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은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정보센터 책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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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제 13조 2항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국가를 포함한 여느 국가를 떠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1966년 조인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nternational Consent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제 12조 2항 및 4항도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어느 나라도 떠날 자유가
있고, 아무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권리를 임의로 빼앗을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왜 반세기간 헤어져 살아야 했으며,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 또 한번의 이별을 맛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감격의 기쁨과 또 하나의 이별에 대한 슬픔, 우리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질문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명제가 그 동안 얼마나 자주 이데올로기라는 존재에 의해 유린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인권이라는 단어는 본래 자연권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권은 자연상태에서 유래하는 권리로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권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근대 이후 많은 사상가들은 이러한 인간의 생래적 권리에 대하여 언급해 왔다. 왜냐하면,
이들은 국가의 탄생, 그리고 국가와 사회와의 긴장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자연상태라는 가정(Hypothese)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 여기서의 자연 상태란 인간의 권리 주장에 대한 아무런 침해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이러한 상태는 인간은 자신의 생래적 권리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전형적인 ‘가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상태에 대한 언급은 인간의 자연권에 대한 사상적 고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략)
현대에서의 인권의 개념
현재의 인권의 개념은 버지니아의 권리장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버지니아 권리장전은 위에서 언급한 로크의
사상의 영향력 하에서 태동된 것인 바, 로크의 인간의 권리에 대한 사상은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권리는 그것이 ‘생래적’ 권리라 하더라도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인권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태생적 권리라는 측면에서 가장 원초적인 개념이라 하더라도,
사회의 변화에 따른 개념의 확장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즉, 사회와 그 구성원으로써의 개인은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차원에서 사회의 구조변화로 인해 개인은 존재와 역할이 변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차원에서 인간의
권리 역시 사회의 다양화와 복잡화의 영향으로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당위성은 자연권이라는
존재가 사회적 연관 관계 속에서 그 근본적 형태는 변하지 않았지만, 현상으로써의 의미는 변할 수밖에 없음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에 있어 인권의 개념은 다양한 수준에서 그 개념적 확장이 요구되어 지고 있다. 그러한 개념적인 변화의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인권의 개념에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과학 논문들이 제기하고 있는 ‘제 2 그리고 3세대의 인권’으로 인권의 개념이 당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이외에도 ‘평화를 위한 권리’ 역시 인권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의 부의 불균형, 즉 선진 산업국가의 부와 후진 산업국가의 빈곤의 문제에까지 인권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는 추세이다.
인권 -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이어야 할 단어
우리는 지금까지 인권의 사상사적 진보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았다. 이러한 인권은 공통적으로 자연상태에서 파생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권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상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결국 인간의 권리 유보는 어떠한 경우에도 권리 보장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의 태생적
혹은 생래적 권리는 자연상태에서 유래하므로, 사회와 이념 그리고 시간을 초월하는 인간 본성에 유래하는 권리라는 사실
역시 분명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상태라는 ‘가정의 상태’는 규제와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성에 입각한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혹은 우리 식 인권 개념이 하나의 허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허구에 대하여 지금 대다수는 침묵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에 대한 논의는 곧 반통일 세력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는 과거 군사정권을 경험하면서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인권 유린을 당했었다. 말할 수 있는 자유도, 생각할
수 있는 자유도,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도 빼앗겨버린 세월을 경험해야만 했다. 이 시기에 인권에 대한 거론은
곧 ‘불순세력’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당시 상황보다는 진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역시 우리 사회 곳곳에 인권의 유린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보다는 나은 상황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발달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이용해 인권 유린에 대해 그나마 항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인권의 유린에 대해 항거할 수 있는 기회마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이러한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를 제기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나, 지금의 분위기는 이 당연함을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라는 단어 속에 매장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과연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제외된 평화를 평화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케네스 버울딩(Kenneth Boulding)은 모든 가치의 조화로운 상태만이 진정한 평화라고 정의한다. 그는, 단순히
폭력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 평화라고 정의하며, 인류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평화는 적극적 평화 즉 가치의 조화로운
상태라고 주장한다. 필자 역시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즉, 우리가 추구해야할 평화는 보편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평화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는 과연 이러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지금 논의가 되고 있는 납북자의 문제가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실제 485명에 이르는 납북자 가족은 국내의
20여 개 인권 단체에 도움을 청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 대부분은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 문제에 납북자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를 들어 이들에 대한 도움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의 인권단체들의 구성원들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념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인권을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역시 같은
이념적 이유에서 다른 이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측면은 지금 현재 북한 인권에 대한 거론은 정부와 운동 단체 모두에게 기피되고 있는 주제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에 대한 거론은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일은 진정으로
인간과 인간의 통합 그래서 인간을 위한 통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경우 통일을
비롯한 모든 정책 집행의 최우선 순위로 인권적 차원인 ‘인간의 고통 경감’을 고려했다. 즉, ‘인간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통일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정책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통일을 이루었던 독일의 경우도,
오늘날 다양한 통일의 부작용으로 시달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선례가 있기에 우리는 더욱 인권과 통일을
결부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인권 개선에 대한 노력이야말로 응어리진 것을 풀고, 통일을 축제의 과정으로 만드는
최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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