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납북 아들과 같이 살고 싶다”

“아들아 보고 싶다. 하루 빨리 같이 살자.”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납치를 시인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김영남씨일 가능성이 짙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씨의 어머니 최계월씨는 “제발 아들을 데려다 달라”며 흐느꼈다. 팔순 노모의 애타는 모정(母情)은 김씨가 실종된 당시와 변함이 없었다.

1978년 친구들과 수영을 하고 오겠다며 군산 선유도로 나간 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실종 당시 김씨의 어머니는 말 그대로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고 한다. 죽었으면 시체라도 나와야 할 것이 아닌가. 혹시나 누가 죽이고 땅에 파묻었나 싶어 선유도에 판 구덩이만 수십 개. 무당을 불러 굿판도 벌였다. 그러나 김씨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끝내 아들 찾기를 포기하고 옷과 사진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그리고 제사까지 지냈다. 실종된 지 30년이 다 돼가는 11일 어머니 최씨는 아들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일본정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다음날 기자회견을 가진 최씨는 아들의 송환을 위해 정부가 노력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실종된 김씨의 누나 영자씨도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우리 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 측에 송환해 달라는 요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김씨 송환 문제와 관련, 아직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씨의 아내 메구미 씨는 북한 당국이 지난 94년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일본에서는 이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씨와 딸은 아직 북한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미 지난 1월 한국의 납북자 단체는 메구미의 남편이 선유도에서 납치된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에 신속한 확인을 요청했다. 일본 정부도 2월 중순 한국에서 다섯 납북자 가족의 혈액과 머리카락을 채취해 미리 확보해둔 메구미의 딸 혜경씨와의 디옥시리보핵산(DNA) 대조작업을 벌여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씨임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납북자 단체 관계자를 만나 이 사실을 극비에 부쳐 달라고만 종용했다고 한다.

이제 김씨 가족의 송환 책임이 우리 정부로 넘어왔다.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씨 가족의 송환으로 문제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의 납북자 처리 연장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에 끼워 넣도록 노력하고, 북한이 허락하면 상봉을 추진하겠다는 말이다.

일본 정부가 공식 확인한 일본인 피랍자는 모두 13명이다. 한국은 전후 납북자만 460여명에 이른다. 숫자를 떠나 자국민이 강제로 억류돼 있는데 납치범의 선처만 바란다면 이는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다. 최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 문제 해결을 공언했음에도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 전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최근 들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말 유엔총회에서의 북한인권 결의안 가결,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북한인권 국제대회에 이어 3월에는 유럽연합(EU) 의회에서 탈북자 청문회가 있었고, 오는 4월 말에는 납북자에 대한 미국 의회의 청문회와 북한 자유의 날 행사가 워싱턴DC에서 열린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재공연에 들어간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는 더 이상 피해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님에도 우리 정부만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이번 김영남씨 가족 송환 문제는 납북자를 포함하는 북한 인권 전반에 대한 참여정부의 마지막 시험대가 된 셈이다.

한기홍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