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보편가치 확인한 ‘북한 인권 결의안’ [2005-11-19]

유럽연합(EU) 25개국이 공동제출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결의안’이 17일(현지시각) 유엔총회에서 찬성 84, 반대 22, 기권 62로 통과되었다. 총회의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유엔총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연속적인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커다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인권 탄압국’으로 명백히 규정됐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유엔인권위원회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와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연속으로 통과시켰다. 또한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임명하여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조사와 개선 활동을 진행해 왔으나 북한은 신경질적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이번 결의안을 주도한 유럽연합 국가들도 지난 몇 년 동안 북한과 수교하면서 인권대화와 개선을 전제로 내걸었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전혀 없자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것이다.

정치범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수인(囚人)들에 대한 인간 이하의 처우, 탈북자들에 대한 고문 등의 가혹행위, 게다가 최근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재방영된 공개처형 현장 등 북한 인권 상황은 ‘인권’이라는 말이 사치스러울 정도다. 이번 결의안 통과는 국제사회가 이러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인권은 인류사회에서 다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로 또렷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인권이라는 가치 앞에 민족이나 국경, 이념이나 종교 등은 우선순위를 내세우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세계화되는 인류사회의 흐름은 북한같이 극단적인 폐쇄사회조차도 더 이상 혼자서 살아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한국 정부는 기권을 선택했다. 정부의 이런 의사 표명은 이미 예견돼 왔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 인권에 대한 정면대응이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 적합하지 않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 민족이라는 잣대를 갖다 대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 설사 이를 인정한다 해도 우리 민족 구성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북한 주민의 기쁨과 행복을 도외시하고 극심한 희생에 눈감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화해협력에 이르는 길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인권대사와 여성인권대사를 임명하여 한국의 급속한 인권 개선 상황을 홍보하고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적 인권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는 짧은 시간 내에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자신감에 바탕을 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표결로 인해 국제사회는 한국이 인권 문제에 진정성이 있는 국가인가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유엔 결의안 표결이 있기 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도 결의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53.3%, 기권해야 한다는 응답이 22.2%로 나타났다. 이미 우리 사회의 여론이 정부의 입장과는 다르게 형성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은 안팎으로 매우 난처해졌다.

오는 12월 10일은 57차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날 전후로 서울에서 대규모 북한 인권 국제대회가 개최되어 국제세미나, 대학생 국제회의, 음악회, 사진전시회, 기도회와 미사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북한 인권에 대해 속도가 빨라지는 국제사회의 움직임과는 동떨어져 있던 한국 사회도 북한 인권에 관한 관심이 빠르게 높아질 것이다. 또 서울로부터 불과 50여㎞ 남짓 떨어진 곳에서 비참한 고통에 빠져 슬픔에 흐느끼고 있는 동포들의 아픔에 무지하고 냉담했던 우리 모두의 닫힌 양심을 깨우는 거대한 흐름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사단법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한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