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매일 보는 아주머니였는데…”

전직경찰 남편·대학생 아들 서둘러 속초로
“전직 경찰 남편·대학생 아들 둔 조용하고 예의바른 평범한 주부”
일행 “깨보니 박씨 없어…해돋이 보러간 줄 알아”
관광객들 “해안 가지말라는 경고 한번도 못들어”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박아무개(53·여)씨의 가족과 이웃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박씨의 주검은 11일 밤늦게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져 부검이 이뤄졌다. 속초병원에 안치됐던 박씨의 주검은 이날 밤 10시30분께 국과수로 이송됐다.

박씨의 유족들은 “북쪽이 발표한 사고 경위를 전혀 믿지 못하겠다”며 반발했다. 박씨의 언니는 “평소에 하지 말란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성격인데, 무슨 규정을 어겼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 새벽에 혼자 산책을 하다 총을 맞았다는데 얼마나…”라며 흐느꼈다. 그는 “우리 식구 중에서 가장 겁이 많은 아이인데 새벽에 혼자 나갔다는 사실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전직 경찰관인 남편 방아무개(53)씨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23)은 이날 저녁 일찍부터 국과수에 나와 박씨의 주검을 기다렸다. 그러나 부검 대기실에서 취재진과 만난 남편 방씨와 아들은 큰 충격에 휩싸인 듯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씨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소형 아파트에서 남편·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다. 이날 오후 찾은 박씨의 집은 복도 쪽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가족들이 급하게 집을 나간 듯 식탁 위에는 반찬통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웃들은 박씨를 ‘조용하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기억했다. 바로 옆집에 사는 50대 주민은 “평소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도 잘하고 경우가 바른 사람이었다”며 “이 아파트에서 산 지는 한 10년쯤 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청소원은 “청소하다 마주치면 고생한다고 격려해 주곤 했는데, 그런 양반이 이런 일을 당하다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또다른 이웃 주민(65·여)은 “사고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어떻게 여행을 갔다가 총을 맞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씨와 함께 지난 9일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 이날 남쪽으로 돌아온 동료 관광객들은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경찰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와 동행한 동창생 박아무개씨는 이 조사에서 “오전 5시10분께 일어나 보니 박씨가 없었다. 숨진 박씨가 ‘해변에 나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 게 생각나 해돋이를 보러 간 줄 알았다. 오전 7시30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아 현대아산 쪽에 신고한 뒤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저녁 서울에 도착한 일부 관광객들은 “총격 장소인 해안에 가지 말라는 경고를 현대아산 쪽으로부터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을 내어 “민간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사실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정부와 현대아산의 현장조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한국진보연대 관계자는 “숨진 분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고 애도를 표한다”며 “하지만 이 일로 남북교류가 중단되거나 남북관계가 악화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민영, 속초/김성환 기자, 연합뉴스 min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