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유·인권을 부르짖을 때
탈북고아들은 버려진채 지쳐갑니다"

´북한인권개선´ 캠페인 여는 데일리NK 한기홍 대표
"동일한 잣대로 북한인권 평가해야…인권은 인류 보편의 것"

2008-09-23 08:58:59



“자유와 인권은 세계 어디서나 동등한 가치입니다. 북한인권 운동을 근 10여년간 해오며 느낀 것은 우리가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겁니다. 한민족이라는 동포애로 무작정 감싸기보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행동을 나서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북한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울 권리조차 박탈당한 그들에게 덜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북한인권 운동을 해왔던 한 남자가 있다. 그와 함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전우들은 그를 향해 비난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변절했다’고 손가락질도 했다.

그러나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라던, 한민족이자 운명공동체라던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접한 이후, 그와 같은 타인의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민주화가 대의를 위해 결연히 나선 젊은 지성의 결단이었다면 북한인권 운동 또한 참혹한 현실을 접한 이 땅의 지성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실. “요즘 정신이 없습니다”고 인사를 한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47)는 23일부터 시작하는 북한인권개선 캠페인 준비로 바빠보였다. ‘유엔인권선언 60주년 기념 - 북한 동포와의 희망 나눔 : 탈북고아에게 사랑을!’이란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캠페인에서 그는 북한민주화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탈북자 강철환 씨와 함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대회는 이전과는 달리 국내 탈북자 및 북한인권단체들이 주축이 돼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특히 북한인권결의안으로 국내에서도 북한 주민들이 하루 빨리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북한인권에 대해 열성적으로 말하는 한 대표의 모습에서는 과거 ‘운동권’의 그림자를 찾기란 어려웠다. 1983년 연세대 심리학과 재학 당시 교내 시위를 주동,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력이 있는 한 대표는 골수 운동권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그는 인쇄노조, 전태일기념사업회, 철도청 등에서 14년간 노동운동을 했다. 북한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진보좌파 성향이 강했던 인물이었던 셈.

그런 그가 변한 것은 1990년대 중반 탈북자들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높이는데 일생을 투신해야겠다는 신념으로 가득찼던 한 대표가 접한 북한의 현실은 비참했고 상상보다 잔인했다. 억압과 강요, 명령이 지배하는 사회.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소통’을 대신하는 침묵의 국가에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의 눈에서는 두려움과 희망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입은 있으나 말은 빼앗긴 북녘땅의 사람들에게서 한 대표는 ‘절망’을 보았다고 말했다. 거창한 계기는 아닐지라도 문화적 충격은 컸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이야말로 세상에서 외면받은 민족을 돕는 일이라고 느낀 그는 ‘북한 주민들의 친구’를 자청했다.


화려한 주목이나 거창한 치하는 없었지만 그늘진 곳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이를 알리는 것에서 한 대표는 깨달음과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북한인권 개선에 관한 일련의 활동을 하면서 정치범 수용소나 공개처형, 납북자, 국군포로, 식량난 등 북한 내부의 심각한 인권유린과 현안들이 쟁점화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동안의 활동이 ‘총론’이었다면 이제는 ‘각론’으로 들어갈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탈북고아’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건 것도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급증한 탈북자와 탈북고아들의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미 중국에 체류중인 탈북고아는 2000여명에 이르고 탈북 여성과 중국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무국적 어린이 또한 1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어른들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어린이들은,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어떠한 공권력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기아와 인신매매, 꽃제비의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크로싱’에서도 꽃제비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다른 친구의 죽음에 무심한 어린이들의 눈빛, 잠이 든 다른 어린이의 옷을 가져가거나 죽은 친구의 신발을 가져가면서도 별다른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너무 많이 성숙해있었다.

한 대표는 이같은 탈북 고아들에 대한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탈북 고아의 숫자가 4000명을 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잡히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니 숫자 파악이 어렵지만, 적지 않은 수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걸고 도강을 한다는 의미이죠. 어린이들은 희망의 상징 아닙니까. 그런데 탈북 고아들은 꿈없이 거리를 떠도는데도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무관심합니다.”

그는 “국내에도 100여명 이상의 탈북 고아가 있다”면서 “그러나 일가 친척없이 이질적인 남한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친구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는 뒷전이다. 북한 주민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탈북 고아들은 소외되는 듯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북한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남한 생활이 탈북 고아들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의 외롭고 황량한 마음을 보듬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사춘기의 열병도 더욱 아프게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외국에서 지원을 받아 생활의 어려움이 없는 경우,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린이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일반학교 자퇴 후 탈북자들이 모인 대안학교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 대표가 개인적으로 연을 맺고 있는 한 탈북 남매는 가족의 정을 그리워하곤 했다. 이들 남매는 일본의 북한인권 관련 단체의 지원을 받아 지방에 정착해 케이스. 생활고를 겪지 않았지만 대신 아이들은 정신고를 겪었다. 따뜻한 관심에 목말라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내주지 못했고, 곁을 내주는데 두려움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탈북자나 탈북 고아들을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봅니다. 단지 태어난 곳이, 자란 환경이 다를 뿐인데도 우리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서글프더군요.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나 탈북 고아들이 원하는 것은 ‘사랑’이지 동정이 아닙니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길 원하고 고민이나 기쁨을 나눌 친구도 자리잡길 바라는 거지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단계까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통일을 빨리 하자면서 왜 그런 마음의 통일이나 포용에는 신경쓰지 않는지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대표는 “그래서 북한인권 단체들은 악역을 도맡아 해왔다”고 웃었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북한 주민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돕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인도주의적 사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폐쇄된 북한 체제에서 인도주의 활동은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투명성’과 ‘상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북한에 대해 잘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러나 이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을 계기로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실상은 잘 모르고 있다는 것, 일종의 환상이나 막연한 통합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동안 북한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고 말하면 화해협력의 기초를 다졌다는 반박이 돌아옵니다. 우리도 북한과 담을 쌓고 살자고 말하진 않습니다. 마음의 통일이 선행돼야 자연스럽게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죠. 그런데 지금 마음의 통일이 이뤄졌습니까. 오히려 북한은 더욱 먼, 실체를 알 수 없는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 대표는 “제발 동일한 잣대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미얀마의 인권은 걱정하면서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주권침해’라는 진보좌파의 주장에도 그는 불만이다. 인권은 인류 보편의 것이지 국가나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정치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대표가 우려하는 다른 하나는 북한인권 운동을 ‘반북운동’으로 몰고 가려는 시각이다. 독재와 권위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 실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미국의 음모나 보수세력의 의도 등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그는 종종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에는 좌우도 보혁도 없다. 인류애적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민족적 입장에서 접근하거나 어떤 입장을 선택해도 북한인권은 우리가 개입할 필요성이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어 “더욱 중요한 것은 독재체제 아래 인권 침해를 당하는 당사자가 얼마나 개선이 됐느냐지, 단순히 이분법적 사고나 형식논리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우리는 자신의 자유나 인권이 침해받는 것에 반발하지만 다른 이의 것을 침해하거나 침해당하는 것을 막는 것에는 의외로 무관심하다. 인권국가라면 적어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대표는 북한인권 문제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탈북 고아와 같은 문제들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은 정치적 또는 이념적 현안이 아니라 인도적 사안임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현 정부 들어서 국가인권위원회도 북한 인권 포럼 등을 조직, 북한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정부가 ‘북한인권에 대해 할말은 하겠다’고 공언했으니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북한인권포럼은 이미 전문성과 경력, 이념적 편향성 등 자질 시비가 일어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10년간 그랬으니 한꺼번에 바뀌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지난 시간동안 북한인권에 외면한 데 대해 한번도 평가나 반성없이 정부에 따라 코드를 맞추는 식으로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입니다. 정부도 좀더 북한인권 문제에 신중을 기하되 민간과 정부의 영역을 나누어 복합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한 대표는 “북한인권을 정부가 주도해서 풀 수 있는 국가만능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정부는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하는 대상이므로 인류보편적 측면에서 인권은 양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정도가 가장 이상적”이라면서 “민간이 주도하는 인권재단이나 기록보존소 등을 설립할 수 있도록 정부-민간이 역할 분담에 나서, 양자 간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연거푸 했다. 탈북 고아에 대해 말할 때는 씁쓸한 표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오지랖이 넓게 보일지라도 북한인권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10년을 뛰어 다녔다’고 말한 한 대표는 시나브로 북한 주민들과의 마음의 거리를 많이 좁힌 듯했다.

“북한 문제는 타인의 일인양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화된 이후, 남한 국민들이 당신들을 잊지 않고 도와주려 했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마음의 거리는 이런 노력으로 줄어드는 것이니까요. 또 그래야 우리도 북한 주민들에게 빚을 진 죄인의 감정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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