승계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련 유학파 출신들을 비롯한 많은 간부들이 김일성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데 대하여 내심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권력이 절대화된 상황에서 혈통승계에 대한 거부감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일부 지배엘리트들은 김정일 후계체제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남일 부총리는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을 지지하다 김정일에게 암살당했다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김정일 후계체제에 정면으로 반발한 김동규 부주석은 숙청당했다.

김정은이 판문점을 시찰하고 ‘김일성’ 이름이 적힌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photo 연합

▲ 김정은이 판문점을 시찰하고 ‘김일성’ 이름이 적힌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photo 연합

대부분의 지배엘리트들은 김정일로의 혈통승계를 지지했다. 왜냐하면 제도가 지배엘리트들의 행동에 구조적 제약을 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독재국가의 권력승계 과정에서는 독재자의 아들이 독재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후계자로 독재자의 아들을 지지하는 연합이 형성되기 쉽다. 김정일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지배엘리트들이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받아들였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지배엘리트들은 김정일과 인센티브를 공유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김정일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중앙당의 실권이 서서히 김정일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김정일에 대한 지배엘리트들의 아첨행각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또 북한의 지배엘리트들은 철저한 감시체제로 인해 후계자에게 저항하는 것보다는 후계자를 적극 지지하는 행동패턴을 보여주었다.

김정은, 권력투쟁 없이 권력승계
북한의 권력승계는 제도화에 의해 진행되는 규칙적인 승계다.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제도적 제약하에서 지배엘리트들의 저항이나 반발에 부딪히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제도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승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혈통승계라는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형성되었다. 김정일은 권력승계 과정에서 10대 원칙이나 수령론·후계자론과 같은 권력승계 제도를 구축했고, 후계자를 결정하고 권력을 이양하는 정치적 과정을 경험했다. 북한의 권력승계는 후계자 결정, 후계자 공식화, 권력이양의 순으로 진행된다. 후계자는 수령이 결정한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것은 이미 혈통승계의 전례가 존재하고 아들을 후계자로 세워야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며 김일성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김정일과 달리 권력투쟁을 거치지 않았고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에 부딪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혈통승계가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일의 아들들과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배엘리트들 사이에서 혈통승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져있었다. 또 김정일의 권위가 지배엘리트들의 권위를 모두 합한 것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의 결정에 반발할 수 있는 지배엘리트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의 의사결정기구는 유명무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김정일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배엘리트들의 건의와 합의라는 형식적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당 조직지도부를 통해 후계자 결정 교시를 하달한 것이 전부였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결정된 후부터 김정일 사후 실질적인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김정일의 지원을 받아 군·당·보위기구에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김정은의 후계구축은 권력 이양, 김정은 우상화와 권위 구축, 지배엘리트와 인민의 충성 유도 등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김정은은 보위기구·군·당 등 모든 권력기관에서 자신의 권력통제 범위를 확대하면서 권력기반을 구축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김정은은 당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지 불과 3년 만에 실질적인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김정은은 아직 보위기구·군·당의 권력을 완전하게 장악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김정은의 권력은 상당히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후계자는 수령과 지배엘리트들의 지원을 받아 공식적으로 권력을 이양 받을 때까지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통치에 참여하면서 권력통제 범위를 확대한다. 김정은은 수령에 버금가는 절대적 지위를 바탕으로 보위기구·군·당에 대한 통제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경제와 외교에까지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김정은이 가장 먼저 장악한 곳은 국가안전보위부였고, 권력승계의 중심축인 군과 당에 대한 장악을 병행하고 있다.

지배엘리트들은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지원한다. 김정일의 권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수령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수령과 동일한 권위를 갖는 후계자에게 반발하는 것은 숙청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또 지배엘리트들의 행위는 10대 원칙을 통해 제도적으로 강제된다. 10대 원칙은 후계자에 대한 지배엘리트들의 무조건적 충성과 협력을 요구한다. 또한 지배엘리트들은 불확실한 후계자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는 것보다는 독재자의 아들을 후계자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다. 지배엘리트들은 후계자의 권력승계 과정에서는 공을 세워 미래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충성경쟁에 나선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후계구축
권력승계 과정에서는 새롭게 부상하는 지배엘리트 그룹과 몰락하거나 소외되는 지배엘리트 그룹이 형성된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지배엘리트들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정은 후계체제와 함께 새롭게 부상한 지배엘리트들은 장성택 당 행정부장,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등이다. 장성택(114회)과 김경희(111회)는 2010년 김정일 공개 활동을 가장 많이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당과 군에서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정은의 군 장악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 군부 주요 인사들과 보위기구 주요 인사들이 보좌하고 있다. 군에서는 최룡해 총정치국장,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등이 김정은의 군 장악을 지원한다. 당에서 김정은을 떠받칠 인물들은 장성택과 김경희, 김기남·최태복·김양건·김영일·박도춘·태종수·김평해·문경덕 등 당 비서들이다. 보위기구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리명수 인민보안부장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김정은의 후계체제를 떠받칠 핵심 후견그룹으로 통한다.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김정일의 권력을 승계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김정은의 앞길에는 숱한 권력 위협 요인이 산재해 있다. 김정은의 권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은 김정은이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김정은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후계구축 사업을 진행했고 국정운영 경험과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며 권력투쟁을 경험하지도 못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 지배엘리트 그룹 사이에서 권력과 이권의 재분배를 둘러싸고 당과 군, 군 내부 세력, 후견그룹과 측근세력들 사이에서 권력 갈등과 투쟁이 발생할 경우 김정은이 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고 권력투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권력투쟁을 막는 데 실패하거나 특정 세력의 득세와 영향력 확대를 막는 데 실패하게 되면 권력의 불안정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김정은이 권력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에서 권력과 이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나 갈등은 언제든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경제위기, 김정은 권력에 가장 큰 위협
김정은과 지배엘리트들의 갈등이나 지배엘리트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김정은과 지배엘리트들의 갈등은 후계자가 렌트 수집자(rent collector)의 역할을 방기할 때 일어난다. 김정은은 지배엘리트들에게 권력과 부를 배분함으로써 확실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렌트 분배의 수준은 김정은의 권력의 크기가 작을수록 증가하고 클수록 일정하게 감소할 것이다. 김정은이 지배엘리트들에게 부와 권력을 분배하는 데 실패하면 후계체제는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에 의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게 되더라도 통치과정에서 허점을 보일 경우 그를 둘러싼 야심가들에 의해 권력을 빼앗길 위험성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자신이 통제하는 정권의 고위 관리들에 의해 타도되었고 그들 중 적어도 한 명이 새로운 독재자가 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는 경제위기를 해결함으로써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민심이반을 극복하고 인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핵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대북제재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경제위기는 장기적으로 김정은의 권력에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면서 경제위기를 방치할 경우 단기적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지배엘리트들과 민심이반으로 인해 권력기반이 약화될 것이다. 반대로 김정은이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을 추진할 경우 경제 상황을 호전시킬 수는 있을 것이지만 개혁개방으로 인한 구조적 압력, 즉 정치적 자율성의 증가로 인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에게 경제위기는 어떤 정책을 선택하든 중대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권력승계 과정에서 김정은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협요인이다.

北, 통제와 감시체제가 과거에 비해 약화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후계자와 지배엘리트들의 행동을 중심으로 분석해 볼 때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비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력승계에 성공하더라도 김정은 체제가 흔들리게 될지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불확실하다. 왜냐하면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김정은 체제는 많은 도전과 위협요인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후계자가 렌트 수집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지배엘리트들의 반발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의 리더십과 통치능력이 김정은 체제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김정은은 권력투쟁을 통해 후계자로 등극한 김정일에 비해 정치 경험이 일천하고 통치능력 면에서 독재자로서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통제와 감시체제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된 것도 김정은 체제에 난관을 조성하고 있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김정은의 권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김정은이 후계구축 사업을 시작한 지는 3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과 군의 권력을 완전하게 장악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지배엘리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지배엘리트들의 분열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배엘리트들 중에서 불만세력이 형성될 경우 김정은 체제는 상당한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권력승계 과정에서는 부상하는 지배엘리트들과 소외받는 지배엘리트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특권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지배엘리트들 간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소외되거나 불만을 갖게 된 지배엘리트들은 장기적으로 후계체제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반대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후계자가 지배엘리트들을 통제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북한이 처한 국내외적 환경에서 기인하는 위협요인이 존재한다. 북한이 직면한 대내외적 위기가 그것이다. 김정은 체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벗어나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고 공존하려면 핵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그러나 핵 폐기는 현실적으로 대외적 위협으로부터 정권안보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 체제는 핵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북한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핵개발과 군사력 증강에 제한된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구조화된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 안정화 과정서 심각한 도전 직면할 수도
북한의 경제 위기는 김정은 체제에는 치명적인 위협요인이다. 경제 위기는 독재정권에게 최대의 도전 요인이고 독재의 몰락에 기여한다. 경제 위기와 식량난이 만성화되면서 당과 국가의 통제 및 감시 능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시장 확산과 외부 정보의 유입 확대는 민심이반을 심화시키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경제 위기를 방치하면 국가의 감시능력 약화와 민심이반의 확대는 가속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 경제 상황을 개선할 수는 있으나 지배엘리트들과 인민들의 자율성이 증가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김정은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김정은은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추진하지 않을 수도 없는 중대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경제 위기는 김정은 정권에서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정치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일 사후 북한은 세습 군주제의 권력승계를 제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김정은이 지배엘리트들의 도움을 받아 안정적으로 권력을 이양 받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할 것이다. 김정은은 권력이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수많은 정치적 도전과 위협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정책적으로도 핵문제와 경제 위기 해결은 김정은 정권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으로 권력승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김정은의 권력이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권력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권력투쟁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권력을 안정화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예상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 논문은 세종연구소 2011년 하반기 과제로 작성한 논문을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주석은 편의상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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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北 아동들 땀과 눈물로 완성되는 집단체조 ‘아리랑’   NKnet 12-06-13 5261
219 김영환 석방위 청원서 제출…靑 "계속 노력중"  NKnet 12-06-13 3878
218 장성무의 평양25時  NKnet 12-06-12 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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