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매년 1월 1일 신년사(新年辭)를 발표한다. 김일성 생전에는 김일성이 직접 육성으로 ‘김일성 신년사’를 발표하였고, 김일성이 죽고 난 95년부터는 각 신문들의 ‘공동사설’로 신년사를 대체하고 있다. 북한의 당, 군사, 청년조직의 기관지인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의 공동사설이 그것이다.

신년사에는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다가오는 한 해를 전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신년사(이하 ‘공동사설’)를 바라보는 남한 내의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의 편향이 있다. 하나는 공동사설을 무시하는 경향이다. 어차피 김정일의 교시와 즉흥적 판단으로만 움직이는 나라인데 공동사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견해이다. 물론 북한에서 김정일의 교시는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 등 그 어떤 제도적 장치보다 우위에 있다.

공동사설의 형태로 신년사를 대체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김일성 신년사를 몇 십 년간 받아 보던 인민들에게 김일성이 죽자마자 김정일 신년사로 대체할 수 없는 북한 정권 나름의 고충에서 비롯된 과도적인 단계일 수도 있고, 계속하여 공동사설의 형태를 빌어 신년사를 이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공동사설은 김정일이 결재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 이미 10월 경부터 북한의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이 모여 공동사설을 준비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수 십 번에 걸쳐 작성과 수정을 반복하고 김정일의 최종 결정이 있어야 발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사설은 김정일 신년사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해도 틀림이 없다. 오히려 김정일에 대한 절대 충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공동사설이, 낯간지럽게 김정일이 직접 나서 이러쿵저러쿵 자신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한국에서 대통령이 신년사를 발표하는 것에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그것이 국가정책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음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공동사설이 북한 인민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의 신년사가 대한민국의 한 해 살림살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거기에는 한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 혹은 ‘정서’가 표현되어 있다. 대통령이 작금의 정치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올 한 해 어떤 자세로 정국을 풀어나갈지 하는 것들을 대통령 신년사와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읽을 수’ 있듯이, 공동사설에는 북한의 정권담당자, 특히 김정일이 북한 상황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공동사설을 바라보는 다른 하나의 편향은, 공동사설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흔히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을 본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국민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면 모든 정세의 흐름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해 버리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예를 들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인 혼란이나 국민들의 불만을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또 현실이 정말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또 세상을 민중이 승리해온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류역사는 민중의 투쟁이 승리하고 모든 국가권력과 사회적 주도권을 확장해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차차 설명하겠지만 북한의 현실, 민중의 삶 등을 알지 못하고 몇 년간의 신년사, 공동사설만을 쭉 읽어보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인다. 한 해에 어떤 목표를 제시하면 다음 해엔 그것이 성과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성과에 입각하여 다음 해의 목표가 다시 설정되고 하는 식으로 체계와 흐름을 갖고 나날이 발전하여온 과정이라는 착각을 들게 만든다.

그래서 공동사설 분석은 '북한 지도부의 생각을 읽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별히 무시할 필요도 특별히 환상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의 공동사설 흐름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해의 공동사설에 나타난 문구나 어투에만 집착하게 되면 그야말로 큰 강은 보지 못한 채 지류만을 보면서 ‘이 강은 물살이 세다’라고 주장하는 꼴이 될 것이다. 매년 남한의 언론들이 북한의 공동사설을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 ‘대외관계 개선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일면 옳지만, 간혹 특별한 표현에만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지난해의 모든 성과는 김정일의 은덕

북한의 공동사설은 대단히 틀에 박혀 있어 이것을 몇 년간 깊이 있게 연구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나름대로 신년사를 쓸 수 있을 정도이다. 해에 따라 특별히 새로운 내용도 없어 몇 년간의 신년사를 모아놓고 연도만을 지워 내놓으면 이를 연도순으로 재배치하기 쉽지 않을 정도이다. 공동사설의 주요체계는 이렇다.

먼저 지난 한 해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 '오늘 조선 혁명은 희망찬 새 세기, 21세기의 진군길에 들어섰다', ‘오늘 우리는 사회주의 승리자의 긍지 드높이 희망찬 주체 OO년을 맞이한다’라는 식으로 서두를 떼면서 ‘지난 주체 OO년은 ∼해이다’라고 짧막하게 지난 한 해의 성격을 규정한다. 2001년 공동사설은 2000년을 ‘우리 민족사에 일찍이 없었던 경이적인 사변이 일어만 위대한 전환의 해, 20세기를 빛나게 총화한 역사적인 해’라고 평가하고 있고, 2000년 공동사설에서는 1999년을 '강성대국 건설에서 위대한 전환이 일어난 해', 1999년 공동사설에서는 1998년을 ‘최후 승리를 위한 결정적 담보가 된 강행군의 해, 투쟁과 전진의 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추상적인 표현으로 총괄 평가를 하고 나서는 정치, 경제, 통일, 군사, 외교 등의 분야별 평가를 한다. 2001년 공동사설은 정치분야를 평가하면서 ‘지난 해는 세기와 더불어 튼튼히 다져진 우리의 일심단결의 위력이 힘있게 과시된 의의 깊은 해’라고 하면서 '수령숭배 수령결사옹위로 뜨겁게 맥박친' 당창건 55돐 행사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또 경제분야에서는 ‘세기를 진감시킨 천리마 대고조의 북소리가 더욱 높이 울린 보람찬 투쟁의 해’라고 하면서 안변청년발전소, 청년영웅도로 건설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정치·경제 분야의 평가가 있고 나면 예년에는 군사·외교 분야의 평가로 이어졌지만 2001년 사설에는 특별히 통일 분야의 평가가 끼어있다. 이번 공동사설에는 평양상봉(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르는 말)과 6·15 공동선언을 거론하면서, 이것을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공적',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조국통일의 새 아침은 반드시 밝아온다는 것이 7천만 민족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 내린 철석의 신념’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각 분야의 평가가 있고 나면 최종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김정일의 은덕, ‘수령복’으로 돌린다. 2001년 공동사설에는 '20세기를 빛나게 결속한 지난해의 위대한 승리는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특출한 정치실력과 정력적인 활동의 고귀한 결실'이라고 하면서 '지난 20세기에 우리 인민은 대를 이어 수령복을 누려왔다', ‘복잡다단한 세계 정치를 주도하여 인류의 자주위업을 힘차게 전진하여 나가시는 김정일 동지는 21세기의 향도자로 절대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고 계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2000년에는 '지난해는 강성대국 위업을 진두에서 이끄시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정력적인 영도로 수놓아져 있다', 1999년에는 '역사에 유례없는 사회주의 강행군을 주동적으로 단행하시어 강성대국 건설의 휘황한 전망을 열어 놓으신 김정일 동지의 업적은 천추만대에 길이 빛날 것이다', 1998년에는 ‘지난해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이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고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승리를 이룩할 수 있은 결정적 요인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에 있다’라는 식으로 지난해의 모든 성과를 김정일의 성과로 돌리고 있다.

구호의 나라, 알맹이 없는 경제정책

A4용지 4페이지 절반, 원고지 60매 정도의 공동사설 중 30%정도를 지난해에 대한 평가를 하고 나서, 나머지는 다가오는 한 해의 목표와 전망을 이어간다. 먼저 다가오는 해에 대한 총괄 좌표, 성격 규정을 한다. 총괄 좌표는 지난해의 평가를 추상적인 총괄 평가로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올해는 ∼해’라는 식으로 정리하는데, 북한정권 창건 50주년 (98년), 김일성 서거 5돐 (99년), 당창건 55돐 (2000년) 등 그 해에 특별한 시기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김정일의 교시를 인용하고, ‘전투적 구호’라는 이름의 한 문장으로 된 구호를 제시한다. 이 전투적 구호는 대개 그해 신년사의 제목이 된다. 최근 몇 년간의 총괄 좌표, 김정일의 교시, 전투적 구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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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성격 규정 위대한 당의 영도 따라 우리식 사회주의의 결정적 승리를 이룩해 나가는 보람찬 투쟁의 해, 새로운 비약의 해

김정일 교시 우리의 모든 간부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확고한 혁명적 신념과 의지, 순결한 혁명적 양심으로 우리 당을 옹위하고 당의 영도 밑에 변함없이 주체의 한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여야 합니다.

전투적 구호 공화국 창건 50돐을 사회주의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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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성격 규정 위대한 당의 영도 따라 강성대국 건설에로 전진하는 새로운 전환의 해, 총진격의 해

김정일 교시 우리는 우리 당과 혁명의 영광스러운 역사와 위대한 업적을 고수하고 새로운 승리로 빛내이기 위하여 붉은기를 더욱 높이 휘날리며 힘차게 전진하여야 합니다.

전투적 구호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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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성격 규정 위대한 당의 영도 따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진을 이룩해 나가는 총진격의 해

김정일 교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당의 영도 밑에 주체의 사회주의 위업을 빛나게 계승하며 우리 조국을 가장 위력하고 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으로 일떠 세우는 더없이 보람차고 거창한 투쟁입니다.

전투적 구호 당창건 55돐을 맞는 올해는 천리마 대고조의 불길속에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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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성격 규정 위대한 당의 영도 따라 21세기 강성대국 건설의 활로를 열어 나가야 할 새로운 진격의 해, 거창한 전변의 해

김정일 교시 우리는 우리 당과 혁명의 영광스러운 역사와 위대한 업적을 고수하고 새로운 승리로 빛내이기 위하여 붉은 기를 더욱 높이 휘날리며 힘차게 전진하여야 합니다.

전투적 구호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기세로 새 세기의 진격로를 열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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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적 좌표를 제시하고 나면 그 해의 특별한 정치노선을 제시한다. 대개 3대 노선으로 표현하는데, 2001년 공동사설에서는 '21세기 사회주의 붉은기 진군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자주의 정치, 단결의 정치, 애국애족의 정치'라고 하면서 자주정치, 단결의 정치, 애국애족의 정치를 분야별로 설명하고 있다. 2000년 공동사설은 강성대국 건설의 3대 기둥을 ‘사상과 총대, 과학기술’이라고 하면서 사상중시노선, 총대중시사상, 과학중시사상을 제시하였고, 1999년 공동사설은 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을 강성대국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쭉 추상적인 정치구호들을 나열하고 나서 경제 분야의 전망을 내놓는다. 경제 분야의 전망은 지난 4∼5년간 문구마저 변하지 않고 똑같다. 북한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른바 ‘인민경제의 선행부문’이라는 석탄공업, 전력공업, 철도운수, 금속공업 분야의 부흥을 강조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 있어서는 감자농사혁명, 두벌농사(이모작)를 지난 5년간 반복하고 있고, 여기에 양어(養魚)사업, 토지정리사업, 경공업 부문 증산, 살림집 건설을 곁들이는 정도이다. 공동사설에는 또 당원과 지도일꾼, 청년들의 사상·정신적 자세 및 사업방식 등을 제시한다. 2001년에는 ‘혁신적인 안목과 기발한 착상, 진취적인 사업작풍’을 요구하고, 2000년에는 '충실성과 실력', 1999년에는 ‘새 환경에 맞게 사업방식과 일본새에서 근본적인 개선을 가져와야 한다’는 식이다.

'새 세기의 닻은 올랐다. 우리의 사상의 힘, 단결의 힘, 의지의 힘은 백배 천배로 용솟음 치고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 낙원에로의 총진군을 다그침으로써 21세기의 첫해인 올해를 새로운 비약의 해, 전면적 부흥의 해로 빛나게 장식하여야 할 것이다'(2001년) 라는 식으로 내부적 결어를 내놓은 다음, 통일정책과 대외정책을 밝히고, 추상적 선동문구를 끝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공동사설의 수순이다. 2001년 공동사설은 ‘모두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세련된 영도 따라 우리식 사회주의 붉은기를 높이 추켜 들고 주체혁명위업의 종국적 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 더욱 힘차게 싸워 나가자’고 끝맺고 있다.

2001년 공동사설이 보여주는 북한의 내일

앞서 살펴보았듯 공동사설은 매년마다 정해진 틀에 따라 추상적 문구의 선택만을 달리하면서 정치선동 위주의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니 2001년 공동사설 역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굳이 몇 가지 다른 점과 특별히 강조되는 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년에 비해 상당히 부드러워진 어투이다. 그 해에 책임을 지고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문장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2001년 공동사설은 예년에 보았던 과격한 용어들이 많이 순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1년 공동사설은 '우리의 강경하고도 원칙적인 투쟁에 의하여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이 실패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세상에 제국주의가 남아 있는 한 우리의 과녁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라는 정도로 제국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수십년동안 피어린 투쟁을 통하여 다져온 사회주의 계급진지를 0.001미리미터도 양보할 수없다'(2000년), '우리 인민군대는 덤벼드는 침략자들을 무쇠 주먹으로 단호히 짓부실 것이며 그 어떤 적의 아성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1999년), '미제 호전광들과 남조선 괴뢰들이 덤벼든다면 우리 인민군대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온 강력한 힘으로 적들에게 천백배의 섬멸적 타격을 가할 것이며 정의의 총대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것이다'(1998년)라고 과격하게 표현하던 과거와 대별되는 부분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동사설의 두 가지 성격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공동사설은 ‘대내 단속용’과 ‘대외 과시용’의 두 가지 성격이 있다. 정치·사상적 구호의 나열을 통해 인민들을 교양, 단속하는 측면이 있고, ‘우리나라는 이 정도다’라고 대외적으로 시위하고 자랑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001년 공동사설은 문학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신년사이다. 2001년 공동사설은 승리자의 만족감과 자신감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쓸데없이 과격한 표현을 통해 궁지에 몰린 자의 옹색함을 드러내기보다는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의연한 자신감을 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둘째, 대외정책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공동사설의 후반부에는 통일정책에 이어 대외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2001년 공동사설에는 이러한 대외정책이 없다. 하지만 공동사설 앞부분의 지난해 평가에서 '5천년 민족사에서 오늘처럼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가 최상의 경지에 오른 때는 없었다. 우리와 선린우호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추세로 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김정일의 ‘자주의 정치’를 설명하면서 ‘우리 당은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들이라면 그 어떤 나라든지 대외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이며 세계의 자주화와 인류의 평화위업에 적극 기여할 것이다’라고 외국과의 수교, 교역 의도를 은근히 밝히고 있다. 매년 후반부에 대외정책을 밝히던 관례를 깨고 전체 내용 곳곳에 그 의미를 녹여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북한이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과 각종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북한(정권)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적절한 전술적 대응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셋째, 더더욱 강조되는 군사우선주의 풍토이다. 김정일의 ‘선군(先軍) 정치’는 단순히 ‘군사우선주의’라고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군사절대주의’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공동사설은 지난 몇 년간 ‘오중흡 7연대’를 계속 거론하고 있다. 오중흡 7연대는 일제시대에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일본군에게 쫓기는 김일성 부대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억지로 일본군을 유인하여 자폭했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이른바 ‘영웅 부대’이다. 모든 군과 인민이 이 오중흡 7연대처럼 총폭탄 정신, 자폭정신으로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1년 공동사설은 선군혁명노선을 ‘우리시대 혁명의 영원한 전략적 노선’이며 ‘사회주의 건설의 만능의 보검’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선군혁명노선은 먼저 북한에 남아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조직인 군대에게 절대적 권한을 주어 대내적으로 인민을 단속하는 노선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남한에 의지하여 경제적 지원을 받는 동시에 미사일 개발 등의 군사적 위협을 배합하면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선군혁명노선에는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이 어려 있으며 총대로 혁명을 끝까지 완성시키려는 김정일 동지의 강철의 의지가 구현되어 있다’는 공동사설의 표현은 그냥 지나치는 협박의 말이 아니다.

넷째, 여전히 인민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정치·사상영역에서는 매년 새로운 용어와 노선을 제시하고 있지만 경제정책은 김일성이 신년사를 발표하던 90년대 이후로 변한 것이 없다. 아예 없다고 봐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구체적인 대안제시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강계 정신, 대홍단 정신 등 의지의 문제만 강조할 뿐이며, 성과 역시 대단히 불투명하다. 2001년에도 남한에 의지하는 방식, 국제사회에 대한 협박과 갈취에 의지하는 방식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2001년 공동사설은 겉으로는 자신감을 표현하려 했지만, 인민들에게 또 다른 암기사항이 제시되었을 뿐 ‘희망’이란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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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사설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