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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그래도 편지이기에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서 될 수 있으면 상스러운 욕설은 삼갈까 합니다. 어제는 나도 당신 부자(父子)가 세운 괴이쩍은 나라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백성이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자유, 민주의 땅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 된 탈북자이구요. 아직까지도 나의 뇌리엔 탈북 전의 그 숨막히는 나날들이 떠올려지군 하네요.

당신이 세운 나라의 학교들에서는 “김일성 대원수님이 세우시고 김정일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라고 가르쳐 줍니다. 나 역시 그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한동안은 속은 것이 사실이었답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도 걸리지 않았네요. 땅을 하늘이라 우기는 당신들의 거짓말이 대명천지에 어찌 통하겠나요.

아직도 당신 주위의 아첨군들은 당신을 “우리의 운명을 책임져 줄 21세기의 향도성”이라고 낯간지러운 소릴 질러대고 있겠지요? 나의 경우엔 당신들의 그 거짓말을 쓰겁지만 알아버린 후론 꿈속에서도 ‘당신들 부자(父子)가 이 나라에 없었다면…’ 하고 바라게 되더군요.

1956년에 ‘8월 종파’로 몰려 떨어져 나간 최창익, 박창옥 등이 김일성이를 밀어내고 정권을 잡았었다면, 또는 1960년대 김창봉의 군부가 그들의 뜻대로 정권을 잡았었다면 하고도 바래보았습니다. 물론 그들도 당신 부자와 다름없는 공산주의자들이겠지만 오늘날 북한의 현실처럼 세인들에게서 ‘굶주림의 왕국’, ‘방랑자의 왕국’, ‘인권탄압의 전시장’으로 비난받는 민족사의 가장 수치스러운 기록들은 세우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이죠.

당신들 부자가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은 용서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독재자 김일성의 아들이고 봉건왕의 아들인양 정권을 세습 받은 것까지도 어쩌면 용서하고 싶습니다. 허나 전쟁도 아닌 평화시기에 3백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북한 사람들을 굶주려 죽게 한 만고의 대죄만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당신도 목숨이 귀중하겠죠? 당신도 가족이 소중하겠죠? 일반 북한사람들도 당신 부자와 다름없는 인간이라오! 당신이 깍쟁이 조물주가 자신들에게 생을 한번밖에 주지 않은 것을 아쉽게 여기며 <만수무강 연구소>까지 차려놓고 별의별 희귀 약재를 입으로 냉큼 냉큼 먹고 있을 때 북한의 어린이들은 그 작은창자를 채울 밥 한술이 없어 굶주려 쓰러지고 있다오! 당신이 죽은 아버지의 시체 보관에 천문학적인 외화를 퍼붓고 북한 각지에 초호화 별장을 짓고 있을 때 북한 인민들은 살아 남기 위해 낯설고 물설은 타국을 정처없이 헤메이고 있다오!

당신들 부자가 세운 나라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맞습니까? 민주주의라…. 세 살 난 애들도 웃을 일이네요. 사회주의 국가는 맞습니까? 어림도 없는 말이지요. 봉건국가라도 됩니까? 내 생각엔 봉건국가도 못되는 것 같구려. ‘이조실록’을 조금만 읽어 봐도 그 시절의 백성들도 오늘날 북한 인민들 같이 무권리와 굶주림에 시달리지는 않은 듯 싶소.

로마의 독재자 네로도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도 루마니아의 독재자 챠우쉐스코도 당신들 부자에 비하면 어진 사람처럼 보이는건 왜서 일까요? 그건 당신 부자의 반세기가 넘는 독재통치 기간에 저지른 반인륜적 죄행들을 떠올려 보시구려.

당신은 김일성 대학을 방문하였을 때 관계자들에게 “나는 경제를 모른다. 경제 책임은 나에게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는가요? 그렇다면 당신이 주체사상탑, 개선문, 왕재산사적지 같은 개인우상화 선전물을 세우는데 인민의 피땀인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은 것은 어떻게 변명하겠나요. 거대한 중앙당 경제를 운영하며 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북한 경제를 난탕친 범죄자가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그런 대로 천치는 면한 당신이 정말 모른단 말인가요? 한반도 전 국민을 전쟁볼모로 삼으며 같은 동포인 남한을 반대하는 무력 증강에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붙도록 한 것이 당신이 정녕 아니었단 말인가요?

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제일로 하기 싫은 학습은 당신 부자가 창시했다는 ‘주체사상’이였구려. 그러나 그 사회에서 숨쉬고 살아가자면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하자”고 떠드는 당신과 나발꾼들 때문에 그런 대로 조금은 알게 되었네요.

주체사상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죠. 그렇다면 주체사상의 수령관에서 말하는 ‘수령은 혁명의 뇌수’란 말은 또 뭔 말인가요? 결국 인민대중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커녕 뇌수의 지령만을 받고 움직이는 부차적인 세포 같은 것이 된다는 뜻이 아닌가요?

우습군요. 그토록 영생불멸이라고 떠드는 ‘주체사상’이 실천에는 고사하고 이론 그 자체로서도 커다란 모순덩어리인 사이비 사상이라는 것이. 그나마 황장엽 선생님의 두뇌를 빌린 것이었다면서요? 이번엔 ‘황당’ 그 자체이군요

김정일, 당신을 바보라고 몰아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이 북한에서의 개혁, 개방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개혁, 개방을 하기에는 북조선은 종심이 짧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네요. 결국 북한 인민은 죽던지 말던지 정권의 안정과 영구화가 제일로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나요. 물론 탈북자들은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정일 당신이 살아있는 한 ‘북한변화의 한계’라는 것을.

영화광인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지도(?)했다는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정치란 시대의 산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가도 사라지지만 조국과 민족은 영원하다.” 그 대사를 들으며 당신의 내일의 모습을 점쳐 보았습니다. 조국과 민족 위에 자신들을 올려놓고 ‘자신들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는 당신들의 운명도 결국 역사의 서켠으로 구린내를 풍기며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변함없는 역사의 진리를 한가지만 더 얘기할게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부패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도되고야 만다.”

당신을 향해 준엄한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