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에서는 '천지개벽'이나 '신사고'란 말이 유행인 모양이다. 북한 내각의 위원회와 성(省), 중앙기관에 종사하는 당과 행정 책임 간부들은 지난 1월 27일 평양시에 신설된 공장과기업소들을 견학했다. 이들이 둘러본 시설은 지난해 말 완공된 즉석국수(라면)공장, 위생자재공장, 흥부수원지, 타조목장 들로서 김정일이 작년 12월 7일 시찰한 곳이다. 한편 2월 3일에는 도, 시군당 책임자급 간부들이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황해남도 토지정리 현장을 무더기로 견학했다. 이곳도 김 총비서가 작년 12월 5일과 18일 잇따라 시찰한 지역이다. 평양방송은 '참관자들은 천지개벽의 새 역사가 창조되고 있는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위대한 장군님의 영도를 받들고 일꾼들과 당원, 근로자들이 이룩한 투쟁성과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이들의 각오와 결의를 전하면서 '낡은 관념', '새 세기에 맞는 사상관점과 사고방식' 등을 거론했다고 한다.

'천지개벽'이란 말이 우습게 쓰이긴 했지만 김정일이 중국 상하이 방문에서 '천지개벽'이란 말을 사용한 후 유행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 금년 초 노동신문에서 '신사고'를 강조한 이후에 '신사고'라는 말도 유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개방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지만, 그리고 개성을 특구로 지정하겠다는 발표 이후 북한이 개방의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높아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북한 측에서 단 한번도 공식적인 정책이나 노선, 이론 등에서 개방의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을 언명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금년에 들어와서 이러한 태도가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노동신문의 신년 공동사설에서 "새세기는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안목에서 참신하게 사고하고 진취적으로 사업해야 한다"고 하였고, 1월 4일자 노동신문에서 김정일은 "2000년대에 들어선 만큼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보고 풀어 나가야 한다"는 '21세기 신사고'를 제창하였으며, 9일자 노동신문 정론에서 "새세기에 들어선 만큼 뒤떨어진 것을 털어 버리고 사고방식은 물론 일하는 자세와 생활기풍도 근본적으로 일신하고....."라고 함으로써 북한의 공식적인 노선과 정책에서 뭔가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으며, 이에 바로 뒤이은 김정일의 중국 방문은 여기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 개방의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을 이미 마음에 굳힌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지난 번 방문했던 83년 허허벌판이던 상하이 푸둥(浦東)지구가 20년도 안 된 사이에 '동양의 뉴욕'으로 변모한 발전상을 직접 보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84년 9월 합영법을 제정, 대외개방을 시도했으나 일부 조총련계 기업들과의 합영에 머물렀을 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서방과의 경제협력을 위해 91년 12월에는 나진선봉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구로 설정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끝났다. 나진선봉특구 지정은 중국의 경제특구를 일부 외형만 모방한 것이었지만 99년 3월말까지 1억 4000만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는 데 그쳤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 등으로 인한 관계 악화와 사회간접자본 미비, 투자보장법규 미비 등으로 서방자본들이 진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식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주저해왔으며 중국이 이룩한 경제성과를 평가하는 데도 인색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김정일의 방중을 계기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보는 북한의 눈이 달라졌다. 김정일은 당시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 및 주룽지(朱鎔基)총리와 만났을 때 중국 개혁개방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었다. 개성을 특구로 지정한 것도 작년 5월의 방중 때 주룽지가 휴전선 인근지역을 특구로 지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로 알려졌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도 중국 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의 변화와 개방으로 가는 길에는 중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북한의 개방과 중국의 역할은 뗄레야 뗄 수도 없는 관계이다.

경제적 협력, 지원자로 중국 선택

특히 김정일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동을 경제특구로 만들기로 장쩌민과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 랴오닝성 신임성장은 설날 직전인 21일부터 23일까지 단둥·선양·다롄 등의 국무원 산하 랴오닝성 경제·무역 체제개혁위원회의 관계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고 중국의 한 소식통이 26일 밝혔다. 양국의 이번 계획은 김정일이 지난주 방중 일정을 마감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21일부터 23일까지 신의주 경공업공장을 현지 지도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북한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그리고 그 방향을 예고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신의주는 1999년 11월 김 위원장이 직접 현대 쪽에 경제특구 공단으로 강력하게 제안한 곳이기도 하다.

이 소식통은 장 주석과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단동을 `제2의 선전'으로 만들자는 데 합의했으며, 랴오닝성은 단동하구에서 동강시로 이어지는 38㎞ 구역 일대를 선전(중국 남부의 경제특구 도시)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공업단지로 만들 계획을 수립했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현재 단동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단선철로를 복선화하고 화물차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고속도로 확장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양국은 또 한국전쟁 때 미군이 폭파한 철교를 유적지로 남겨두는 대신 사람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압록강 대교를 부근에 함께 새로 건설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아울러 앞으로 북한과의 교역증가에 대비해 대학교내의 조선어학과 인재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단동은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변경도시로, 현재 북한 대외교역 물품의 70∼80%가 통과하는 교역 요충지다. 또한 오는 9월 경의선이 개통되면 중국 대륙과 시베리아로 향하는 열차는 단동을 지나갈 수밖에 없어, 중국은 전략적인 길목도시로 키우기 위해 대규모 개발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동에서는 통행증만으로 신의주를 왕래할 수 있으며, 단동과 신의주간 전력공급도 가능하다.

중국정부가 북한에 전기뿐만 아니라 제철소, 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코크스와 유연탄을 지원하고 헤이룽장(黑龍江)성 따칭(大慶)-평북 피현군 소재 봉화화학공장간에 설치된 송유관을 통해 원유를 공급하면 북한경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직면해 있는 식량문제 또한 동북 3성이 보유하고 있는 잉여 옥수수를 중국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경우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정황과 북한의 정치적 입장을 놓고 볼 때 김정일의 중국 방문은 경제적 협력자, 지원자로서 남한보다 중국에 비중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대북 진출 기업인들은 김정일의 방중에 대해 '북한은 지난 98년 우리 경제가 IMF 한파를 맞은 이후 경제적 지원자로서 남한의 능력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면서 '북한은 방향을 전환, 중국을 든든한 경제협력자로 확보하기 위한 정상외교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을 놓고 보더라도 이러한 분위기가 체감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의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고 개성 특구의 건설을 책임진 '현대'의 급격한 상황악화가 많은 심리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나진선봉 특구가 만들어졌을 때 중국에서는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경제적 여력도 충분하지 않았고, 또 그러한 어설프고 어정쩡한 개방에 냉담했으며, 또 올림픽 유치 실패 사건 때문에 중국 전체가 북한에 대해 극히 분노했기 때문에 더욱 냉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당시 2000년 올림픽의 베이징 유치를 전 국민적인 염원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화교인맥과 돈과 외교공세를 총동원하여 추진했고 유치 가능성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한 표 차이로 떨어졌다. 북한은 한중수교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기권했다. 만약 북한이 기권하지 않았다면 베이징에 기울고 있던 사마란치의 캐스팅 보트 행사로 베이징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과가 이렇게 되자 북한에 대한 분노가 전국적으로 들끓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6.25 전쟁 때 중국군 수십만 명이 도와주려 참전해 목숨을 잃은 바로 그 북한이 배신해서 유치에 실패했다는 데서 중국인들은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고 분노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평범한 중국인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이것이 중국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나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은 그 이후 형식적으로는 특별히 나빠진 것이 별로 없지만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냉담한 관계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식량난에 빠지게 되고 중국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리고 동북아 정세의 전개 과정에서 서로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절실히 인식하면서 다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상당히 많은 양의 식량을 비밀리에 북한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아 질서 재편과 북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사실 남한이 대단히 부담스러운 존재다. 북한보다 1인당 GDP가 20∼30배 더 높고 정치적으로 비교적(북한에 비해서는 대단히) 자유로운 남한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같은 민족이고 또 북한 사람들의 통일 염원이 대단히 강하다는 것도 체제 위협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북한의 개방이 추진되면 추진될수록 이러한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부담스러운 남한보다는 중국이 경제협력자, 동반자로서 훨씬 편할 것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경제협력은 사실 메리트가 적기 때문에 그냥 놔둬도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정치-경제 관계가 약간 다르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그 사이의 경제협력이 잘 발전될 가능성도 많이 있다. 북한 개방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정치적, 군사적 미래에 대한 확신을 투자자에게 심어주기 어렵고, 둘째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하여 투자자의 매력을 끌지 못한다는 데 있는데, 중국 정부로서는 첫째, 북한의 정치적 안정을 중국 자신이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필요가 강력히 존재하며, 둘째 어마어마한 자본을 가진 자본가이자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더 중요한 자본가인 중국 정부 자신이 북한 일부 지역, 특히 특구 지역의 사회간접자본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현실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사회간접자본을 북한이 직접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이번 중국방문은 북한의 개방과 북중경제협력의 차원에서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작년 5월과 이번의 두 차례에 걸친 김정일의 중국방문과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에 대한 합의로 인해 완전히 복원된 '북중동맹'이다. 중국 정치인들과 지도적 인텔리들은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미국과의 대결 시대를 준비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는 공공연하게 중국과의 대결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중국은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애매한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을 확실한 동맹으로 묶어 놓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은 경제력이 보잘것없는 조그만 나라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고 경제강국인 남한과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 지정학적 위치가 동북아의 핵심적인 지역이다. 만약 북한이 중국보다 미국에 더 가까워지거나 남한에 흡수되어 버린다면 중국의 국익에 매우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남한에 흡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 체제가 붕괴되기만 하더라도 중국 국내 정치와 민심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중국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막아 나서야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체제 유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남한, 미국, 일본보다는 중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낫고 또 남한과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 국가안보에도 대단히 유리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계획이 눈길을 끌고 있다. 김정일이 오는 4월 러시아를 방문,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계 방안, 대북 전력 공급 문제, 러시아 무기 구매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러시아 이즈베스티야지(紙)가 2월 5일 보도했다. 북한은 영공 방어망체제 강화를 위해 러시아의 S-300 요격미사일 도입과 함께 SU-27 전투기를 자국에서 조립생산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 외에도 BTR-80 장갑차 10대, BMP-3 장갑차 100대를 북한에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지난 98년 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러시아 총리가 제안했던 러시아-중국-인도의 전략적 3각 축 구성계획을 발전시켜 2000년 7월 10일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신외교 개념을 공개했는데 그것은 첫째, 미국 중심의 일극화 반대하고, 둘째 아시아를 최우선 외교 대상으로 삼으며, 셋째 러시아-중국-인도의 3국을 중심으로 '다극화 세계 질서 구축'을 추구하며, 넷째 그 중에서도 중국과 손을 잡는 것을 국제전략의 가장 핵심적인 방향으로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전후하여 7월 5일 타지크스탄에서 7월 18일 베이징에서 연속하여 두 차례의 장쩌민-푸틴 간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여기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재확인하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공동저지에 합의했다. 푸틴은 여기에 이어 쉬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여 7월 19일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갖고 정치, 경제, 군사적인 협력을 강화할 것을 합의했다.

이는 동북아 정세의 전반적인 재편에 북한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번의 중국 방문과 얼마 후에 있을 러시아 방문은 이를 다시 한 번 확고히 재확인하는 것이다.

북중동맹의 완전한 복원과 장기적인 봉미봉남 정책

홍콩의 유력 시사일간지인 명보(明報)는 1월 17일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 연대해 미국 주도의 국가미사일방어(NMD) 구상 저지에 나서는 등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해 나갈 방침이며 김정일의 방중도 이와 관련된 것 같다고 논평했다. 김정일은 눈앞에 다가온 부시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롯한 외교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가정아래 중국과 동북아 안전문제 등에 대한 중대정책 을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명보는 전했다.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 함께 힘의 외교 를 구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시 행정부와의 대결을 염두에 둬야 하는 공동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새로운 우호조약 체결을 구상하고 있으며 김 위원장이 중국 방문에 이어 러시아를 방문, NMD문제를 중점 논의할 것으로 신문은 내다봤다.

어쨌든 명보의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동북아 정세를 반영하는 것이며 김정일의 방중이 갖는 핵심적인 의미를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중동맹의 완전한 복원은 남북화해 무드와 맞물려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국익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북한은 동북아의 현 정세에서 대단히 중요한 나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는 손놓고 바라보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의 북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북미관계의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이러한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다. 설사 북미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중국과 달라서 투자자들을 강제로 북한으로 내몰 수 없기 때문에 북한에 뚜렷한 경제적 이익을 주기도 어렵고, 또 북한은 여전히 미국이 북한체제를 전복할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특별히 미국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다만 테러국 해제를 통한 국제활동의 최소한의 자유 획득과 중국으로부터의 최대한의 도움을 받기 위한 제스처 차원의 대미 접근 등이 중요할 뿐이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는 북미관계가 빨리 개선(정상적인 외교관계 수립)될 수 있어도 본질적으로,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북미관계는 오히려 지난 6∼7년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대단히 많다. 그리고 소위 '통미봉남' 정책도 내용적으로 폐기되었거나 그 의미를 상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과 남한에 대한 개방은 확대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봉미봉남'의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