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수는 이 발언 소동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6·25전쟁 등에 대한 선(先）사과 요구는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 책임을 물으려면 확정판결이 나야 한다. 그러나 김정일위원장은 법정 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해명하며 일부 언론이 자신의 발언 진의를 완전히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일단 우리는 황교수의 이러한 해명이 진심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법리적 해석 역시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것은, 우리는 현재의 남북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논쟁과 대립에 끼어 들어 불필요한 역량을 소진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피해당사자에게는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터질 일이겠지만 현시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과 남한 사이에 일어난 과거사를 놓고 김정일 정권의 잘못을 논하기보다는, 북한 인민의 관점에 서서 김정일이 인민에게 저지른 죄과를 가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기회에 그간 황교수가 보여주었던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한 무지(無知)와 오만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 역사에 맡겨둔다는 것은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이 아니다.

황태연 교수는 지난해 12월 <'이질성의 포용'이 북한 변화 이끈다>라는 제목의 월간 신동아 특별기고를 통해 북한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바 있다. 이 글의 시작은 북한 사회의 본질 및 변화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뒤 부분의 중심적인 결론은 북한인권운동과 관련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에 차분하게 북한사회의 특징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던 황교수의 논조는 중반부에 갑자기 논리적인 비약을 거듭 하더니 후반부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어조를 풍기면서 우리를 비롯한 북한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으로 마무리짓고 있다.

기고에서 황교수는 북한 사회를 사회주의적 요소와 수령중심체제가 결합되어 있는 사회라고 전제하면서 "사회주의체제의 변화와 김정일체제의 변화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황교수는 "따라서 북한의 변화 유도는 남한 사람들이 그 동안 가장 두렵게 생각해온 스탈린주의 체제의 퇴출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김정일을 '독재자'로, 김정일 체제를 '독재체제'로 공격하는 일부 남한 인사들은 북한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황교수의 대단한 착각이며 오류라고 생각한다. 황교수는 북한의 사회주의를 스탈린식 사회주의라 말하고 있으나 현재 북한은 구(舊)소련의 스탈린 체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인권탄압과 사회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체제와 김정일체제의 구분을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말장난에 불과하다. 과연 북한에 사회주의적 요소라는 것이 남아있기나 하는지도 의문이려니와 지금 북한에서 중요한 건 사회주의가 아니고 오직 '수령절대주의'이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북한사회의 폐쇄성도 사회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수령절대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와 수령체제를 분리해 놓고 사회주의가 사라지면 수령체제는 저절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황교수의 논리는 대단히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으며, 자신의 표현대로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남한적인' 시각이다.

황교수는 반복하여 수령체제의 극복을 '역사에 맡긴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에 맡긴다는 말은 원래 대단히 좋은 의미이지만 황교수는 이를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될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황교수가 이 글에서 쓴 대로 지금 북한은 "표현, 거주이전, 서신, 양심, 종교, 학문, 집회·결사의 자유, '알 권리' 및 평등권 등 기본권이 권위주의적 노농독재 전통과 군사주의적 요소에 의해 심히 제한되거나 사문화(死文化)되어" 있는 사회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1%도 보장되지 못한 이러한 사회를 두고 '그것은 당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배신'이다.

황교수는 "우리가 국력을 기울여 그 이상의 북한 인권문제에 개입하면 남북관계는 즉각 대결로 치닫거나 북한체제가 동요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남한의 인권간섭으로 북한이 체제개혁으로 나갈 여유가 없이 정치적 내부통제에만 치중하다가 붕괴하거나 탈북자를 대량으로 방출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할 것은 명약관화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황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왜 이것은 역사에 맡겨두지 않는가. 나아가 황교수는 "이럴 경우 그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부담은 몽땅 한국이 떠맡아야 할 것이다"라고 걱정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주장들이 '나 또는 우리나라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으면 적극 개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알아서 되도록 두고 보자'는 사고방식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극히 보수적이며 이기적인 발상이다. 기고문에서도 황교수는 "공자가 가까운 것을 먼저 챙기고 먼 것은 나중에 챙기라는 선근후원(先近後遠)의 원칙을 말했듯이 우리 남한 사람의 인권이 먼저인 것이다"라고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그렇다면 남한 사람의 인권보다 내 고장의 권리가 우선이고, 내 고장의 권리보다는 내 가족의 안녕이 우선이라는 논리도 성립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사고방식 아래 어떠한 운동이나 정치가 가능할 수 있는가.

■ 북한의 개방과 수령절대주의 해체는 선후차성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황교수의 주장을 너그럽게 해석하자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조건을 다 만들어 주고 그 다음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자는 뜻인데, 이것은 북한의 인권문제와 관련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김정일을 죽이든 살리든 수령체제를 어느 정도 유지하든 완전히 없애 버리든 그것은 북한 인민이 결정할 일이지만, 남한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은 북한 인민이 민주주의와 인권문제에 대해 자각하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북한민주화운동의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북한의 개방과 수령체제 철폐는 선후차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로 결합된 문제이며, 우리는 오히려 수령체제의 극복 없이는 북한의 개방도 요원할 것이라 본다. 황교수는 "북한의 인권문제에도 순서가 있다"면서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과 역사에 맡길 일을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가 해결되면 또 하나를 해결한다는 단계론적 발상 역시 문제가 있지만, 2천만 인민이 맞아 죽고 굶어 죽는 이유가 '수령절대주의'에 있음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는데 이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북한민주화운동은 뒤로 미루어 생각할 운동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운동"이다.

덧붙여 황태연 교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 인정을 추호라도 북한의 수령론을 수용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라면서 "남한의 포용론자들을 친북세력으로 본다면 이것도 큰 오산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황교수의 이러한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황교수는 북한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시각을 견지하여야 한다.

황교수는 전(前) 조선노동당비서 황장엽씨에 대해서 "남북이 접근할수록 황씨는 북한이 자꾸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넘어온 귀순자 황씨의 이러한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황장엽씨의 북한민주화 주장을 '북한이 다가올수록 느끼는 두려움' 정도로 폄하하는 그의 태도 역시 포용론자들을 싸잡아 친북세력으로 보는 일부 보수세력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황태연 교수가,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주장하면 남북화해의 길을 가로막는 반동세력 혹은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세력으로 덮어놓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북한 민중과 그들의 인권문제에 애정을 갖고 참여 연구하는 양심적인 학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올 것을 진심으로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