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뒤숭숭한 와중에 북한 핵실험 일보를 들은 국민들은 불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황망한 표정을 했다.
25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TV를 보던 시민들은 방송 화면에 갑자기 북한 핵실험 속보 자막이 뜨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발 구미행 열차를 기다리던 주부 김모(46)씨는 "처음에는 오보인 줄 알았다"며 "하필 이럴 때 북한이 핵실험을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정부 공식 분향소 앞에 줄 서서 분향 차례를 기다리던 염모(67)씨는 "온 나라가 상중(喪中)인데 예고도 없이 이럴 수 있느냐"며 "북한이 말로만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고 했다.
시민들은 무엇보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노 전 대통령 유족에게 조전(弔電)을 보낸 지 하루도 안 돼 이 같은 도발행위를 한 데 대해 실망과 분노를 표했다. 회사원 이승호(33)씨는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해놓고 실상은 무례를 저질렀다"며 "핵실험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남북 간 신뢰는 무너졌다"고 했다. 개인사업을 하는 박모(57)씨는 "국내에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이 싸우게 하려고 노 전 대통령께서 서거한 시기를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무장지대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경기도 대성동 마을의 김동현(53) 이장은 "온종일 모내기를 하다 오후 8시쯤 뒤늦게 뉴스를 들었다"며 "잠잠하다 싶었더니 또 이런 일이 터지다니…. 북한과 거의 얼굴을 마주 대하다시피 하고 사는데 불안해서 농사일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도 서너 명씩 TV 앞에 모여 뉴스 속보를 주시했다. 시장에서 15년 동안 숙녀복을 팔아온 유모(49)씨는 "설마 우리한테 쏠까 싶긴 하지만 신종 플루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이 줄고 있는데 여기다 북한 핵실험까지 터져서 장사에 지장이 올까 걱정된다"고 했다. 대학생 김현후(21)씨는 "뉴스를 듣고 '북한이 또 생떼를 쓴다' 싶었다"며 "이번에는 무슨 속셈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릴 것 없이 북한을 비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논평을 통해 "우리 국민이 마음껏 애도할 시간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고 핵실험의 위협에 긴장토록 하는 것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손을 맞잡았던 고인(노 전 대통령)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이 취할 태도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김윤태(38) 사무총장은 "북한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상황에서 핵실험을 강행한 데는 어수선한 국내 상황을 이용해 우리 정부가 명확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하고, 한반도 위기상황 자체를 이명박 정부의 탓으로 돌리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도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한국 국민들의 충격과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만을 상대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인권단체연합회 김규호(43) 사무총장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민족 공조를 주장하면서 한국과 주변국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했다.
신중하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47) 사무총장은 "실행 시점이 예상보다 빨랐을 뿐 북한의 2차 핵실험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며 "북한의 행동은 유감이지만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우리의 책임도 있으며 따라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