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운동가인 독일인 로베르트 폴러첸(Norbert Vollertsen) 박사가 준법서약서 서명을 강요 받으며 부산항에 입국이 불허된 채 10여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가, 잠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간첩 혐의를 받고 있던 송두율 씨도 어떠한 서약서를 받지 않고 입국시키고 국영방송을 통해 특집 방송까지 제작한 대한민국이다. 지난 20여 년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던 재일 한통련 간부들도 과거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명이나 서약 없이 입국시키고 전직 대통령과의 면담자리까지 마련해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지금 폴러첸은 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가.

로베르트 폴러첸은 독일의 인도주의 의사단체인 ‘카프 아나무어’ 소속으로 북한에 들어가 인술을 펼치면서 화상을 입은 환자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살을 이식해주어 ‘공화국 친선 메달’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친선 메달을 받은 이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그는 북한의 이곳 저곳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참담한 인권실태에 놀라 이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2000년 9월 올 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시 동행한 기자들을 이끌고 북한 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갔다가 추방된 바 있다. 이후 폴러첸은 북한인권운동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활동방식이 다소 돈키호테 식으로, 우리도 폴러첸의 모든 활동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반대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당신이 말할 권리를 방어하겠다.”라는 볼테르의 금언(金言)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폴러첸의 ‘말할 권리’는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과거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데 악용되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이 수장으로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이번 입국불허 사건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란 말인가.

단언컨대, 이번에 한국 정부는 국제적 망신을 살 수 있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만약 폴러첸이 대한민국의 실정법을 어겼다면 준법서약서고 뭐고 할 것 없이 일단 입국을 허가한 이후에 적절한 법적 처벌을 하면 된다. 혹시 폴러첸의 주장이 진실과 어긋난 점이 있다면 진실을 밝히면서 처벌하면 되는 것이고, 설사 대한민국 현 정권의 귀에 거슬리는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대중이 판단할 문제이다. 정부가 단순히 그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준법서약을 강요했다면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이중잣대와 옹졸함을 다시 한번 드러내 보이는 것이며 현재 노무현 정부도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음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는 가장 선명한 예로 세계만방에 소개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폴러첸의 ‘말할 권리’는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일관성’을 기대한다.  

                                                              2004년11월30일

                                                     사단법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