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갈망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었던 바, 모르고서는 모르되 알고서는 두고 볼 수 없는 김정일 정권의 폭정에 맞서 우리의 형제이자 동지인 북한 민중을 구출하는 장정에 나선다. 이미 죽어간 북한 민중에 대한 애도와, 또한 사라져 가는 어린 세대에 대한 애통 어린 사랑으로 고달픈 길을 마다 않을 것이다.

여기 우리가 어깨를 걸고 갈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 귀한 줄 아는 이들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을 중히 여기는 이들이며, 역사로부터의 부름을 들을 줄 아는 이들이다. 우리 모두의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온갖 폭압기구와 물리력을 동원하여 만인을 압살하는 김정일 일인의 악행을 어찌 막지 못하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창립선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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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소 길지만 초심(初心)을 되새겨보자는 뜻에서 창립선언문을 인용하였다. 시간을 되돌아보니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그 첫걸음을 내딛은 지도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정말로 많은 일들이 우리의 주위를 스쳐갔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그 시작부터 주위의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우리 단체의 창립 발기인 중 상당수가 80년대 한국학생운동을 주도하였던 이른바 386세대 핵심운동권이었던 것이 주위의 시선을 모았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좌편향에서 우편향으로의 급작스런 회전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민주화운동이 사상적 우향우(右向右) 현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에도 인간을 위해 운동하였고, 지금도 인간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인간이라는 가치는 우리의 변함없는 사상적 화두가 될 것이다.

현재의 북한 사회는 좌와 우의 사상적 경향에 관계없이 ‘지구상에 가장 비인간적인 억압과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논리적으로 살펴볼 때 과거에 자연재해마저도 우리 사회 지도층의 부패와 구조적 모순 탓으로 돌렸던 사람들이, 수백만 인민들이 지난 몇 년간 기아와 질병에 쓰러져간 사실을 두고서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정권의 무책임성과 체제의 문제에서 찾지 않고 하늘 탓, 제국주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애써 무관심해 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직무유기이며 심지어 범죄행위를 묵인하는 미필적 고의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운동을 반북운동, 반공운동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북한민주화운동은 ‘북한 인민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북한 인민을 억압하고 학살하는 김정일 정권을 반대하는 것이지 북한 인민들을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또한 우리는 김정일 정권을 공산주의 정권으로 보지 않는다. ‘만인이 자유롭고 필요에 따라 노동의 생산물을 나눠 갖는 사회’로서의 공산주의 사회는 지금의 북한 사회와 전혀 인연이 없으며, 김정일 정권에게서 공산주의적 지향이란 눈을 씻고서도 찾아볼 수 없다. 김정일 정권에게는 어떻게 하면 인민을 통제할 것인가 하는 것만이 관심사항이다. 우리는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김정일 정권을 반대하고 북한민주화운동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믿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필두로 하여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우리의 북한민주화운동이 이러한 흐름과 배치되니 그만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남북화해는 남한과 북한이 교류 협력하면서 서로 화해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문제이고, 북한민주화는 북한 인민들이 끔찍한 독재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남북화해와 북한민주화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지만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남북화해운동은 북한 인민이 극한의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차원의 화해에 그 목적을 두고 정부주도로 이루어져야 하며, 북한민주화운동은 북한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여 북한 내 저항세력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차원에서 민간단체와 개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북한에 뚜렷한 대안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인권 탄압을 더욱 가중시킬 소지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남북화해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북한민주화운동을 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운동은 과정 속에 역량이 축적되어 가는 것이다. 북한민주화가 20년 후에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민주화 주장을 해나가야 그 역량을 키워갈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과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 김정일 정권의 인권탄압도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작년에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 7인의 경우 만일 국제사회의 우려가 강하게 전달되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처형되고 말았을 것이지만 국제적 압력으로 인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김정일 정권 타도라는 방향각을 분명히 하지 않고서 북한민주화 역량을 모아나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과정상 전술적 유연함은 필요하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악의 실체를 앞에 두고 침묵하는 것은 사회진보를 꿈꾸는 운동가의 자세가 아니다. 광야에서의 외롭게 외치는 소리 없이는 역사는 결코 전진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한 걸음

지난 한 해 우리는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민주화를 공론화하여 주위의 관심 속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수많은 지지의 여론을 얻을 수 있었으며, 국제 사회의 관심과 참여의 열정도 어느 해 보다 높았다. 미약하나마 우리의 활동은 김정일 정권에게는 독재체제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로 여겨지고, 체포와 송환의 위협에 떨고 있는 탈북 동포들과 북한내 저항세력에게는 자유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원군이 있다는 격려의 남풍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북한민주화운동은 여론을 주도하고 김정일 체제를 직접적으로 압박할 만큼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써나가는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2001년에도 우리는 북한의 현실과 수령독재체제의 허구성을 알리는데 가장 큰 힘을 쏟아야 한다. 새로운 남북관계는 남한 사람들에게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북한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나, 그 동안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역편향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북한문제의 핵심은 지난 20여 년 간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북한체제를 좌지우지해온 김정일 정권의 부패와 무능력, 기형적인 수령숭배체제에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철두철미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 북한문제를 바라보며 모든 악의 근원인 김정일 정권의 죄상을 만천하에 알리고, 반공주의도 반북주의도 아닌 반김정일 전선을 더욱 명확히 할 것이다. 불필요한 논쟁은 삼가되 북한의 실정을 알리고 꾸준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지금 북한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세이다. 우리가 먼저 북한의 실정에 정통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북한 인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근본으로 삼자.

민주주의와 인권에 뜻을 같이 하는 국내외 단체, 개인과의 교류와 연대는 북한민주화운동을 대중적으로 펼쳐 가는 중요한 열쇠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김정일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을 더 크게 보아 교류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연대하여야 한다. 잘 사는 나라의 사람이든 못 사는 나라의 사람이든, 큰 단체이든 작은 단체이든 북한민주화에 한 목소리를 내자. 개인과의 교류에 있어서는 한 개인의 미약한 힘일지라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과 실정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돈 있는 사람은 돈을,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를, 힘 있는 사람은 힘을 내어, 북한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자. 작가는 글로써 북한 인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학생들은 강의실과 캠퍼스에서 북한 인민의 삶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노래와 선율로 수령독재의 참담한 현실을 알리자. 제3국에서의 활동은 북한 인민들과 전 세계의 민주화운동세력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이다.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활동가들에게 국내외의 북한민주화운동은 커다란 활력이 되고 있다. 사랑과 믿음의 마음으로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뜻을 지켜나가자.

북한의 앞날에 대해 어느 한 가지 가능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과학적인 자세가 아니다. 여전히 북한의 상황은 가변적이며 우리는 전개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 조성되는 정세에 따른 전술적 유연성은 운동의 폭과 깊이가 더해갈수록 중요한 요구가 된다. 지난 한 해 김정일의 개방 제스츄어는 절대 전면적 개혁 개방의 신호탄이 아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혁개방의 분위기가 북한 인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어떠한 증언이나 보도도 없다. 일단 개혁개방의 바람이 북한 인민들에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추진할 수 있는 대외개방의 폭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김정일 정권의 개방정책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당면해서 우리가 김정일 정권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김정일이 북한을 전면적 개혁과 개방의 길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이 김정일 정권에게 주어진 단 하나 남은 회생의 기회임을 일깨워 주어야 하며, 북한 사회에 개혁개방의 필요성과 이를 요구하는 분위기를 앙양시켜야 한다.

날이 갈수록 북한문제는 국제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며, 북한 인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각성과 요구는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조그만 역할을 담당하였던 지난날의 경험과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바랐던 첫마음을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다. 북한민주화는 남한의 민주화를 통해 실현하려 했던 우리 理想의 연장선에 있다. 이러한 첫마음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한 독재와 기아에 쓰러지는 북한 인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서광은 반드시 비칠 것으로 믿는다. 북녘 땅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빛이 가득할 날을 꿈꾸자.

"2천만 민중이 극한적인 억압과 수탈로 고통받고 있는 이 때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행동보다 더욱 절박한 일이 어디 있으며, 그들과 연대하는 것보다 더 귀한 인도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강령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