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난의 강행군』- 고난의 행군은 끝나지 않았다.
지도가 있는 사람은 한반도 지도를 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손가락으로 짚어보자. 그리고 경도선(經度線)을 따라 북쪽으로 4도쯤 쭈욱 올라가 보자. 당신의 손가락이 닿고 있는 그곳. 이제부터 우리가 찾아 볼 북한은 당신의 손가락이 위치한 그곳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북한이다.

북한을 ‘본다’는 것

이른바 ‘북한바로알기’라는 것이 대중화되면서, 그리고 통일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고조되면서 ‘북한방문기’라는 제목을 단 책들이 여럿 출판되었다. 익히 알려진 독일의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로부터 황석영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 그리고 조광동의 『더디가도 사람생각 하지요』, 『더디가도 우리식대로 살지요』와 이충렬의 『상속받은 나라에 가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북한방문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요도호 납치범 다미야 다카마로의 『사회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생각한다』라든지 전대협 대표로 89년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씨의 수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북한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방북러시라 할 정도로 정치인, 기업가, 학자, 종교인, 언론인들의 방북이 줄을 이으면서 자신의 방북경험을 담은 기행문, 소감문들도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과연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거대한 북녘 땅덩어리에 마치 섬처럼 솟아있는 ‘평양’이라는 수도(首都)의 초대소에 며칠을 묵으며, 가는 곳마다 안내원의 친절한 지시를 따르면서, 사진을 찍어도 허락된 곳만을 찍어야 했던 그들이, 도대체 ‘북한을 방문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과연 ‘북한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단언하건대 그들이 본 건, 그리고 우리가 전해들은 건 ‘북한’이 아닌 ‘평양’일뿐! 그래서 그들의 방문기는 ‘북한’방문기가 아닌 ‘평양’방문기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 대동강 유람선과 김일성 광장이 아닌 북한 인민들의 여염집 안방으로, 그들의 장마당으로, 열차 안과 대합실 객석으로, 공장과 일터로 우리를 이끌어줄 동무가 한 명 있다. 1998년 가을부터 1999년 봄까지 청진, 회령, 고원, 함흥, 평양, 사리원, 해주, 청단, 평산 등 북녘땅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며 북한인민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삶의 모습을 전해줄 안내자 - 지금부터 소개할 책 『고난의 강행군』(정토출판刊, 1999년)이다.

북한 구석구석에 대한 북한인의 최근 이야기

『고난의 강행군』이 여느 북한방문기들과 크게 다른 세 가지.

먼저는 그것이 ‘북한 내부의 시각과 목소리’라는 것이다. 글쓴이 권혁(가명)은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서른살의 탈북인으로 북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신변의 문제상 그의 직업을 정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일종의 ‘봇짐장수’로 추측된다) 각 도시의 장마당을 돌아다니면서 보고들은 것을 책 한 권에 회고해 놓았다. 여기에는 어떠한 정치적인 윤색도, 인위적인 감동이나 자신의 주장을 전하기 위한 첨언이나 과장도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잣대로, 혹은 자신이 살아온 정치체제를 기준으로 북한사회를 재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 책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두 번째 차이점은 ‘북한 전 영토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앞서 열거했듯 평양 이외에도 함흥, 청진, 회령 등 스무 개 이상 중소도시의 실태를 우리는 접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안내원이나 보도통제 같은 것도 없다. 일체의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증명서가 없으면 뇌물로 통과하고 기차가 멈추면 지나는 트럭을 갈아타면서 북녘땅 방방곡곡의 실정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세 번째로 이 책은 북한의 식량난과 정치 사회적 문제점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던 80, 90년대 초반의 북한 방문기들과 달리 최근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6개월의 시간에 걸쳐 술회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라든지 농업기술분야의 실태라든지 하는 특정분야의 북한 현실에 국한하지 않고, 글쓴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과정에서 자연히 보고들은 북한의 가정, 교육, 의료, 문화, 풍습 등이 특별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종합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내 나라 제일 좋아?

"조선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장사를 다니는 고단한 신세면서도 노래를 불러도 김정일 위대하다는 노래만 부르고 내 나라 제일로 좋아만 부른다. 이 얼마나 순진한 인민들인가! 다른 나라들 같으면 이렇게 식량 사정으로 국가에서 배급을 주지 않고 일해도 돈을 주지 않으면 대무 같은 시위 투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순진한 조선 인민은 부모와 자식, 형제들을 잃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는데도 이렇게 낙천적으로 살아간다."(책 75p 中)

자, 이제부터 여행을 떠나보자. 1998년 10월부터 1999년 4월까지의 북한으로. 멋진 풍경에 감탄하고 흥겨운 노래 가락을 자연히 흥얼거릴 그런 여행은 절대 아니겠지만 지도를 펴놓고 도시 하나 하나를 짚어가며 읽어보자. 글쓴이의 행로를 따라가며 우리는 극심한 식량난 - 김정일의 표현방식으로는 ‘고난의 행군’ - 시기 북한 인민의 삶과 호흡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우리는 차마 인정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현장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기본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인데’라는 안이한 시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눈을 크게 뜨고 읽어 내려가야 하리라.

"청진에서는 10월 10일 당 창건 기념일을 맞으면서 강냉이로 3일분을 주었다. 그렇게 일년에 한 두 번, 주로 명절날에 2~3일분씩만 겨우 배급을 줄 뿐 도무지 식량 공급을 하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장에 나가지 않고 장사를 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책 150p 中)

우리는 먼저 스탈린식 사회주의의 근간인 배급체제와 계획경제가 무너지는 현장을 정면으로 목격하게 된다. ‘배급이 끊긴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배급타령이냐’는 목소리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무수히 들려오는 목소리들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의 씨앗이자 음성적인 시장경제 단위로 알려왔던 ‘장마당’이 이젠 북한 인민들의 생활원천이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그나마 북한체제를 유지했던 경제골격이 무너지면서 비극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사람들은 배급 없는 작업장에 일을 하러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각자 자기 생계를 찾다보니 매매춘과 폭력, 절도, 뇌물, 거지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장 저급한 문화가 가장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 실제 글쓴이 권혁씨가 찾아간 모든 도시의 기차역마다 매음할 대상을 물색하는 여인들, 장사꾼의 배낭을 노리는 공격수(도둑)들, 행인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엿보는 꽃제비(거지)들은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각하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하루종일 밥과 술을 팔아 25원을 버는 아낙이 있는가 하면 한 번 차를 태워주는 조건으로 한 사람당 300원을 받는 운전수가 있고, 출입증 검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한번에 1000원의 뇌물을 받는 안전원, 한 번 거래의 이익으로 2~3만원을 벌어들이는 보따리 장수까지, ‘사회주의적 평등’이란 말도 이미 북한에선 통하지 않는 말이 되었다.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나 과제물을 내지 못해 나가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 아이들이 먹지 못해 기운이 없으므로 공부시간에 엎드려 잠만 잔다. ... 교원들이 낮에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저녁에는 길거리나 역전 앞에서 음식 또는 담배 장사를 한다. ...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20~30년 떨어졌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책 251-252p 中)

또한 ‘그래도 사회주의적 북한이 남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되었던 몇 가지 것들, 예를 들어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혜택 같은 것도 이제는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하루 먹고 살 식량이 없으니 어린아이까지 채취와 장사, 구걸에 나서고, 그러다 보니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교사들도 먹을 것을 찾아 나서느라 부업(?)에 더욱 신경을 쓰고, 국가의 지원이 없으니 학용품이나 시설 부담을 학부모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다.

유엔에서 보내준 의약품을 의사들이 빼돌려 장마당에 내놓는가 하면, 페니실린 1개가 50원, 마이신이 35원에 거래되고, 병력서를 허위로 기재하여 환자에게 투약비를 요구하는 것 역시 ‘무상교육, 무상의료의 나라’와는 거리가 먼 사례들이다.

"정말 미공급 전에는 여자들이 남자와 눈길만 마주쳐도 얼굴이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지금은 도덕이고 예절이고가 없어졌다." (책 35p 中)

참담한 북한 현실은 '그래도 그곳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 아닌가’하는 우리의 순진한 생각들마저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린다. 한 남자가 세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기차간에서 남녀가 서스럼없이 정사를 벌이고, 처녀가 돈 몇푼에 순결을 팔고,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부모들, 노모를 버리고 떠난 자식들'. ‘인민의 낙원(樂園)’이 아니라 ‘인민의 낙원(落園)’이 되어버린 오늘의 북한을 그저 ‘참담함’이란 표현으로 형용할 수 있을까.

"... 김정일이 군대에게 나라의 농사문제를 관리하게 함으로써 결국 군대 도둑만 양성시키고 온 나라를 유흥장 아니면 매음장소로 만들었다 ..."(책 136p 中)

특히 군인들의 행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금강산 발전소를 건설한다는 함경남도 고산지방은 그 때문에 몰려든 군인들의 행패가 심해 낮에도 집을 비워두지 못하고, 제 세상 만난 군인들은 길가는 여인들의 가슴을 주무르고 행인들에게 강제로 담배를 빼앗아 비우며, 길거리에서 돈과 귀중품을 빼앗아 달아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김정일의 이른바 선군정치(先軍政治)라는 것은 이렇듯 북한 전역을 군인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인민군이 아니라 괴뢰군’, ‘승냥이질 하는 군대를 누가 도와주겠는가’, ‘인민군은 놀아라, 인민은 일한다’는 원성과 탄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민군(人民軍)이 ‘인민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인민을 잡아먹는’ 군대로 되어버린 것이다.

변화하는 사람들

이 책은 또한 우리가 궁금해하는 북한 인민들의 생활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구석구석 드러내 보인다. 예를 들어 그곳 사람들은 피임을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그곳에도 과연 낙태라는 것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물건은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그 시세는 어느 정도 되는지. 선거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말로만 듣던 ‘공개처형’이란 것은 어떤 사람들을 잡아 어떻게 죽이는 것인지. 도로와 철도 등 교통상황은 어떠하며 그곳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김정일의 현지시찰이 예정된 지역의 주민들이 어떻게 혹사를 당하고 있는지. 북한의 폭력조직은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비(非)사회주의 검열’이란건 또 무엇인지. 당간부들의 권위와 부도덕은 어느 정도인지.

이러한 삶의 구석구석을 관심있게 쫓아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북한 인민들의 변화하는 가치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지난 7월 선거 때는 누가 주석이 되겠는가 궁금해서 사람들이 분위기가 좋았는데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으로 다시 추대되었다는 정령을 듣고 사람들이 기분이 나빠서 명절날에도 춤추러 나오지 않았다’는 회령 주민의 이야기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에게 쌀을 준 미국이나 남조선에 총을 돌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굶겨 죽이고도 군사에만 열중하는 김정일을 한없이 미워하고 저주한다’는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을지 모르나 이미 내면적으로는 완전히 민심을 잃어버린 김정일 정권의 현재를 보게 된다. 또한 제한된 개방정책이 실시되었던 라진·선봉지구 사람들의 달라진 삶의 모습이 알려지면서 ‘개방이라는 것이 좋긴 좋더라’고 입을 모은다든지, ‘우리가 잘 살자면 개혁은 몰라도 개방은 해야 된다’고 하는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극심한 식량난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 밑바닥에서부터 개혁·개방의 요구를 한층 끌어 올려놓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글쓴이가 후기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불쌍한 조선의 사람들을 도와 조선에 더 많은 식량과 지원을 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린다’고 밝히고 있듯이 북한의 기아문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가 북한 인민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절실한 문제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난의 행군은 민주화 대장정의 시작

북한의 노동신문은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라는 제하의 10월 3일자 논설과 10월 10일 당창건 55돌 기념사설을 통해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사실상 끝났음을 천명했다. 그러나 과연 고난의 행군은 끝났는가. 그렇게 손쉽게 ‘승리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식량난은 몇 년간의 노력으로 복구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너져 버린 인간성과 삶의 터전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려도 모자랄 것입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을 것을 찾아 아비규환의 사선을 넘었던 2천5백만 북한 인민들과,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이상으로 여기며 함께 굶고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전 세계의 양심들은,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식량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고난의 행군을 벗어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명백히 알아버렸다.

그런데 지금, 누가 고난의 행군을 강요했고 수백만 인민들을 굶어 죽게 방치하면서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데 이제 와서 적반하장으로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를 외치고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승리자’를 운운한단 말인가.

김정일 정권의 입장에서 고난의 행군은 이제 막 중요한 한 고비를 넘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 고난의 행군은 ‘민주주의를 향한 대장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6개월에 걸친 권혁씨의 북한답사기 『고난의 강행군』은 이에 대한 생생한 증거이다. 인민들은 이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