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황장엽 내일 영결식… 그를 돌아보다
“北 민주화 운동·연구에 큰 족적 남겨”

박영출기자 even@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 2010-10-13 14:00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생애와 망명 후 활동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북한민주화운동과 북한 연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다만 망명 이후 진보 정권이 들어선 뒤 대북 햇볕정책이 추진되면서 그의 활동이 제약된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우선 황 전 비서를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규정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황 전 비서가 생각한 인간중심의 주체 사상은 서구의 휴머니즘이 소련을 통해 들어간 것”이라며 “황 전 비서가 오기 전에는 주체사상이 형성된 배경이나 지적인 연원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체사상은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사상에 자극받아 주민들은 북한 체제에 저항도 하고, 탈북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황 비서는 북한 지도부와의 ‘사상투쟁’ 끝에 결국 망명을 택했다. 당시 그의 망명은 한국사회는 물론 전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유세희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이사장은 “북한 최고위층 인사가 북한을 버림으로써 북한체제의 이념적 기반이 흔들리게 됐고, 전 세계적으로 북한 체제의 비정당성을 입증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족의 장래에 대해 생각하며 애국적으로 결정해 망명을 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황 전 비서가 한국에서 보낸 13년은 망명 전에 품었던 뜻을 펼치는 시간은 아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북 ‘햇볕정책’을 펴면서 그의 존재감과 의미가 크게 축소됐기 때문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그런 그를 ‘냉장고 속의 뜨거운 감자’에 비유했다. 김 교수는 “평양과의 관계를 고려했던 정부였기에 황 전 비서는 오히려 눈엣가시였고, 행동과 표현의 자유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다시 활동이 자유로워졌을 때는 이미 건강도 허락하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보복도 많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황 전 비서의 영향으로 북한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황 전 비서는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리더였고, 탈북자들에게는 사상적 구심점이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황 전 비서는 본래 학자였지만 남북관계가 현안으로 부각하면서 사상·이론가에서 반북 활동가로 변모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박영출기자 ev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