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MD의 역사 1 - 스타워즈 계획에서 시작

NMD 계획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과의 냉전대립이 정점에 달하고 있던 때 미국 대통령 레이건은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 이른바 '스타워즈(Star Wars)' 계획이라 불리는 전략방위계획을 발표한다. 소련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만약 소련이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이를 발사단계에서 포착하여 추적, 우주공간에서 격추시키겠다는 이 야심에 찬 계획은 당시 소련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말은 방어계획이지만 이것은 크게 소련을 크게 자극하였다.

우선 이것은 핵보유국들 간에 유지되어오던 '보장된 상호 파괴(MAD)'전략으로부터 벗어나는 계획이다. MAD 개념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나라에서 B라는 나라를 핵무기로 선제 공격하였다. B는 일단 피해를 입긴 했는데 그래도 나라 전체가 날아갈 정도는 아니어서,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에 있는 미사일시설을 가동하여 다시 A 나라에게 반격을 가한다. 결국 이렇게 되면 전쟁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없이 서로 피해만 보고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대등한 핵전쟁 능력 하에서는 어느 나라도 감히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썩 그럴듯한 개념으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전략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MAD 개념이 실행되려면 한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압도적인 공격과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할 때' 가능하다는 것. MAD는 서로간에 보복 공격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건데, 특히 만약 어느 한 측이 철저한 방어능력을 갖추게 되면 부담 없이 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공격이 아니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패권을 쥐게 될 건 뻔하다.

또한 전쟁에서 방어는 공격보다 몇 배 더 많은 연구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2차 대전이후 강대국들은 서로 군사적 패권을 노리며 무리한 군비확장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MAD 개념을 존중하며 방어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자제하자는 다소 이색적인 합의를 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아래 탄생한 것 중의 하나가 미국과 소련 사이에 체결한 'ABM제한협정'이다. ABM은 탄도요격미사일(Anti-Ballistic Missile)의 약자로,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미사일, 즉 방어용 전쟁무기 중의 하나이다. 미국과 소련은 1972년 ABM제한협정을 체결하여 ABM을 일정 수량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미국과 소련 어느 한 측도 자국의 영토 전체가 ABM의 보호막 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SDI 계획은 이러한 MAD 개념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그리고 우주공간을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평화적으로 개발하기로 하여 1967년 체결된 OST(The Outer Space Treaty)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이 조약은 우주에서 군사기지의 건설, 무기 실험과 군사작전은 물론이고 관련시설과 요새의 건설을 금지하고 있는데 SDI는 우주에서의 요격미사일 발사까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스타워즈'란 말 그대로 지구에서의 전쟁을 우주로까지 확대시키는 발상이었다.

알다시피 2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패권국가를 정점으로 하여 힘의 균형을 유지하여 왔는데 이렇게 어느 한 측이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여 힘의 우위를 확보하겠다고 선언하자 다른 한 측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패권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소련 역시 SDI에 대응하는 새로운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고 이는 엄청난 국가예산을 필요로 했다. 양국 간에 군비경쟁이 가속되었고, 뱁새가 황새 좇아가는 격으로 소련은 무리하게 미국의 SDI 함정에 자꾸 빠져들다 결국 파산하고 만다.

■ NMD의 역사 2 - 축소판 스타워즈 계획

소련의 붕괴로 유일 패권국의 지위를 차지한 미국에게 SDI는 다소 의미가 없어진다. 역시 문제제기는 미국사회 내부에서 먼저 있었다. 실재하는 최대의 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현실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 해마다 수십 억 달러의 예산을 쏟아 붓는다는 것은 야당의 주요 공격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90년대 중반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SDI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는 막을 내린다. 대신 클린턴 행정부 초반 '전역미사일방어체제 - TMD(Theater Missile Defense)'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SDI가 우주공간을 활용하여 전 지구적인 방위시스템을 생각했다면, TMD는 이렇게 무리하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위협요소가 많은 동북아나 중동 같은 곳에 미사일 요격시설을 갖추어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 이라크 등에서 발사하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차단한다는 발상이다. 스타워즈는 동맹국들의 재정적 참여를 유도하기가 쉽지 않으나, TMD는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이들의 비용분담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이러한 계획아래 한국에도 패트리어트 등 요격미사일들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미래 첨단무기체계의 한 축이 될, 거기다 지금껏 막대한 예산이 투여된 스타워즈 계획을 쉽사리 포기하기에도 아쉬움이 많았다.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들이 지적한 것은 '지역별 불량국가(regional rogue states)'의 위협이다. 북한, 이라크 등이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고 이것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포착되었고, 결국 클린턴 행정부 후반에 마련된 것이 바로 NMD(National Missile Defense) 체제이다.

NMD의 기본구상은 이렇다. 미국의 조기경보위성은 적이 미사일(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발사하면 초기 단계에 내뿜는 버섯구름을 적외선 센서로 감지, 그 정보를 미 본토의 NMD 전투지원센터로 보낸다. 전투지원센터는 위성이 보낸 정보를 종합 분석한 뒤 외(外)대기권 요격체를 실은 로켓을 발사한다. 이 로켓은 대기권 밖에서 목표물로 접근하면서 타깃을 포착하고, 마지막 단계에 요격체를 분리해 목표물을 정확히 저격한다.

이러한 NMD계획은 미국 영토 보호를 목표로 하고 미사일 방어기지를 지상에 건설한다는 것이 다를 뿐 축소판 SDI 계획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 하에서의 NMD 정책은 신념에 따른 강행이라기 보다는 공화당 및 보수세력의 압력에 의한 울며 겨자먹기식 추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NMD가 완전한 SDI로 복원되고, 투철한 정치적 신념아래 진행된 것은 부시행정부가 들어선 최근의 일이다.

■ NMD의 의도 - 중국이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저지한다!

NMD 초기 그리고 지금까지도 NMD는 미국 국내외의 숱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 내의 비판은 주로 NMD 계획이 현실성이 없고 너무 많은 재정적 지출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비판이 있지만 기술적인 의문점 중의 하나는 발사된 요격체가 과연 적의 미사일과 교란용 비행물체를 정확히 식별하여 격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1999년과 2000년 3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던 NMD 실험은 1차만 성공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이 1차 실험도 조작이었다는 주장 또한 있다.) 미사일 전문가인 MIT대 시어도어 포스톨 교수는 이러한 NMD를 가리켜 '과학적 기만'이라고까지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더욱 강하게 NMD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뭘까. 미국이 NMD를 강행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금의 동북아 정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최근 동북아는 97년 외환위기를 겪게된 신흥개발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맹목적 의존을 버리는 대신 성공적인 경제개발을 통해 이 지역의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기대를 갖고 집결하는 형세이다. 현재 중국은 점점 과거 역사와 같이 이 지역에 도덕적, 심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으며 강력한 중화민족주의와 동북아 지역주의를 통해 세계적 패권국가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다. 미국과 가까운 일본이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되기에는 과거 동북아에 자행한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때문에 심리적 리더의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이고, 최근 일본 경제의 불황마저 겹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로 무장한 거대 국가가 잠재적 패권국가로 등장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구 소련보다 오히려 더 큰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카터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저서에서 "주한미군이 없는 통일 한국은 처음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다가 잔존하는 반일감정에 의해 중국의 확고한 정치적 영향권 혹은 교묘하게 중국의 권위가 존중되는 권역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하였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의 NMD는 겉으로는 북한, 이라크 등 불량국가를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가 크다. 중국이 경제적 발전을 토대로 하여 군사대국으로 커나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며, 미국의 패권 영역을 벗어나려 하는 동북아 국가들을 단속하는 효과 또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NMD를 강행할수록 가장 답답한 나라는 중국이다. 경제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싶은데 미국이 자꾸 경쟁을 걸어오면 대응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이를 좇아가자니 SDI에 대응하다 망한 소련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운 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대륙간 탄도탄 '둥펑(東風) 31'형 미사일의 2차 실험을 강행한데 이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며 사거리 1만km 이상으로 유럽 및 미국까지 공격이 가능한 대륙간 탄도탄 JL-2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 역시 NMD 체제에 가장 반발하는 나라 중 하나다. 러시아가 반발하는 것은 과거 영예를 누리던 초강대국의 후손들이 2류국가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NMD 반대와 새로운 지역안보질서 구축을 주장하면서 대통령이 앞장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반미전선 형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의 NMD체제의 대안으로 범유럽 공동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제안했으며 다탄두 토플 M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구 소련의 계승자를 자임하며 소련과 미국이 체결한 ABM제한협정 및 OST 준수를 주장하고 있지만 여기에 미국은 'ABM에 서명한 소련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코방귀를 뀌는 정도이다.

많은 나라들이 겉으로는 "미국의 NMD 강행은 지나친 군비경쟁을 불러 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물론 이러한 진심도 있겠지만 내심은 미국이 21세기에도 유일패권국가로 군림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을 제외한 EU 모든 국가들은 계속적으로 NMD 반대의사를 밝혀왔고, 유럽 독자적인 방위체제 구축에도 합의하고 있다. 현재 NMD추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대만 정도이고, 한국은 중국, 북한과의 관계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 북한의 NMD 줄타기

미국이 NMD 정책을 가장 크게 돕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다. 과거 SDI가 그래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국가였던 소련을 경쟁대상으로 하고 있었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NMD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국가, 즉 자국민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독재자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대책 없는 전쟁이나 미사일 발사를 감행할 수 있는 이른바 '깡패국가' 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북한이 똑같이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하여도 영국은 안전하고 북한은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사회구조가 국가의 행위에 구현되기 때문이다"는 예일대학의 Alexander Wendt 교수의 주장은 이러한 미국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1999년 1월 미국의 NMD 추진계획 발표를 부추긴 것도 98년 8월 있었던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이었다. 미국이 제1의 깡패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하여 발사할 수 있는 사거리 600∼900마일(약 2,000km)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은 공화당과 무기 로비시트들의 NMD 추진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실제 NMD추진과 관련한 미 의회 법안 심사나 예산 배정 등 주요 시기 이전에는 꼭 북한의 핵개발 의혹, 미사일 발사설, 북한 군사력 증강설 등이 흘러나오는 메커니즘을 엿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NMD 추진의 빌미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NMD 추진을 어떻게든 저지하여야 할 나라들로서는 정말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을 빌미로 삼지 않을 만큼 북한 스스로 명확한 투명성을 보여주면 NMD 추진을 국제적으로 제어할 큰 명분을 얻게 되는데 북한이 자꾸 미사일 개발과 군사적 대결에 대한 유혹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을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떨쳐 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히 중국으로서는 큰 숙제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남북정상회담의 성사과정과 이후 남북관계 전반에 중국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고, 지난 1월 김정일 방중 당시 신의주 특구 개발 등 경제지원을 대가로 미사일 개발 등에 대한 모종의 합의(혹은 공동대책)를 마련하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5월로 예정된 푸틴의 북한 방문도 이러한 북-중관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미국의 입장에서 NMD는 가능성이 아니라 당위가 되고 있다. 현재의 위협이 아닌 미래의 위협을 차단하고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영구화하겠다는 것이다. 21세기 유일 패권국가로 남느냐 퇴색하느냐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소수파 대통령으로 어렵게 당선된 부시로서는 NMD 강행이 자신의 추진력과 공화당적 인상을 가장 크게 보여줄 수 있는 계기이다. 여기에 220만에 이른다는 군산복합체 근로자와 기업가, 로비스트들의 이해까지 얽혀있다.

그래서 현재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이것도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앞서 설명하였듯 북한의 가시적(可視的)인 변화 없이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기는 힘들 뿐더러, 대책 없이 제외시켰다가 NMD추진의 명분만 잃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미국과의 관계를 잡았다 놓았다 하는 중이다. NMD를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 속에 교묘하게 중요한 추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중소관계를 통해 이익을 챙기던 모습이 또 다시 재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