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은 엄연히 '정치적 난민'입니다.

며칠동안 세계의 이목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유엔고등판무관실로 향해 있었습니다. 장길수군을 포함한 북한 주민 7명이 한국으로의 망명을 희망하며 '난민(難民·Refugee)'지위 인정을 호소하였기 때문입니다. 국제법상 난민이라 함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등으로 인해 핍박을 두려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본국 밖에서 거주하면서, 이 공포로 인해 본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를 일컫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정부는 중국에 유랑하는 수만에서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탈북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그들을 체포, 북한으로 강제송환해 왔습니다. 중국정부가 그동안 탈북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표면상의 이유는 정치적 이유의 탈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탈북인들이 정치적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로 북한을 탈출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돌아간 후의 가혹한 처벌이 두려워서'입니다. 탈북인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래서 이들은 엄연히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중국정부는 길수가족을 제3국으로 추방하는 형식의 외교적 편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나마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나 이것이 근본적 치유책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탈북인 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폭압체제'에 있습니다.

경제적 이유로 탈출했다가 정치적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는 탈북인 문제의 복잡한 양상은,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체제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야만적인 폭압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끔직한 학살과 탄압, 기아가 거듭되는데도어떻게 북한사회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독일 분단시 동독에는 1,600만 주민 가운데 무려 24만 명이 슈타지(비밀경찰)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는 이보다 몇 곱절 삼엄한 감시와 억압, 고발의 사슬이 얽혀 있습니다.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는 주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며 외부의 모든 소식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습니다. 주민들끼리도 서로 고발하여야 자신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10여개로 파악되는 정치범수용소에는 약20여만명의 북한주민들이 수감되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고립무원의 '섬'이었습니다. 이렇게 개인이 정치적 신념을 갖고 이를 표출할 자유가 전혀 없으니, 정치적인 목적으로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인이란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으로 돌려보내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죽음'입니다..

지난 99년 러시아 정부는 중-러 국경을 넘던 탈북인 7명을 중국으로 추방하였고, 중국으로 추방된 이들은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이들중 한 명인 박충일(23세)씨가 사선을 뚫고 다시 북한을 탈출하여 공개한 최근의 증언들은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인들이 어떠한 운명을 맞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으로 끌려간 그는 보위부의 지하감옥에 갇혀 갖은 고문과 구타를 당했습니다. 북한으로 끌려갈 당시 48㎏이던 이 20대 청년의 몸무게는 26㎏로 줄었습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화형을 당하는 장면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지원된 물자들이 북한주민들에게 전혀 배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번에 UNHCR로 달려간 길수군이 그림을 통해 증언한 사실이기도 하며, 북한을 탈출한 모든 탈북인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북한으로 돌아가느니 자살하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외에도 숱하게 많은 탈북인들의 증언과 회고, 그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현장을 이 지면을 통해 모두 보여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며, 이러한 비극이 얼마나 더 반복되어야 이 처절한 역사가 끝날지 울분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모든 탈북인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지금 중국에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탈북인들이체포와 송환의 불안에 떨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을 버티어 내고 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그리고 최근에는 동남아에까지 걸어가는 탈북인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합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으로 올 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희망하는 곳으로 보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차제에 대한민국 정부가 탈북인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의 삶을 책임질 제도적 장치를 갖출 것을 요구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진정으로 통일을 생각하고 이를 준비하려 한다면 탈북인들을 '부담'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통일시대의 '미래국민'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더욱 큰 동포애로 이들을 끌어안고 따뜻한 애정으로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긴·급·호·소

우리는 중국당국에 호소합니다. 제 2, 제 3의 길수가족은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재중 탈북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입니다. 중국당국은 이들 모두를 가고 싶어하는 나라로 보내줄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UN과 국제사회에 부탁합니다. 세계 각국의 지원으로 수많은 물자들이 북한으로 가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북한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못합니다. UN과 국제사회는 지원물자의 투명한 배분까지 확인하여 인도적 책임을 다할 것을 부탁합니다.

우리는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나찌의 유태인 학살보다 잔혹한 인간 대학살이 지금 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북한에서 수 십 년간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북한의 실상에 눈과 귀를 열고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 한 목소리를 내어 줄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에 촉구합니다. 한해에도 수 백 명의 탈북인들이 목숨을 걸고 제3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부담스러워 하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모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이들의 한국정착과 생활을 보장할 물적·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탈북인들은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이들의 자유를 보장할 준비마저 되어있지 못하다면 통일은 한낱 허구적인 낭만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민 여러분께서 탈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따뜻하게 껴안아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북한 정부에 강력히, 강력히 주장합니다. 국제사회는 이제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모든 인권유린 사실을 부인해 왔으며 국제사회의 의문에 불성실하게 대답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습니다.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십시오. 국가안전보위부 등 폭압기구를 해체하십시오. 거주이전의 자유를 인정하십시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십시오. 북한주민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십시오.
또한 우리는 당면하여 북한당국이 그곳으로 끌려간 길수의 가족 중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2명의 생사를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하며, 이들 역시 자유의사에 따라 원하는 곳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 왔으며 불의는 반드시 파멸하고 만다'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독재정권이 파멸하는 날, 그날은 인류역사상 가장 길고 잔혹한 독재정권이 무너진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세계 진보적 양심들의 지지와 참여를 기대합니다.

2001년 6월 29일 대한민국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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