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납북자, ‘가족상봉’ 아닌 ‘송환’ 하라

납북된 김영남씨와 어머니 최계월씨가 6월27일 28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수영하러 간다고 나갔다가 근 3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을 TV로 지켜본 많은 국민은 어쩌면 저렇게 기구한 운명이 있나 싶어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런데 사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9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씨는 ‘납치나 의거 입북이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 돌발적 입북’이라고 주장했다. 나무 쪽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북측 선박에 구조돼 북한으로 갔고, 북한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해준다고 해서 머무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를 납북이니 뭐니 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납치냐 조작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일본 여론은 대부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언론은 북한 당국의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엉터리 주장이라고 평가했으며, 주요 신문들도 “김씨 발언에 의문점이 많고 북한이 그 동안 해온 주장과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 NHK는 김씨와의 회견을 위해 평양에 취재기자까지 보낸 상태다.

어쨌든 상황은 김씨를 앞세운 북한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됐다. 김씨가 일본인 피랍자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이 문제는 한국을 넘어 국제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김씨가 북한에 가게 된 경위 자체가 의혹에 싸이게 되면서, 당연히 메구미씨 사망에 대한 그의 증언도 의심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한국의 납북자 단체를 비롯, 일본에서는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순수하게 마지막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커다란 실망 속에서 기자회견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메구미의 부모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메구미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북한 당국이 돌연 김씨 가족의 상봉을 제안해 기자회견까지 열겠다고 했을 때, 관련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북한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은 팔순 노모가 죽기 전에 자식을 만나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막아설 그 어떤 명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만남은 어떤 연유에서든 헤어진 어머니와 아들의 만남이라는 순수한 의도를 지지했던 모든 사람을 배신하고 결국 인도주의 문제까지 왜곡하는 북한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국내외의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동안 남북의 화해협력이라는 대(大)명분을 걸고 모든 비판적 의견을 봉쇄했던 한국 정부에 대해 그 진실성을 의심하는 계기가 됐다.

김씨의 기자회견 이후 오늘까지 한국 정부는 이렇다 저렇다는 공식적인 견해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납북자들을 ‘이산가족’이라는 범주에서 ‘상봉’이라도 어디냐는 식이다. 이래서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그 무슨 큰 약점이라도 잡혀서 정부의 기본 기능마저도 외면하느냐 하는 세간의 뜨거운 여론을 달래기 어렵지 않겠는가.

김씨 가족의 상봉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납치는 범죄이기 때문에 원상복귀 외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며 북한이 제안한 손녀 은경(혜경)양과의 상봉을 거부하고 ‘메구미의 송환’이라는 원칙을 지켜온 메구미 부모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누군들 자신의 피붙이를 만져보고 안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한국 정부도 원칙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볼 시간이 됐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기홍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