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두만강 건넜지만 돌아온건 차가운 시선”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 개최…탈북 대학생 박충식, 탈북 고아 시례 증언
각국 대학생 “북한 인권은 지식인의 소명”…국게적 협력 강화 방안 모색
2008-09-26 18:25:27

“북한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곳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언제 붙잡혀 갈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다 한국에 왔을 땐 기대에 부풀었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도 어딜 가든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탈북자 박충식씨(24)의 표정은 진지했다. 생존을 위해 1997년 13살의 나이로 어린 동생의 손을 이끌고 도강을 감행했던 박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한국 내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힘들었던 기억을 솔직히 전했다.

박씨는 평남 문덕 출신으로 2000년 고생 끝에 여동생 박선희씨(22)와 함께 한국에 입국했고, 2005년에는 일본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 입학했다.

박씨는 26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에 참석, 북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 고아들의 사례를 증언했다.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몇몇 탈북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입을 불이익 때문이다. 그러나 박씨는 주저하는 기색없이 탈북 고아로서의 고달팠던 삶과 국내 정착 이후 느꼈던 한국 사회의 ‘벽’에 대해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박씨가 7살 때 어머니를 여윈 뒤 3년 만에 아버지도 남매를 두고 눈을 감았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던 것도 한때뿐. 1997년 식량난 이후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들어지자 ‘생존’을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중국은 ‘먹을 것이 있는 기회의 땅’과 다름없었다. 기대와 희망으로 국경을 넘었지만 경비대에 발각돼 강제송환되거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고 그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박씨는 “겨울에 다리 밑에서 동사해 있는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이 북조선의 교복이라 꽃제비인 걸 알았다”며 “(이와 같은 신체적 고통보다도) 중국 공안에 발각돼 강제송환되거나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하루하루가 불안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4년 동안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지만 행복한 기억도 있었다. 중국서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양부모를 만났던 것. 특히 2000년 북한 민중 구출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의 도움으로 한국에 정착하게 되자 기대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탈북 고아 출신인 박씨에게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그가 ‘탈북자’임을 밝힐 때마다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 신기함과 불편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한국 사회가 탈북자에 가지는 편견과 오해, 선입관에 부딪치면서 박씨는 그런 점들이 싫고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박씨와 같은 처지의 탈북 고아들은 2000~4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날 2008 북한인권국민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된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에 참석한 대학생들은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대학생들이 북한 인권 문제게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입을 모았다.

윤주용 북한인권청년학생연대 대표는 “현재 수천명에 달하는 재중 탈북고아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이들을 위해 나서는 건 대학생들의 절실한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인권은 민족, 인종, 국적을 뛰어넘어 어느 사회를 살아가든, 인간이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가치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는 대학생 단체들과 개인 간의 건설적인 논의를 진행돼 앞으로 탈북 고아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인권이라는 희망의 빛을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08 북한인권국민캠페인 공동대회장인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시대적 양심과 지식인으로서의 용기를 가지고 모였다. 우리는 지금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이라며 “여러분이야말로 정의에 가장 빨리 도달하게 하는 원동력인 만큼,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를 통해 탈북 고아들과 북한 어린이들의 고통을 하루 속히 해결할 수 있는 국제적 협력이 이뤄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인권국민캠페인 고문을 맡은 박범진 전 의원은 “대학생 북한인권운동은 한국 학생운동사 중에서 시대정신에 가장 부합되는 운동”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오늘 회의가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사회적 협력 분위기를 확산하고 전파하는 훌륭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남수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대표는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 고아는 대부분 합법적인 신분을 갖지 못해 강제북송의 위험에 놓여있을 뿐 아니라 정확한 규모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특히 나이가 어린 탈북 고아들은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떠돌이 생활을 하거나 구걸을 하는 과정에서 범죄에 노출되기 쉽고, 심지어는 아동 매춘과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심리적 불안과 극심한 정신적 충격, 스트레스, 행동장애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들에 대한 신속한 지원과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숙명여대 북한인권동아리 H.A.N.A 유지숙 대표도 “지난 10년간의 노력으로 북한 인권이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북한 인권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한 뒤 “북한 인권 운동의 질적 향상을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앞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대학생 북한 인권 운동의 도약을 위해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라 자라 아르구도 씨는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 침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인터넷 등 도움이 되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인권 침해를 알리는 한편,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캠페인에 참여하여 인권 침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론화를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유야마 아츠시 씨는 “북한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선 북한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와 협력이 중요하다.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게 아니라 탈북자들의 증언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각국 정부가 북한 인권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또한 대학생들이 비판에 나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고려대, 경희대, 명지대 등 5개 대학 북한 관련 동아리와 미국, 일본, 유럽 등 국내외 대학생 200여명이 참석했다.

[변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