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역대정권은 예외 없이 남북정상회담을 중요한 국정 목표로 정하고 추진해 왔다. YS는 최초로 성사 직전까지
끌고 갔으나 김일성의 급사로 인해 무산된 바 있다. 현 정권 또한 IMF경제위기가 타개되자 본격적으로 정상회담 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남북한과 같이 대결상태에 있는 사이에 정상회담이란 대체로 관계의 전환점을 의미한다. 1972년 닉슨의
중국방문, 90년 한ㆍ소정상회담 등이 그 사례다. 따라서 남북한사이에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것은 관계정상화 또는 통일이라는
차원에서 당위적인 명제로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대결상태에 있는 관계에서 정상회담이란 두 가지 기능으로 크게 구분된다. 첫째는 이미 상당한 관계진전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이를 최종적으로 매듭짓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이 있다. 두 번째로는 일종의 담판의 성격을 갖고 돌파구를
여는 경우이다. 단기간에 급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논란을 일으키거나 신중을 요하는 경우는
역시 후자이다.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이다.
리스크란 관계진전이 잘 안되었을 때의 후유증을 말한다. 담판 형식의 정상회담이란 정상들의 강력한 추진력을 위주로
밀어부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제반 여건이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나 정상의 신변이나 의지에 변화가 생길 위험이 항상
따르게 된다. 지난 94년의 남북정상회담은 좋은 사례이다. 김일성이 급사하자 오히려 남북관계는 정상회담 논의 이전보다
훨씬 더 악화되고 만다.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95년 암살되면서 그 동안 PLO의 아라파트 의장과 만들어낸 진전들이
후퇴한 사례도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급진전을 기대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에서는
담판 형식의 정상회담이 필수적인가? 의외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빈약하다. 은연중에 토론이 필요 없는 당연한
선택이라는 경향이 퍼져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안 되는 만큼 이제 남은 것은 정상회담뿐이라는
심리가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방의 노력에 상관없이 조그만 진전도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다.
통상 정상회담 추진의 매력이라면 상대방이 안 받으면 그만이지만 받기만 하면 무언가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All or Nothing'이다. 특히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일인독재체제이기 때문에 담판형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역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민주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정략적인 접근이 용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사회에서는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큰 부담을 갖고 접근하게 된다. 성과 없는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엄청난 비판과 지지율의 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남한의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 바로 김정일정권이 거의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김정일이 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나름의 이득을 챙기고 나서 정작 회담은 성사시키지 않거나,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그후에 적당한 구실을 대서 관계진전을 무산시킨다면 우리는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손실을 입게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김정일정권이 당연히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남쪽에 떠넘길 것이기 때문에 극도로 정보가 통제된 북한 내에서
이런 왜곡선전이 통할 가능성이 높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는 속담처럼 부정적인 경우만을 생각하는 소극적인 태도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김정일의 정략적인 목적에 이용되면, 남한정권이나 국민들뿐 아니라 북한주민들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 상태에서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이용한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의 독재권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관심을 가질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북 정책이라도 결과적으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억압과 빈곤체제를 연장시키는데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면 신중하고
사려 깊은 검토가 요구된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서두르는 쪽이 주도권을 놓치고 끌려가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가이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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