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통일의 시기’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광폭정치, 인덕정치의 차원에서 수용소를 해체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는 국제사회에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간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만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말로 통크게 마음만 먹으면 될 것이다. 다른 독재국가라면 지배세력의 반발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권위와 지시를 거부할 만한 사람은 없다.

당장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고 수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문제가 있다면 2∼3년에 걸쳐서 정치범수용소를 사회와 같이 개조하고 수인들도 사회적응훈련을 시킨 이후에 사회에 완전히 개방을 하면 될 것이다.

물론 정치범수용소의 해체가 북한 사회에 어떤 파장과 영향을 가져올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김정일 정권이 개혁과 개방을 정권과 북한체제 생존의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였다면 오히려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심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커다란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정권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정치범수용소처럼 상징성이 있는 문제에 대해 우물쭈물 한다거나 이리저리 잰다거나 혹은 계속 기만적인 자세로 나온다면 1∼2년간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정권과 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를 권고하는 바이다. 더 이상 기만과 술책으로는 장기적인 정권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 진실된 개혁과 개방을 통해 그 동안의 과오와 실책을 딛고 북한 인민을 위한 제반 정책을 추진한다면 남한과 국제사회는 그러한 개혁과 개방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하여 줄 것이다. 북한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김정일 정권의 잘못된 선택

그러나 이미 김정일 정권이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정책변화를 표방한 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계급제도 철폐, 시장경제 도입 등 개혁부문에선 어떠한 진전도 없다. 오히려 부분적인 개방에 대한 우려로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나마 개방 부문에서도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불포기, 등 개방이 국내에 끼칠 파장 등의 이유로 전면적인 개방에 나서지 않고 부분적이고 자의적이며 소극적인 개방정책에 머물러 국제사회와 남한에서 진의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김정일 정권의 선택은, 그것이 전면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북한 체제의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개방을 통해 정권의 생존에 필요한 자금과 물자를 확보하고, 국내적으로는 억압과 감시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부분적인 개방을 통해 확보된 자금과 물자는 급격하게 위기를 향해 치닫던 김정일 정권에게 숨통을 틔어 주면서 오히려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정치범수용소 해체의 의미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는 북한 계급제도의 해체를 의미한다.

이미 여러 차례 밝혔듯이 정치범수용소가 현재의 모습처럼 대규모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데에는 김일성의 정적들을 제거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전체 주민들을 3대 계층 51개 성분으로 나누고 이 중 적대계층을 특별관리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즉 50년대 말부터 60년대 말까지 지속된 중앙당 집중지도사업과 주민재등록사업을 통해 분류된 출신성분과 사상성이 불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별 독재를 실시한다는 명목이 오늘날의 인간생지옥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상 김일성의 개인독재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민들을 분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분 분류는 현재 북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고 반대로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근본 문제이기도 하다. 사단법인 <좋은벗들>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북한사회인식 설문조사’에서 대상자의 대부분이 출신성분으로 인한 계급적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만인평등의 사회를 지향한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장 폐쇄적인 계급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이율배반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정치범수용소를 대규모로 건설한 이 시기의 북한이 사회주의의 이상를 포기하고 사실상 독재국가와 계급국가로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도 정치범수용소에는 - 그 사람 자신도 아니고 - 단지 부모나 조부모가 지주였다거나 종교인이었다거나 공무원이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른바 적대계층 출신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수십 년을 동물과 같은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인도에도 아직 카스트 제도가 존속하고 있고 노예제 사회에도 계급이 존재했었지만 그것은 사회가 미발전 상태에 있었거나 계급제도가 수천 년 간 존속되어 온 사정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이전의 역사에도 이러한 정도의 계급적 차별은 없었고 이전사회의 어떠한 계급제도라 하더라도 이렇게 무참히 악랄하게 특정계급이나 특정계층을 적대시하며 취급한 적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는 북한 사회를 50년 가까이 지탱해 온 계급제도의 일단을 해체하고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다는 의의를 가진다.

다음으로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는 북한을 지탱시켜 온 수령절대주의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

정치범수용소는 주민들의 성분 분류와 계급적 차별, 적대계층의 특별관리에서 더 나아가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반대하거나 혹은 반대할 수도 있는 혹은 반대할 만한 힘이 있는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데 쓰이고 있다. 실제로 정치범수용소는 김일성의 독재강화를 목표로 한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과 유일적 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 김정일의 권력장악 과정에서 더욱더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유일적 지도체제의 논리가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데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적용이 되면서 단지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단지 수령에 대해 반대할 의사가 있거나 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령의 명령과 지시를 이행하지 않거나 혹은 못하거나 하는 경우에도, 더 나아가 수령의 눈밖에 벗어나기만 하면 어느 누구라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로 나타나고 있다. 전에도 밝혔듯이 신년사를 외우지 못했다거나 신문에 나온 김일성, 김정일의 활자를 찢었다거나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간 사례는 일반적인 계급독재국가의 차원을 한 단계 뛰어넘는 수령절대주의체제라는 기괴하고 극악한 사회제도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정치범수용소는 이러한 수령절대주의체제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는 수령절대주의체제를 허무는 그 출발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나 심지어 아직도 공산당이 독재를 하고 있는 중국에서조차 자국의 지도자에 대해 평하거나 비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오직 북한만이 그토록 잔혹하게 탄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가 없어지면 이는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당장은 설사 지도자의 정책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지도자의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와 다른 대안에 대한 고민으로 사고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탄압상황에서는 이러한 생각 자체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북한 지도부도 이를 이용해 우민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위하여

정치범수용소의 해체가 수령독재의 장래와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누구보다 김정일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정권과 국가의 안정을 찾기로 마음을 먹고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면 정권의 안정을 해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지금의 체제로는 장기적인 정권의 안정이란 것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어려움이 있다해도 이를 정면돌파 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점점 이러한 길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인권개선을 원하는 세계의 인권운동세력이 언제까지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만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므로 우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적지 않게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한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이러한 사실들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우선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나라들에 알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시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강철환씨가 프랑스에서 자신의 수기를 출판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은 충분치 못하다. 이러한 선전활동은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비롯한 국내의 북한 인권단체들이 주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북한 지도부가 국제사회의 여론에 대해서 일정정도 영향을 받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여론의 힘만으로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리라고 믿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다. 문제는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를 위한 다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아직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정치범수용소의 문제는 북한 수령절대주의체제의 압축판이기 때문에 정치범수용소 문제만 따로 떼어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없는 한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는 북한민주화운동의 향방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의 양심적인 인권운동세력들은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널리 알리면서 북한 당국에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를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으로 북한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북한 민주주의세력이 신장되고 인권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정치범수용소 연재를 마치는 와중에 정치범수용소와 관련된 중요한 신문기사가 나왔다. 강철환 씨와 안혁 씨가 있었던 요덕 15호 수용소에 1994년 4월부터 1999년 1월까지 갇혀 있었던 이백룡(가명) 씨가 한국으로 넘어 와서 증언한 내용을 조선일보(2001.1.15)가 보도한 것이다.

이백룡씨의 증언은 김용씨의 증언과 함께 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북한 사회와 정치범수용소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우선, 96년 1년 동안에 요덕수용소의 한 마을 2,000여명의 사람 중 400명이 식량난으로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하긴 일반 사회에서도 굶어 죽어나간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정치범수용소의 상황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강철환 씨의 증언에서 2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던 요덕수용소의 수용인원이 식량난 시기 매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4만여 명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백룡 씨는 최근 수용소에 갇히는 사람들은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남한사람과 접촉했거나 남한으로 가려고 했던 사람들, 해외유학생들, 그리고 반정부그룹을 만들어 활동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백룡 씨의 증언으로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현재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가 어떠한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전의 수용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반정부그룹 활동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서의 반정부활동은 남한이나 일반 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민과 결단이 필요하다.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일가족과 친척들조차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반정부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식량난 시기 이완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북한 주민들의 자주적인 요구를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막고 감추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북한 체제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제 남한을 비롯하여 세계의 민주주의세력들은 북한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과 자주적인 발전을 위한 노력을 외면하지 말고 민주화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북한의 선각자들을 돕는 길이며 북한 주민들을 위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여 그곳에서 죄 없이 스러져간 생명들을 진혼할 수 있는 인류의 책무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