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심리전'은 이미 진행중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반공방송 노골화

김경환 기자 kkh@vop.co.kr

지난 5월24일 정부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 대북심리전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두 달 가까이 대북심리전은 미국의 반대에 가로막혀 공식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대북확성기 방송의 재개가 전부는 아니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심리전은 '공식적'으로 '공공연하게'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공식 대북방송', KBS 한민족방송

대표적인 대북심리전의 수단은 바로 KBS한민족방송.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된 이 라디오 방송은 목적 자체가 '반공선전'용이었다. 말 그대로 대북심리전 차원의 방송이다.

KBS한민족방송은 방송법에 근거가 마련돼 있다. 방송법에서 제4장(한국방송공사) 제54조(업무)에는 KBS의 업무에 대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대외방송(국제친선 및 이해증진과 문화·경제교류 등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과 사회교육방송(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대상으로 민족의 동질성을 증진할 목적으로 하는 방송)의 실시"를 명시하고 있다.

KBS한민족방송은 북한 국영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주파수 대역이 비슷하고 출력이 높아 북한에서 잘 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송은 1961년 국제방송으로 대공방송과 해외방송을 해오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따라 '사회교육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재편해 대북방송을 계속해왔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반공 방송이 많이 줄어들었다.

2007년 8월15일 정연주 사장 시절에 한민족방송은 북방동포와 750만 재외동포를 아우르는 한국의 중심 채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내용도 북한체제 비판보다는 객관적인 정보 제공에 주력했다.

KBS한민족방송은 전라북도 김제시와 충청남도 당진군에 송신소를 두고 있다. 당진송신소는 박정희가 10.26 사건 당일 생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이기도 하다.

2007년 1월 부터는 KBS의 경영 합리화 정책에 따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화성송신소가 폐지되면서 화성송신소에서 송출하던 단파방송(6.015 MHz, 6.135 MHz)이 중단됐지만 올해 1월부터 6.015 MHz 단파방송 송출이 재개됐다. 현재는 AM 972KHz(1방송), 단파 6015KHz(1방송), AM 1170KHz(2방송)으로 송출하고 있다.

'뉴라이트' 앞세운 '반공' 방송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MB낙하산' 이병순 KBS 사장이 취임한 뒤부터 다시 한민족방송은 냉전시절의 '반공반북선전'용으로 탈바꿈했다.

한민족방송에는 뉴스나 노래, 정보 프로그램 말고도 <오늘과 내일>, <동서남북>, <통일열차>, <시사초점> 같은 시사프로그램들이 편성돼 있다.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뉴라이트' 인사들을 비롯한 '반북'성향의 인사들로 대폭 물갈이 된 것이다.

'뉴라이트' 세력들이 만든 인터넷매체 <데일리NK>를 비롯해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NK지식인연대, 북한인권단체연합회 등에 소속된 인사들이 자주 출연하고, 탈북자들도 심심치않게 등장하며, 국방연구원, 통일연구원 같은 정부기관 인사들과 보수매체 기자들도 출연한다.

반면, 남북화해를 추구하는 인사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요즘은 한민족방송이 다시 과거 시절의 방송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라면서 "당연히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북한과 해외동포들에게 전하는 채널이 되고 있다. 이병순 사장이 들어서기 이전까지 한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추구하려 했던 한민족방송의 변화시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군, 정보기관에서도 대북방송

KBS 한민족방송 뿐만 아니라 군과 정보기관에서도 대북방송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대북방송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국방부 산하 심리전단.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 산하 심리전단은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회담 합의에 따라 8개 중대 24개 소대가 2개 중대 7개 소대로 축소 편성됐다.

국방부가 5.24조치에서 밝힌 '대북심리전' 재개는 이 심리전단이 맡게 되는데, 이 부대는 지난 2004년 6월 남북 합의에 따라 대북심리전을 중단할 때까지 대북 FM방송 '자유의 소리'를 송출했다. '자유의 소리'의 주된 내용은 남한의 발전상과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 북한 비난, 공산주의 비난, 남북한 체제 비교 등이다. 이 내용을 FM라디오와 확성기를 통해 송출한 것이다.

정보기관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주체가 불분명한 대북 방송도 있다. '인민의 소리'와 '희망의 메아리'가 그것이다.

'인민의 소리'는 방송 주체를 '조선노동자총연맹'이라고 위장하고 있는데, 평양 말씨로 "여기는 평양입니다"라고 밝히지만 어색하다는 평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의 메아리'는 '해외동포총연합'이라는 정체불명의 송출 주체가 서울 말씨로 방송을 한다. 이 두 방송은 서울에서도 잡히는데, '인민의 소리'는 3912·6518·6600㎑, '희망의 메아리'는 3985·6003·6348㎑에서 들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런류의 '정체불명'의 방송 송출시간이 하루 4시간 늘었고 대북 비난 수위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북 TV 방송도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방송은 "지난 1주일간 북한 전역에서 'FM-TV'란 로고의 정체불명 TV 방송이 수신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방송에서는 남한 드라마와 스포츠가 나왔고, 북한 자유화를 촉구하는 자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관계기관에서 TV 방송을 편집해 북한에서 수신이 가능한 형태로 송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이런 출처불명의 대북방송이 정보기관에서 송출하는 것을 짐작케 한다.

"대북심리전 재개? 이미 하고 있지 않나"

북한은 남한과 미국 등에서 송출되는 대북방송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비난해왔다. 북한은 대북방송을 막기 위해 방해전파를 쏘고 있지만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04년 6월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북측 대표는 남측의 대북방송을 문제 삼고, 이의 중단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대남방송을 중단한 터였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관리는 이와 관련, "당시 북측 대표는 남측의 대북방송과 확성기 방송으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우리가 가르쳐준 노래는 안부르고 이미자 노래만 부른다. 이래서야 되겠느냐'라며 대북방송 중단을 요청했다"면서 "2004년에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을 때 북한이 원했던 것은 대북방송(한민족방송)을 중단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 관리에 따르면 대북방송을 중단해달라는 북측의 요구에 남측에서는 일단 "쉬운것 부터 하자"면서 대북확성기 방송부터 중단했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형식상 군이 하고 있었으나 내용은 국정원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이 관리는 "대북확성기 방송을 금지했던 것은 비상식을 상식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다시 대북심리전을 재개하겠다는 것은 상식을 비상식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정부에서 대북심리전을 한다고 하는데, 이미 (한민족방송을 통해) 다 하고 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김경환 기자 kkh@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