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러한 시대흐름과는 달리 1960년 이후 지속적으로 권한이 강화되어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절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겉으로는 사회주의국가를 표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령절대주의국가라 불리는 절대군주제이다.

우선, 헌법 위에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있어 법 위에 수령이 존재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당을 수령이 장악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인민경제를 능가하는 수령경제를 소유하고 있으며, 군사적으로 수령이 군의 최고지휘권을 쥐고 있으며, 문화적으로 수령절대주의사상 외에는 국민들이 다른 사상을 가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권한이 세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사회를 지향한 북한이 애초부터 절대왕조를 수립했던 것은 아니다. 북한의 절대왕조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1967년 당내 마지막 비판세력인 갑산파를 완전히 제거하고, 특히 김정일이 권력장악 과정에서 삼촌 김영주와 김일성에 대한 충성경쟁을 벌이면서부터이다.

김정일은 이 과정에서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1974년 4월에 공식화하였고, 김일성 일가족(김일성, 어머니 김정숙, 할아버지 김형직, 할머니 강반석, 고조할아버지 김응우, 고조할머니 김보현, 삼촌 김철주 등 이른바 로열패밀리) 전체를 우상화하게 된다. 더불어 사회주의적 색채가 남아 있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전 분야를 수령절대주의체제에 맞게 개편하게 된다.

이때 김일성의 가족이 사실상 북한에 1대 왕족(로열패밀리)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 그리고 전처인 김정숙의 자식인 김정일과 김경희, 당시의 부인인 김성애와 자식들인 김영일, 김평일, 김경진,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신분은 일반주민들은 물론이고 북한의 10%에 해당되는 특권층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골 중의 성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에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김정일은 자신의 가계 중 김일성(부), 김정숙(모), 김경희(여동생) 가족은 ‘원가지’로, 김성애(김주석의 후처)와 그녀의 자식인 이복형제 김경진, 김평일 가족은 ‘곁가지’로 구분하여 철저히 차별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대로 접어들던 김정일 후계체제확립시기에 김주석의 후처 김성애와 이복동생 김평일이 속한 곁가지는 김정일에 의해 의도적으로 견제되었고 권력이나 특권의 중심으로 멀어진 무늬만의 로열패밀리로 전락했다고 한다. 이복동생인 김평일은 80년대 중반이후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에 이어 현재 폴란드 대사로 해외를 전전하고 있고, 김영일 또한 독일과 몰타 등 유랑생활을 하다 결국 외국에서 죽고 만다. 더불어 김평일이 다녔던 평양남산중학교가 1984년에 없어진 이유도 김평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물론 그의 동기들이나 가까운 친구들도 박해의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1대 로열패밀리가 김일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지금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동생 김경희, 매제 장성택, 김정일의 전처와 현처, 그리고 이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 2대 로열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김정남은 얼마 전 일본 밀입국 사건으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하여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김정남은 그 동안에도 김정일에 이은 후계자로 세간의 주목을 끌어왔고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김정남 후계구축작업이 종종 포착되어 왔던 터라 더욱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현재 김정남은 국가보위부에서 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국가보위부가 관할하고 있는 조선컴퓨터센터 위원장을 맡고 있다. 참고로 김정남의 대장 계급은 그의 24회 생일인 1995년 5월 10일에 계급장과 군복을 김정일이 생일을 맞아 주었다고 한다. 생일선물로 말이다. 물론 김정남은 군복무를 한 적이 없다.

어렵기만 한 나라살림에도 불구하고 김정남과 그의 아내 신정희 일행은 최고급 브랜드의 가방과 롤렉스시계, 보석반지 등 초호화 패션을 선보였고 이들의 가방엔 100달러 짜리 지폐가 가득 들어있어 북한 로열패밀리의 생활상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는 북한 사회 자체의 폐쇄성보다도 더욱 베일에 쌓여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남한이나 국제사회보다 북한 주민들은 더욱더 로열패밀리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가 없다. 물론 이번 김정남 밀입국 사건 또한 북한 주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 즉, 북한 주민들은 로열패밀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크나큰 죄악으로 되기 때문에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김정남의 존재자체도 도덕적 이유로 인하여 일반 북한 주민들은 알기 힘들다고 한다. 물론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소문처럼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말이다.

북한 로열패밀리에 대한 진상은 이번과 같은 엉뚱한 사건이 아니면 알기 힘들지만 김정남과 어린 시절을 같이 지냈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씨가 남한으로 망명하면서 그 실태가 폭로되기도 한다. 이한영은 『대동강 로열패밀리의 서울잠행 14년』(동아일보사)이란 책을 통해 김정남의 어린 시절을 기술하였는데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계기가 됐다.

이른바 고난의 강행군 시기를 거쳐 서방세계의 지원으로 겨우 위기를 면한 김정일 왕조에게 의외의 복병(伏兵)이 있다면 로열패밀리 문제일 수도 있다. 현재 김정일의 다음 후계구도는 김정남과 현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부인 고영희와의 권력다툼을 거쳐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각의 분석이다. 수령절대주의사회인 북한은 민주주의사회에서 민의를 얻기 위해 벌이는 권력다툼보다는 절대왕조시대의 궁중권력다툼의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속성상 이들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김정일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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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현재 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유럽에서는 영국·네덜란드 등 10개국,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 등 3개국, 중동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 아시아에서는 일본·타이 등 5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