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맑스의 공산주의 이론 중 대표적인 것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이 있습니다. 자본가 계급의 독재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면 반혁명(反革命)을 노리는 부르주아 계급의 준동(蠢動)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일정기간 '노동계급의 독재'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이른바 '독재를 막기 위한 독재'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일정기간'이라고!

하지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외쳤던 맑스는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노동계급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맑스의 생각에는 이상적인 사회가 건설되어 이것이 운영되면, 곧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어 이 사회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줄 것이라 믿었는지 모릅니다. 좋게 생각하면 맑스는 참 순진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은 순진했는지 몰라도, 그로 인해 인류의 20세기는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문화대혁명'이란 이름으로, '인민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구시대 청산', '반제 반봉건'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상에서 숱한 생명들을 앗아갔습니다. 중국에서, 옛 소련에서, 베트남에서, 캄보디아에서, 북한에서, 동독에서… 그렇게 숱한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고문당하고 감금당하고 박해받았습니다.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이상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도 허용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로 변질되어 전 세계를 배회했습니다. 자본에 의한 인간소외를 극복한다는 사회가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옥죄었고, 독재와 부정을 극복한다는 체제가 살인과 세습을 정당화하는 식으로 비뚤어져 갔습니다. 안타깝지만 하늘나라의 맑스가 이것을 본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죠.

백 번 양보해,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일시적'이라는 변명을 받아들여 봅시다. 그러나 맑스가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것을 제창한 지도 백년이 훨씬 지났지만, 지구상에 이 '일정기간'이 지나고 새로운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나라를 여태껏 우리는 감상한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 '일시'가 아무리 '일시'라 하더라도(이미 50년이 흘렀지만), 그 독재기간의 사람들은 고통받아도 된다는 건 너무도 잔인한 발상입니다. 맑스 선생, 도대체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인류의 광명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겁니까?

2.

여기에 김정일은 한술 더 떴습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간중심철학을 자신의 통치도구로 변질시킨 김정일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을 독창적으로 해석한다면서 이것의 본질을 '사상교양'이라 했습니다. 물론 이는 일면 맞는 말입니다. 사회를 본질적으로 개조하려면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요.

그런데 김정일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상교양을 하려면 대상을 잘 파악해야한다는 명분으로 2천3백만 북한 주민을 핵심, 기본(동요), 복잡(적대) 계층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64개로 분류하였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사상동요를 막기 위해 쉴 새 없이 암기사항을 내놓고,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공개처형을 일삼고, 사회적 격리를 위해 정치범 수용소를 북녘 땅 곳곳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사회안전성, 보위사령부 등의 국가기관 뿐 아니라 인민반 조직, 생활총화, 연대책임, 정치학습 등 촘촘히 늘어진 거미줄처럼 온 사회를 거대한 감시체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진정 사람사이의 사랑과 믿음이 통하는 사회의 본질일까요? 프롤레타리아의 세상이라는 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잘 고발하고, 감시하고, 꼼짝 못하게 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이리 봐도 저리 봐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인류역사상 최악(最惡)의 발명품일 뿐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는 전혀 인연이 있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명의(名醫) 허준은 독(毒)을 독으로 푸는 일화를 남겼으나, 인류 역사는 독재(獨裁)를 독재로 풀 수 없다는 진리를 자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3.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존스홉킨즈 대학 데이비드 램튼 교수의 표현처럼 지금 중국의 사회주의는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정치 구조의 측면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공산당이 1당 독재하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거죠.

필자는 몇 해 전 짧은 기간이나마 중국을 여행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열정의 도화선이었던 '사회주의'가 도전되고 실험되었던 나라에 들어가,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을지라도 '사회주의'를 직접 확인하고 돌아온다는 사실에 너무도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에 대해 물어보고 사회주의적 '흔적'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과 희망이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심양의 명문대학 출신인 한 여성은 '사회주의를 잘 안다'고 이야기하고 '우리 중국은 사회주의다'라고 주장했지만, 도대체 무엇이 사회주의이고 지금 중국에서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뭐가 있냐고 묻는 필자의 물음에는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 역시 대답을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독재'를 사회주의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 혹은 공산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착각입니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망언'에 가깝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실 기자 님들이나 북한문제 전문가 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리건대, 제발 북한을 자꾸 사회주의 국가로 표현함으로써, 비록 커다란 상처와 오류를 남겼지만 인류가 기나 긴 시간에 걸쳐 품어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열정마저 훼손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응당한 표현을 붙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이든, 북한이든, 쿠바든, 이른바 '사회주의'를 자칭하는 나라들은 모두 그냥 '독재'국가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이들 나라는 심각하게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당하는 비민주적인 국가일 따름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 북한은 단연 으뜸을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민주화하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4.

이번 호 Keys는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특집으로 실었습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조중친선은　세기를 이어 강화 발전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1월 23일자 사설을 통해 중국과의 친선협조를 강조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를 사회주의 국가 간의 연대로 표현하였지만, 실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항미(抗美) 연대전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일 뿐입니다. 중화주의를 표방하며 미국과 대등한 세력을 형성해 21세기 최강대국으로 커나가려는 중국의 요구와, 더 이상 자체의 힘으로는 파탄난 경제를 되살릴 수 없는 김정일의 요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김정일의 이러한 줄타기가 과연 성공할 것인지 여부는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아무튼 김정일의 현실 정치감각은 '타고났다' 할 만큼 뛰어난 것 같습니다. 그 좋은 머리를 왜 자꾸 나쁜 쪽으로만 돌리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독일 긴급의사회의 일원으로 북한에서 활동하다 북한당국에 의해 추방된 노르베르트 폴러첸 씨의 인터뷰도 가슴으로 읽어 볼 부분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는 파란 눈의 이 외국인 앞에, 잠시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폴러첸씨의 이러한 양심적인 결단과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는 사람이라면 국가와 민족을 따지지 않고 연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