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시리즈 14: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낙서, 그 고약한 취미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더위를 피해 떠난다. 특히 가족끼리 즐겨 찾는 피서지는 계곡. 산이 많은 우리나라엔 시원한 계곡도 많다. 도시는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열기에 머리까지 다 익어버릴 지경이건만 산 속 계곡의 바람은 한기마저 느끼게 한다. 물살이 약한 계곡물 한 쪽에 수박덩이 담가 놓고 가족들과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도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계곡을 찾은 즐거운 마음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온몸을 흔들어 대며 즐기시는 바쁜 아저씨, 아줌마들? 물론 그것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럼 소나무 밑에 모포를 펴놓고 산중 도박을 즐기는 현대판 신선(神仙)들? 그것도 물론 좋지 않은 모습일 테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추태는 바로 바위에 새겨진 ‘낙서’들이다. 그 좋은 곳에 휴식을 취하러 와서 무슨 그리 땀나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지, 박○○ 이×× 하는 - 아마도 자기 이름이리라 - 문패(門牌)형 낙서에서부터, ‘정** 북한산 다녀가다’하는 기록형 낙서, 그리고 ‘선영아 사랑해’ 하는 고백형 낙서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그냥 가볍게 돌로 긁어 쓴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무척 심혈을 기울여 깊게 새긴 낙서를 보면 그저 단순한 장난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어떤 본능이 있는가 보다. 역사적으로 업적을 남긴 위인들도 그랬다. 전쟁에 이기면 전승비를 세웠고, 기념할 만한 건축이나 기념물을 남겼다. 각종 기념주화나 메달도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적인 행위를 통해 무엇을 기념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파괴하고 변형시켜 굳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것은 정말 고약한 취미가 아닐 수 없다. 혹시 독자 분들 중에 계곡 바위에 자기 이름 새기신 분들 있다면, 반성하시라.

낙서도 원칙이 있게 한다

이런 고약한 취미의 일인자(一人者)도 역시 김정일씨가 아닐까 싶다. 현재 북한의 산과 계곡 곳곳에 갖가지 글자가 양각(陽刻) 음각(陰刻)으로 새겨져 있음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구호바위, 혹은 ‘자연바위 글발’이라고 부른다. 이런 ‘자연바위 글발’이 처음 생겨난 것은 1972년 김일성의 환갑 때부터. 당시 김정일씨는 “수령님의 위대성과 불멸의 혁명업적을 널리 선전하고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라”고 지시하였고 그때부터 북한에서 경치 좋다는 곳은 모두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백두산, 금강산은 물론이고 묘향산, 칠보산, 구월산 등 가는 곳마다 보이는 김정일씨의 낙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현재 북한 전역에 새겨진 ‘자연바위 글발’은 4만 글자에 이른다고 한다.

이 글발을 새기는 데도 ‘원칙’이 있는데, ① 글의 내용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된 날짜를 밝혀 새길 것 ② 글의 내용에 맞게 글자의 크기와 필체를 선택해 대규모로 만들 것 ③ 우리 글의 붓글씨 체의 고유한 서법을 잘 살려 ‘청봉체’로서 바른 글씨체를 기본으로 할 것 ④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새길 것 ⑤ 주위의 색깔을 고려할 것 등 다섯 가지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에 의해 금강산 향로봉 암벽에 새겨진 “금강산은 조선의 명산 세계의 명산입니다. 김일성 1947년 9월 27일”이라는 자연바위 글발은 글자 하나의 크기가 높이 13m, 너비 9m, 획 너비 1.6m에 이른다. 이 중 김일성의 이름은 높이 20m, 너비 16m, 획 너비 3m로 다른 글자의 두 배 크기이다.

김정일씨의 낙서 중 북한 외부에도 알려진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보자.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1994. 7. 8" / 묘향산 유선폭포 옆 바위 / 글자 당 3.0m×2.3m, 김일성 글자는 3.2m×2.5m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1994.7.8" / 금강산 내금강 만폭구역 법귀봉 / 글자 당 8m×5m, 김일성 글자는 10m×8m
■ “조선아 자랑하자 5천년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모셨던 영광을! 1994년 7월 8일 새김" / 금강산 외금강 구룡연구역 옥류봉
■ “항일의 여장군 김정숙" / 금강산의 국지봉 / 글자당 3m×4m, 김정숙 글자는 5m×6m
■ “정일봉" / 양강도 삼지연군 장수봉 (해발 1,791m) / 60톤 화강석 6개
■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 1992. 2. 16" / 백두산 향도봉 (망천후) / 음각으로 새기면 눈이 올 때 메워진다는 김정일의 지적으로 양각함
■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 김정일" / 금강산 옥녀봉 정상 / 글자 당 8m×11m
■“금강산은 천하절승. 김정일" / 금강산 세존봉
■ “주체의 향도성 김정일" / 금강산 만수봉
■ “묘향산은 천하절승입니다. 김정일 1981. 5. 19"“조선의 영광 민족의 자랑 김정일" / 묘향산
■ “서해명승 구월산 김정일 1997년 5월 1일" / 구월산 / 글자 당 5.5m×13m
■ “김정일 장군의 노래" 全文 / 칠보산 덕골
■ “위대한 선군정치 만세. 주체 89년 12월 24일 / 금강산 / 글자 당 14m×19m, 획의 너비 2m, 깊이 1m

전혀 도움 안 되는 흉물들

일본의 한반도문제 전문 월간지 『현대코리아』 2001년 1∼2월 합본호에는 김정일씨가 조총련 부의장 서만술을 앉혀 놓고 이야기한 발언록 전문이 실렸다. 발언 내용 중 김정일씨는 “나무 심기 운동을 전 군중적으로 역량을 기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인민들에게 땔감을 공급해 주려는 깊은 마음에서 나무를 심으라고 재촉하시기도 했지만, 남한의 산은 푸른데 북한의 산은 헐벗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푸른 산’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무 심는 것도 푸르른 환경을 지키는 일임엔 틀림없지만, 진정 그렇게 환경을 생각한다면 바위에 쓸데없는 낙서나 하지 않는 게 더 빠른 환경보호가 될 것 같다.

최근 한 신문에는 ‘병사의 신념’이라는 북한 그림 한 폭을 소개했다. 화려한 빛깔의 이 그림은 인민군 장병들이 김일성 김정일에게 선물한 작품을 전시해 놓는 인민무력부 선물관에 있는 그림이라 한다. ‘참 빛깔이 곱군’하고 지나칠 법한 그림이지만,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가를 알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바로 나비로 만든 것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450만 마리란다. 갖가지 날개 색깔을 가진 나비 450만 마리를 꽂아서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나비들을 잡으려고 얼마나 많은 이십대 떠꺼머리 총각들이 들판과 숲 속을 누볐을까 …. ‘자연바위 글발’을 새기는 것도 그렇다. 안전장구 하나 없이 오로지 밧줄 하나에만 의지해 맨몸으로 절벽에 매달린 채 깨고 쪼고 두드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10m가 넘는 글자가 대체 어느 정도일까 하고 머릿속에 떠올려 보는 우리의 상상력이 부끄러워진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숱한 인민과 노예를 부려 만든, 어떻게 보면 ‘착취의 산물’이지만 지금은 그래도 관광상품이 되어 그 땅의 후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에 비해 ‘노동당 시대 역사적 기념물’이라고 자랑하는 ‘자연바위 글발’은 아무리 생각해도 관광적 가치라곤 찾아 볼 수 없다. 자꾸 만들어 봤자 후세에 도움이 안 되는 흉물인 것이다. 김정일씨는 ‘인민들이 써서 바치는데 어쩌란 말인가’하고 변명할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자연파괴를 막지 못하는 것도 지도자의 책임 중 하나임을 알아두기 바란다.

하여튼 어쩐단 말인가. 초등학교 시절, 화장실에 낙서하다 걸리면 벽에 있는 것을 다 지우고 화장실 청소하는 벌로 대신했는데, 김정일씨에게 바위에 새긴 그 글자들을 다 지우고 금강산 청소하라고 시킬 수도 없고…. 4만 자를 하루에 한자씩만 지워도 100년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