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의 표지는 창간호부터 지난 호까지 색깔만 달리하고 똑같은 형식을 취해왔습니다. 맨 처음 Keys 표지의 바탕색은 군청색으로, 그 다음 Key는 연분홍색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발행을 거듭할수록 더 이상 선택할 색이 없어 이것 또한 수월찮은 문제였습니다. 이번에는 붉은 색으로 해볼까, 아니면 하늘색으로 해볼까 선택하는 것도 편집 마무리 과정에서 치러야 할 홍역 중의 하나였죠. 붉은 색은 지난 몇 호에 썼던 색인데, 이 색깔은 너무 강렬한데, 이 바탕색은 글자색과 잘 어울리지 않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또 다시 새로운 바탕색 하나를 고르게 되고, 출판되어 나온 Key를 책꽂이에 꽂아두면 지난 색들에 새로운 색 하나가 더해지는 겁니다. 지금 제 책상 위는 형형색색 무지개 빛깔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모든 색이 다 있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표지를 바꿨습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표지의 열쇠 색깔만 바꿔 가면 되는 겁니다. 당분간 ‘색깔 고민’은 없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매번 Key를 발간하고 그 두께가 쌓여간다는 것이, 더 이상 선택할 색깔이 없다는 것이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고민들입니다. 그것은 원고를 집필하고 정리하는 창조의 과정이 힘들어서도, 육체적 피로함과 고단함 때문도 아닙니다. 수령절대주의의 허구성, 정치범 수용소의 현실, 탈북자들의 편지,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입장 등을 담아내며 드는 생각은, 우리가 이 웃기지도 않는 수령숭배라는 역사적 블랙코미디를 더 이상 얼마나 지켜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또 얼마나 북한 인민들의 처참하고 가슴 아픈 삶의 현실을 먼 나라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이야기해야만 하는지…. 이런 것들입니다.

89년 전대협 대표로 임수경 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어느 날은 그곳 사람들이 통일의 나무를 심자고 제의했다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이 나무 앞에 다시 모이자고 말입니다. 이러한 제의에 흔쾌히 동의하고 어린 나무 한 그루를 ‘통일의 나무’라고 심은 다음, 임씨가 했던 말은 “이 나무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소감이었습니다. 이 나무가 더 크기 전에, 아름드리 나무가 되기 전에 하루 빨리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염원의 표현이었죠.

Keys를 발간하는 편집자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호를 거듭할수록 쌓이는 Keys의 두께를 3mm씩 보태는 것이 이번 호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책상 위에 꽂혀있는 형형색색 Keys의 화려한 색깔들이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입장을 고민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어려움도, 표지 바탕색을 뭐로 고를까 하는 선택의 갈등도, 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난 2000년 한해동안 발간되었던 지난 Keys를 쭉 훑어보았습니다. 모두가 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이 영글어진 하나씩의 열쇠입니다. 단 3mm밖에 안 되는 이 책이 한 번씩 발행될 때마다 북한의 닫힌 체제를 단 0.01mm씩이라도 열어냈다고 미래의 역사가 증언한다면, 편집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노고는 그것으로 씻은 듯 사라질 것입니다. 무지개 빛 Keys의 표지가 책꽂이 한 켠만 수놓는 색깔이 아니라 북한 민중의 가슴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무지개 빛 희망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이, 앞으로 더 많은 숱한 밤을 지새운다 해도 결코 외롭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얼마 전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 협박 소포가 도착하던 날, 많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운동을 꼭 계속해야만 하는 걸까 하는 회의가 잠깐 스쳐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장 북한 민주화운동이란 것을 중단하라’는 그 협박 편지를 다시 읽어보며 오히려 ‘북한 민중의 승리’를 느꼈습니다.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주장하는 우리의 노력이 김정일 정권에게 저리도 큰 위협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각오가 새로워지더군요.

우리가 북한민주화운동을 그만두는 날은, 지구상 가장 악랄한 공포정치, 독재라 이름하기에도 부족한 절대왕조가 붕괴되는 바로 그 날입니다. 그래서 정의와 인권을 향한 인간의 실천은 어느 시기에나 승리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 날, Keys 종간호를 내면서 그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전 세계의 벗들에게 감사와 승리의 인사말을 써보는 영광스런 그 날, 그 날의 가슴 벅찬 떨림을 느껴보는 것. 이것이 편집자의 가장 크고 유일한 소원입니다.

열 번째 Keys를 내놓습니다. 먼 훗날 자유와 평화의 세상에서 북한의 동포들을 만나는 날, 부끄럽지 않을 우리가 되기 위해 Keys는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 앞을 찾아갈 것입니다. 새해에도 여러분의 격려와 질책을 바라며, 우리 모두의 관심과 애정이 북한의 닫힌 체제를 열어 가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맙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모두가 하나씩의 열쇠가 되어 - 2001년 1월 첫날에

멀리 눈 덮인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기관지 『Keys』 편집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