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엔 사무총장국’의 北인권 외면

지난 주 유럽연합 주도로 제출된 북한인권결의안이 이번 주중으로 유엔총회에서 통과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총회는 지난해 말 북한인권에 대한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통과시킨 바 있다. 또한 유엔인권위에서는 이미 3년 연속 북한인권 결의안이 통과됐고, 특별보고관이 임명돼 북한인권에 대한 상세하고도 포괄적인 조사보고서까지 제출돼 있다. 한국 정부는 유엔인권위 결의안과 지난해 유엔총회 결의안 모두 불참 내지는 기권 의사를 표시하여 국내외 인권옹호세력의 기대를 저버린 바 있다.

이번 결의안을 놓고 외교통상부에서는 이미 강경화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이 인권문제를 주로 담당하는 유엔 난민 부(副)고등판무관에 진출해 있고 반기문 전 외교통상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하기 어렵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반 전 장관 역시 유엔 사무총장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나 통일부 등은 지난 몇 년 동안 그래왔듯이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이유로 기권해야 한다는 의견이라는 보도도 있다.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내에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민주화와 급격한 인권 개선도 성취했다. 이에 대해 한국인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반 전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도 한국과 한국인의 높아진 위상을 세계가 알아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같은 민족이자 바로 이웃한 북한의 끔찍한 인권상황을 이상하리만치 철저히 외면한 것은 우리들의 자긍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또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는 인권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이제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나라마다의 특수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근현대 인권개선의 역사를 볼 때,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 경우지만 대부분의 자본주의 나라가 민주주의와 인권개선을 이루는 데 경제성장은 매우 중요한 선행과제였다. 이는 중국, 베트남과 같은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정치체제의 유연성이 높아질 때 인권에도 일정한 개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억압 여부를 정권의 존폐에 대한 정당성과 곧바로 결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유럽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정권의 교체와 정치체제의 변동이 인권개선으로 이어졌다. 특히 나치 치하의 독일이나 폴포트 하의 캄보디아 같은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의 경우는 억압적 정권의 붕괴가 인권개선의 전제조건이었다. 북한처럼 인민들의 극단적 기아와 빈곤에는 아랑곳없이 국가자원을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면서, 점점 더 개혁·개방과는 반대 방향으로만 향하는 체제도 인권의 궁극적 개선을 위해서는 정권의 교체가 필수불가결한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통과는 북한에 대해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김정일 독재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이제 남은 초미의 관심사는 한국 정권담당자들의 태도다. 이번 결의안에 대한 태도에 따라 자신들이 인권이라는 간판을 앞세울 뿐 실은 사이비 민주주의자에 불과한지, 아니면 동포와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가 판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공조’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김정일 정권과 함께 세계인의 비난의 한복판에 설 것인가, 반대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인권옹호의 길에 동참할 것인가. 이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한기홍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