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북한화폐개혁 특종 데일리NK 손광주 편집인

“김정일 핵 무장에 우린 휴대폰으로 맞선다”

“김정일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면 우리의 ‘화살’은 바로 휴대폰입니다.” 북한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의 손광주 편집인(53·편집국장 겸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휴대폰으로 북한을 손바닥 보듯 하는 곳. 인터넷과 외국방송을 철저히 차단하는 ‘평양 당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해 11월 30일 ‘북의 화폐개혁’ 소식을 세상에 가장 먼저 알린 데일리NK. 청와대와 가까운 서울 체부동 뒷골목 작은 빌딩 내 사무실은 너무 평범해 보였다. 이런 곳에서 세계적인 특종을 알렸다니…. 기자가 처음 갔을 때 손 편집인은 자리에 없고 7~8명의 기자들이 열심히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술 냄새를 살짝 풍기며 손 편집인이 들어왔다.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인상. 하지만 북한 관련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자 금세 표정이 바뀌었다.

“북의 11·30 화폐개혁은 실패했다고 봅니다. 화폐개혁의 주역인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전격 해임됐다는 베이징발 보도가 있는데 우리 통신원과는 아직 확인은 못했지만 사실일 것으로 보입니다.” 손 편집인은 “1975년 헬싱키협약 때 당시 소련이 서방세계로부터 경제지원을 받고 인권신장에 노력하기 위한 조건으로 팩스·전화기·VCR(비디오 카세트 레코더)의 유입을 허락합니다. 단절된 사회와 개방사회를 연결하는 이런 통신수단이 소련사회로 흘러갔듯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북한에서는 휴대폰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황장엽씨 만나 북한문제 집중 탐구

휴대폰 기지국들이 있는 중국과 접한 북한땅 10~20㎞ 지역 내에서는 중국 이동통신사에 가입한 휴대폰이 잘 터진다. 심지어 서울에서도 통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2007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내부 통신원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나와서 데일리NK 특파원들과 접촉, 북한상황을 전달해줬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특파원과 통신원들이 휴대폰 통화로 북한정보를 취합하거나 교차 확인을 한다. 취합된 정보가 서울로 ‘송고’되면 탈북자 출신 기자들과 데스크가 다시 확인작업을 거치게 된다.

2008년 말부터 북한당국이 국경지역에서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검열과 감시를 부쩍 강화하자 최근엔 통신원들이 휴대폰 기기를 소지하지 않고 심카드(국내의 유심카드와 비슷)만 들고 드나든다고 한다. 중국에서 산 심카드를 갖고 북에 들어가 북에 있는 휴대폰에 자신의 심카드를 꽂아 사용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휴대폰 사용은 한국과 달라 이동통신사가 파는 심카드를 구입해 자신이 갖고 있는 휴대폰에 끼우면 된다. 심카드도 사전에 일정액이 충전되어 있는 종류가 있어, 이 심카드만 있으면 사전 충전금액이 다 소모될 때까지 북한에서 중국 이동통신을 이용할 수 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손 편집인은 1999년 4월부터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1997년 망명한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출신인 황장엽 당시 이사장과 인연을 맺는다. 황 이사장의 개인 보좌역도 하면서 1주일에 두 차례 10시간이 넘는 마라톤 세미나를 하며 북한사회에 깊은 관심과 지식을 축적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임동원 원장시절 햇볕정책 일변도의 대북 정책으로 자신이 제안하는 리스크 관리 정책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열심히 취재해서 쓴 기사가 신문에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면 기자 뭐하러 합니까.” 손 편집인은 2004년 12월 사표를 내던지고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소속 운동권 출신 후배들의 권유로 데일리NK에서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북한 관리나 주민들이 김정일을 ‘또라이’ 또는 그냥 ‘김정일’이라 부른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손 편집인은 “북에서 김정일에 대한 호칭은 공식적으로는 ‘장군님’ ‘지도자 동지’라 부르고 주민들은 자기네들끼리 말할 때 ‘그 치’ ‘저 치’ 등으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대학생들은 ‘장군님’이라는 존칭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창피하다고 생각합니다. 황해도 시골 아주머니·할머니들은 아직 ‘장군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또라이’라는 용어를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또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라고 말했다.

2005년 1월 1일 공식적인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 데일리NK엔 국내 취재기자가 7명 있다. 편집부에는 탈북자 출신 기자 2명이 북한소식에 대한 확인·검증 작업을 담당하고 있고 영문·일문·중문 번역 및 에디터 인원도 다수 있다. 한국에서 보낸 중국 현지 특파원이 3명 있다.”

최고의 특종은 공개총살 동영상 보도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소식을 알려주는 통신원들은 누구이며 왜 그런 일을 기꺼이 하는가? 손 편집인은 “1999년부터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통해 구축된 통신원 인맥이 일련의 특종기사를 만들어 낸 원동력입니다. 우린 통신원을 지역별·계층별로 세분화시켜 기사의 정확도를 위해 크로스 체크합니다. 그는 “통신원들은 농부·광원·노동자부터 당원·외화벌이 일꾼·대학 교수까지 다양하다”며 “통신원들은 북한사회와 북한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데일리NK는 이들에게 전화비와 교통비, 생활비 정도를 보조하고 있는데 사실 그 액수라는 것이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한 달 용돈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손 편집인이 내세우는 데일리NK의 최고 특종은 ‘화폐개혁’이 아니라 2005년 3월의 ‘공개총살 동영상 최초 보도’이다. 화폐개혁이야 어차피 몇 시간 뒤에는 연합뉴스나 다른 탈북자 단체들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소식이었다고 한다. 실제 NK지식인연대라는 탈북자 단체에서는 데일리NK보다 1시간 먼저 ‘화폐개혁’에 대한 소식을 간단하게 게재했다. 그러나 공개총살 동영상은 상황이 달랐다. 북한의 공개총살 실태가 세계적으로 알려지자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이 탄력을 받는 등 북한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북한 인민보안성은 약 3년 정도 야외 공개총살을 자제했다고 한다. 물론 실내처형으로 대체됐지만 데일리NK의 보도에 대한 북한당국의 첫 리액션이었다고 여기고 있다.

명성 높아졌지만 살림살이는 열악

“공개총살 동영상을 보도한 뒤 어느 비오는 일요일이었어요. 노르웨이의 한 작은 마을에 있다고 하는 이름 모를 인권단체가 ‘우리가 잘 보고 있다. 힘내라’라는 격려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멀디 먼 나라에서도 우리가 보도한 뉴스를 주목하고 있는데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북의 인권에 대해 입을 봉하고 있었지요.” 손 편집인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손 편집인은 “데일리NK의 창립목표는 ‘북한 내부의 변화’입니다. 따라서 저희 보도로 북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아울러 북한당국의 공식적인 조치 등이 동반돼야 좋은 기사라고 평가합니다”라고 말했다.

북의 화폐개혁을 보도한 뒤 NYT 등 해외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데일리NK의 명성은 올라갔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데일리NK의 경영수지는 열악하다. 미국민주주의재단(NED)으로부터 해마다 활동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국내엔 후원자가 없다. 대기업 광고는 실어본 적이 없고 공공기관 홍보광고가 가끔 들어온다고 한다.

손 편집인은 “연구소를 나올 때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곧 없던 일이 돼버렸죠. 왜 그랬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죠. 한기홍 발행인이 집도 팔고 고생 많이 했죠.” 직원들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저임금’으로 버티는 상황이라며 “그래도 보통 시민 200여명이 수년째 꾸준히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어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 정재환 편집위원 jhj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