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황장엽 以後'의 북한 민주화 운동 방향 찾을 때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 묻혔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영결식 조사(弔詞)에서 "황 선생님이 한국에 온 것은 60년 북한 독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치명타였고, 선생님이 들고 계시는 '북한 민주화의 깃발'이 평양에 힘차게 꽂히는 그날 선생님의 영정을 다시 모시겠다"고 했다.
황씨는 대한민국에서 보낸 13년 세월의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북한 민주화 운동에 바쳤다. 황씨가 높이 든 북한 민주화의 횃불은 탈북자들에게 북한 동포를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했고, 이것이 탈북자가 중심이 된 북한 민주화 운동 단체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주체사상을 떠받들었던 주사파(主思派)의 핵심 인물들도 1997년 황씨의 망명을 계기로 공개적으로 주체사상을 비판하면서 북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황씨가 위원장을 맡아 이끌어온 '북한 민주화위원회'에는 '탈북자동지회' 'NK지식인연대' '북한전략센터' '자유북한연합' 등 대부분의 탈북자 단체들이 속해 있다. 주사파 출신들이 만든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포함해 북한 관련 운동 단체치고 황씨의 도움을 받지 않은 단체는 거의 없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당분간 북한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황 선생님을 대체할 만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황씨를 떠나보낸 아픔과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북한은 탈북자 단체들이 띄워 보낸 풍선과 '열린북한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상 및 북한 체제 비판이 북한 동포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듭 협박했다. 북한 권력자들이 그만큼 북한 민주화 운동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이 작년 말 실시한 화폐 개혁에 대해 주민들이 공공연히 반발하는 모습이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것도 북한 민주화 운동 단체들의 활동 덕분이다.
북한 민주화 운동은 왜 통일이 대한민국 주도로 이뤄져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통일 운동의 명분이고 이론이다. 북한 주민을 독재 권력의 폭정(暴政)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는 한반도가 통일돼야 하며,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려면 그 통일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 및 동(東)유럽 공산국가에서도 체코의 하벨, 소련의 사하로프와 솔제니친 같은 인물들을 구심점으로 삼아 모여든 민주화 운동 단체들이 있었기에 공산정권 퇴진과 민주 체제 성립이 비교적 큰 유혈 사태 없이 진행됐다. 북한 민주화 운동은 북한 급변 사태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비상 대책이기도 하다.
북한 민주화 운동은 그동안 탈북자와 몇몇 활동가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이제 북한 민주화 운동이 대한민국 안에서 더 넓은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려면 북한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운동 목표와 의제(議題), 방법 등을 가다듬어야 한다. 정부와 국민도 북한 민주화 운동의 진로와 지원방안을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찾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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