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첩경은 북한 인민들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필자는 2001년 3월 청진에서 막 탈북한 청년을 만나 북한 사회의 일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청년과 나눈 대화는 북한의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을 북한 인민의 현실이라고 일반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지역의 실정도 아울러 파악해야 좀 더 객관적인 북한의 현실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러던 차에 다행히 2001년 7월 초 각각 함흥, 무산 출신의 탈북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6월 중순경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친구였기 때문에 함께 만나 북한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1년 3월에 만난 청진 청년의 이야기와 이번에 만난 탈북자의 이야기는 큰 맥락에서는 동일했지만 그 4개월이라는 시차 때문에 중요한 차이도 적지 않았다. 북한이란 사회는 그 만큼 빨리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본인이 4월호에 기고한 <2001년 3월 청진 인민의 생활>과 비교해서 본다면 북한의 현실이 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 식량난 악화

북한의 식량 문제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북한 사회의 폐쇄성으로 인해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래서 필자는 탈북자를 만날 때마다 으레 식량 문제에 대해 먼저 물어보게 된다. 북한의 식량 문제는 장마당 식량 가격에 바로바로 반영이 되기 때문에 필자의 첫 질문은 북한의 쌀값을 묻는 것으로 되었다.

“요즘 쌀값이 많이 올랐습니까?”

- 예, 그 전에 비해서 많이 올랐습니다. 함흥에는 작년 10월 경 1kg에 35원 하던 것이 이번 6월에는 55원까지 올랐습니다.

참고로 2001년 6월 현재 중국 돈 1원은 약 북한 돈 20-22원, 미국 돈 1달러는 210-240원 정도 한다고 한다. 올 봄에 중국 돈은 27원, 달러는 240원 까지 올랐지만 6월경에는 각각 20원, 210원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북한의 공식 환율이 아닌 실질 환율 즉 암시장 환율은 변화가 심하다. 하지만 중국 돈은 20원 이상, 달러는 200원 이상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비해 북한 돈의 공식 달러 환율은 약 1:2 정도이다. 즉 1달러가 북한 돈 2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질 환율과 공식 환율이 약 100배 정도 차이가 난다. 보통 북한의 통계치들은 공식 환율로 계산하여 발표된다. 따라서 북한의 실질 경제 수준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그 통계치들을 100으로 나누어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지방의 쌀값은 좀 아십니까?”

- 예, 제가 장사를 위해 많은 지방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좀 아는 편입니다.

“청진이나 다른 지역의 쌀값은 어떻습니까?”

- 청진은 6월 쌀값이 1kg에 60원 정도 했습니다. 회령은 70원 정도입니다.

필자는 2001년 3월 청진 청년과의 대화에서 당시 청진의 쌀값은 1kg에 평균 45원 정도 한다고 들었다. 그에 비해 6월에는 15원 정도가 상승한 것이다. 이를 보면 북한 전역에 걸쳐 쌀값이 오른 것이 틀림없다. 또 이 6월의 쌀값에는 올해의 가뭄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올 가뭄의 영향이 반영되는 내년 쌀값은 계속 상승 추세일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쌀값은 두만강 변경 지역보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쌉니까?”

- 예, 변경 지역은 산악 지대라 쌀 농사가 잘 안됩니다. 주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쌀을 수입해서 먹기 때문에 조금 더 비싼 편입니다.

“수입 쌀과 북한 쌀의 질은 어떻습니까?”

- 외국에서 들어온 쌀의 질이 일반적으로 좋습니다. 유엔에서 들어온 쌀은 확실히 질이 좋구요. 하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쌀은 좋은 쌀도 있고 나쁜 쌀도 있습니다. 물론 질에 따라 가격은 차이가 납니다.

■ 강택민은 경리과장

“쌀 이외에 중국 물건이 많이 들어와 있지요?”

- 예, 아마 농산물, 공산물 통틀어 중국 물건들이 제일 많이 들어와 있을 겁니다. 오죽하면 강택민을 두고 경리과장이라고 부르겠습니까.

“강택민을 경리과장이라고 부른단 말입니까?”

- 예, 사실상 북한에서 쓰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중국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 어떤 이가 신발을 파는 아줌마에게서 신발 한 켤레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신발이 얼마 신지도 않아 헤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 신발 장수 아줌마에게 항의하러 갔습니다. 가서 장사꾼 아줌마에게 따지고 대어들자 그 장사꾼 아줌마는 그건 나한테 물어볼 것이 아니라 강택민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대꾸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중국 물건이 많음을 빗댄 내용이지요.

■ 소고기와 개고기는 없어. 하지만 개풍은 불어

“고기 값은 어떻습니까?”

- 함흥은 바다 바로 옆이기 때문에 물고기 값이 상대적으로 쌉니다. 명태 한 마리에 50원(작년 : 20-30원), 이면수는 50-60원 정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값이면 쌀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물고기를 사먹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육고기 값은 어느 정도입니까?”

- 돼지고기는 1kg인지는 모르겠지만 100-150원 정도 하고 닭고기는 한 마리 350원, 염소 1마리 700-800원 정도 합니다. 그런데 고기를 먹는 집은 주로 염소 고기를 먹습니다. 여러 집이 돈을 함께 모아 염소 한 마리 사서 나눠 먹는 형식입니다.

“소고기는 없습니까?”

- 소고기는 구경해본 적 없습니다.

“북한에는 옛적부터 단고기라 하여 개고기가 유명했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 지금은 동네에 개가 없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다 잡아먹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몇몇 있는 개들도 먹을 것이 없어 쥐약 먹은 쥐를 먹고 다 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개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먹을 수 있는 개는 몰라도 애완용 개는 많이 기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 맞습니다. 문화 수준을 올린다고 하여 돈이 있는 집에서는 외국 영화에 많이 나오는 애완용 개들을 키우는 집들이 많아졌습니다. 평양에서는 개풍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애완용 개 키우는 집들이 많아진 것이죠. 비싼 개는 70달러(북한 돈 14,000원 이상)이상 한다고 합니다.

“북한에도 빈부격차가 아주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 예,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제 느낌으로는 북한 주민의 20% 정도는 중국 북방 지역의 중산층보다도 생활 수준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 20% 정도는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나머지 40-50%는 하루 벌어 하루 삽니다. 구체적 예를 들면 나무를 팔아서 하루벌이를 하는 집들은 아침 일찍 나무를 하러 70리 되는 거리를 걸어갔다가 나무를 하면 날이 저무니 산에서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나무를 이고 와서 팝니다. 그렇게 삽니다. 그 나머지는 풀과 옥수수가 섞인 풀죽을 먹으면서 간신히 목숨만 연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만성 영양 실조의 상태에 있습니다.

북한의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지난 번 청진 청년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진에서도 6-7% 이상이 북한 돈 100만원(5000달러 정도)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못사는 사람들은 집에 쌀 한 움큼도 없고 하루살이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약 50% 정도는 된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청진 청년의 진술이나 함흥 청년의 진술은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북한의 이러한 빈부격차가 갈수록 강화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중적 경제 구조와 권력를 가진 소수가 그 권력을 이용하여 축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배급은 평양, 군대, 군수 공장에만

“쌀값이 올랐으면 식량 사정이 어려워졌을 텐데 배급 상황은 어떻습니까?”

- 배급은 평양에는 1인 500g기준으로 한 달에 15-20일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1인 기준 700g 이었는데 배급량이 줄어든 것입니다. 또 자강도에는 군수산업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배급이 나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은 어떻습니까?”

- 군대는 당연히 배급을 주구요. 그 외에는 군수공장만 배급을 줍니다.

“군수공장 이외에는 배급이 전혀 없습니까?”

- 군수공장 이외에는 가동되는 공장이 없기 때문에 배급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군수공장 직원들은 월급은 따로 받습니까?”

- 월급은 없습니다. 그저 배급만 있습니다. 월급이 있다고 해도 북한 돈으로 100원 안팎입니다. 이 돈으로는 쌀 1-2kg 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인민들 중 군수공장에 취직해 있는 사람의 비율은 어느 정도 됩니까?”

- 비율이라고 할 정도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저 느낌에는 100명 중 4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100명 중 4명 정도만 배급이 나오고 그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군요.”

- 예.

■ 꽃제비 대폭 증가

“배급도 없고 쌀값도 올랐으면 다시 식량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예, 그렇습니다. 그 전에 별로 없던 꽃제비들이 요즘은 장마당에 다시 득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꽃제비들이 다시 득실거리기 시작한다는 소식은 3월 청진 청년과의 대화에서는 없는 내용이었다. 당시 증언은 꽃제비들은 고아원에서 관리하는 데 옷은 제대로 못 빨아주더라도 먹을 것은 해결해 준다는 것이었다.

“꽃제비들은 그 전에 고아원으로 다 모으지 않았던가요?”

- 예, 그랬었죠.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것은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부가 군수기업으로 식량을 돌리는 바람에 고아원에 배급이 작게 나가게 된 것입니다. 꽃제비들은 눈치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금방 고아원의 사정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고아원을 나와 장마당을 떠도는 것입니다.

“그럼 장마당에 꽃제비들이 몇 명 정도씩 있습니까?”

- 그 전에는 10명도 안되었는데 최근에는 100명도 넘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장마당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른 데 제가 본 데는 평균 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대화 중에 줄곧 왜 쌀값이 올랐을까하는 의문이 지속되었었다. 물론 올해 사상 최악의 가뭄이 북한에 왔다고는 하지만 이 가뭄의 영향은 내년, 빨라도 올 해 말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번 6월의 식량 사정하고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왜 이처럼 식량 사정이 어려워졌는가하고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 가동되는 것은 군수 공장뿐

“왜 이렇게 식량 사정이 어려워졌습니까?”

- 제 생각에는 군수 공업으로 들어가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예, 김정일이 늘 강조하는 것이 ‘총대 사상’아닙니까? 항일해방전쟁에서도, 조국해방전쟁에서도 뛰어난 영도자와 군대는 있었는데 총대가 약해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항상 주장합니다.

“예,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올해 들어서 김정일은 군대 관련한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함흥에도 모방직 공장이 있는데 이 공장이 고난의 행군 이후 가동되지 않다가 올 해 군수공업으로 편입된 이후 다시 가동되고 있습니다.

“그럼 원래는 군수공업에 속하지 않았습니까?”

- 예, 함흥 모방직 공장은 원래 일반사회 공장이었는데 군복이나 군 담요를 생산하는 군수 공장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그 뒤 다시 가동되고 있습니다.

“함흥 모방직 공장은 규모가 어느 정도입니까?”

- 굉장히 큽니다. 방직 공장 둘레를 하루 종일 돌아도 다 못 돌 정도로 큽니다.

“ 그러니까 그런 군수 관련 산업에 배급을 집중하다보니까 고아원이나 일반 백성들에게는 배급을 못 주고 그래서 식량 사정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것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함흥 모방직 공장이외에 가동되는 공장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 흥남 비료 공장이 돌아갑니다. 이 공장은 포약의 원료인 질안 비료를 생산하는 곳입니다. 또 청진의 김책 제철소가 돌아갑니다. 철이 없으면 무기를 못 만들지 않습니까? 김정일이 김책 제철소를 가동시키려고 올 해 두 번이나 왔다갔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필자도 한국 언론에서 김정일이 청진을 방문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김정일이 청진을 방문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김책 제철소 재가동이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 이외에는 없습니까?”

- 있습니다. 최근에 무산 광산이 1달분 계획을 달성했다고 대대적인 선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1년분이 아니라 1달분만 달성해도 엄청난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도로는 안 닦아도 군수도로를 새로 닦고 수리하는 작업은 여전합니다.

“군수 공장이외에 일반 공장은 전혀 가동이 안됩니까?”

- 예, 가령 함흥의 다른 큰 공장으로는 빵 공장과 2.8 비날론 공장이 있는 데 모두 가동이 안됩니다.

■ 제대한 사람, 연령 미만의 아이들도 군대 동원

“김정일이 총대 사상을 더욱 강조한다고 하셨는데 다른 변화는 없습니까?”

- 있습니다. 최근에 군대 징집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18세가 되어야 징집을 하고 또 제대를 한 사람들은 재징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18세 미만의 아이들도 징집을 하고 제대를 하여 집에 있는 사람들도 재징집을 합니다. 현역 대학생들도 과거와 달리 징집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북한의 군복무 기간이 18세에서 30세까지로 총 13년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18세 미만의 아이들, 제대 군인들까지 다시 징집한다는 것은 그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이는 김정일이 선군 정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군 징집을 많이 하면 북한의 군대는 도대체 몇 명이나 됩니까?”

- 글쎄요. 변방 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 돌아다니는 사람 중에 한 30%는 군인인 것 같습니다.

“김정일이 군대 징집하는 것에 대해서 인민들의 불만은 없습니까?”

- 있습니다. 특히 힘있는 간부 자식들은 군에 가더라도 편안한 보직으로 빠지거나 또는 군을 면제받고 대학으로 갑니다. 이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지금은 남북 대화가 사실상 중단되어 있지만 그래도 남한에서는 여전히 화해와 평화 무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정반대인 듯하다. 점점 더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을 준비하자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2000년 10-12월 한때 장마당 모두 금지시켜

“최근의 장마당 사정은 어떻습니까?”

- 작년 10-12월 경 잠시 배급을 재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제 고난의 행군을 끝나고 사회주의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여 장마당을 금지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인민들의 불만이 상당히 고조되었었죠.

“그래서 장마당이 완전히 금지되었습니까?”

- 물론 그건 아닙니다. 지금 장마당의 추세는 금지할래야 할 수 없기 때문에 단속만 심해진 것이죠.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재배급은 다시 중단되었기 때문에 장마당을 불가피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장마당이 과거처럼 여전히 자유스럽습니까?”

- 그건 아닙니다. 규정상으로는 장마당에서 농산물 판매는 인정하되 공산품은 금지한다고 했습니다. 또 농산물도 가령 쌀은 1인당 50kg 이하만 판매 허용한다며 판매량에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럼 장사꾼들은 그 규정에 따르나요?”

-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다 몰래 몰래 하죠. 단속이 심하면 손님을 장마당에서 만나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거래를 합니다. 물론 안전부의 단속을 비껴가기 위해 가격을 치른다고 말하지 않고 사례금을 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건네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안전부 아이들은 뇌물을 바라고 자꾸 단속을 하기 때문에 뇌물을 주어 무마합니다.

실질적으로 장마당이 운영되는 양태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함흥은 청진보다도 장마당에 대한 단속이 심한 듯 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법과 현실이 따로 놀기 때문에 뇌물을 고이는 현상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 전기 다시 안 들어와

다음은 에너지, 특히 전기 사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3월에 만난 청진 청년은 전기 사정에 그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첫마디는 전기 사정이 좋아졌냐는 말로 말문을 텄다.

“최근 북한에 전기 사정은 좀 좋아졌다고 하던데요?”

-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제가 올 3월달에 듣기로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시간보다 들어오는 시간이 많다고 하던데요.”

- 그건 그 때 잠깐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올 2월경입니다. 김정일이 군수 공장에 쓸 전기도 모자라니 가정집에는 전기를 주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는 전기가 없어 다시 깜깜해졌습니다.

이건 또 새로운 증언이었다. 분명 2001년 3월 전에는 전기가 들어온 시기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직후 또 전기를 끊은 것이다. 몇 달 정도 전기가 공급되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처럼 전기가 다시 공급되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식량문제와 마찬가지로 전기를 군수공장에 집중해서 쓰기 때문이었다.

“그럼 전기를 쓰는 가정집은 전혀 없습니까?”

-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기를 쓰는 집은 전기 배급을 담당하는 배전부에 뇌물을 고이고 씁니다. 그러니까 돈 많은 사람만 전기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동네에는 동네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서 배전부에 돈을 고이고 전기를 빼서 씁니다.

“배전부 사람들의 전횡은 대단하겠습니다.”

- 예, 그들의 부정축재와 전횡은 대단합니다. 돈을 줘도 마음 내키는 데로 전기를 줬다가 주지 않았다가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김정일 수령의 교시를 어기고 전기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변명은 있습니다. 전기를 불법으로 쓰고 있지 않나 검열하러 자주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전기 쓰는 것이 발각되기도 합니까?

- 발각되는 걸 피하기 위해 밤에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합니다. 등화관제 하듯이 완전히 창문을 가립니다.

“북한의 에너지 사정이 이렇게 안 좋으면 겨울에 얼어죽는 사람은 없습니까?”

- 그런 염려는 없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전쟁을 대비한 방공호가 많이 있습니다. 집없는 사람도 거기서 자면 얼어죽지는 않습니다. 대신 방공호에는 습기가 많아 병이 잘 생깁니다.

“북한에는 약품이 무척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 예, 약품 부족 현상은 무척 심각합니다. 최근에 굶어죽는 사람은 없어도 병들어 죽는 사람은 엄청납니다. 병원에 가보니 병원들은 환자들로 꽉꽉 차 있었습니다. 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병원에 있어도 약은 자기가 직접 구해와야 합니다. 돈이 있어도 약이 없어서 못 삽니다. 그나마 있는 약품은 유엔을 통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약이 그렇게 부족하면 가짜 약을 파는 사람들도 많겠습니다.”

- 예, 약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짜 약도 많이 나돌고 있습니다. 집안 스피커 방송인 제3방송에서도 페니실린에 녹말을 섞어서 팔고 있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 상태가 심각합니다.

■ 에미네는 빌려줘도 자전거는 못 빌려줘

다음은 교통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청진에는 자전거가 아주 많다고 들었습니다. 함흥에는 어떻습니까?”

- 함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자전거는 필수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미네는 빌려줘도 자전거는 못 빌려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전거 도둑도 많겠습니다.”

- 그럼요. 자전거 도둑이 얼마나 많은지 자전거를 훔치면 도색해서 다시 팝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자전거를 아예 방안에 들여놓습니다.

“대중교통은 없습니까?”

- 그 전에는 없었는데 요즘은 조금씩 움직입니다. 청진에 가보니 무궤도차와 통근차가 시내에서 움직였습니다. 과거에 비해서 확실히 나아진 것이죠.

“차에는 사람들이 꽉 차겠습니다.”

- 다들 장사해서 살아가니 교통 수단이 제일 중요하지요. 어디 꽉 차다 뿐이겠습니까? 넘쳐서 폭발할 지경입니다. 가령 중국에서 4명이 타는 택시는 북한에서 7,8명이 탄다고 보면 됩니다. 모든 차가 항상 꽉 차 있고, 지붕에도 타고 하니까요.

“기름값은 얼마 합니까?”

- 1리터에 디젤유 50원, 휘발유 100원, 윤활유 100원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차비는 어떻게 받습니까?”

- 차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만 큰 차(꽉 찼을 때 80명 정도 되는)는 100리 가는 데 1인당 100원씩 받습니다.

“정거장은 따로 있습니까?”

- 함흥에는 정거장은 따로 없고 아무데서나 차 지나가는 걸 기다려 탑니다. 잘 안태워주니까 돈을 꺼내 흔들어 차를 세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탈북자의 말로는 큰 차가 100리 왕복하는 데 디젤유가 20-30리터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1인당 80명을 태우고 왕복을 하면 상당한 돈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차들은 다 무허가 차들이죠?”

- 그렇습니다. 그래서 안전부에 뇌물을 정기적으로 상납해야 합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많습니까?”

- 그 전에 비해서는 많이 늘었습니다만 중국에 비교한다면 1/10 정도 될까요.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어디서 들어옵니까?”

- 흥남항을 통해 일본에서 들어옵니다.

“항구는 아주 좋은 직장이라고 들었습니다만?”

- 그렇습니다. 항구 노동자는 간부집 자식도 들어가기 힘듭니다.

■ 이산가족 상봉이후 한국 상품 해금

지난 번 청진 청년과의 대화에서는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 가족 상봉 이후 어떤 특이한 변화가 있다는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함흥은 청진보다도 남쪽이고 이 청년은 평양도 최근에 몇 번 다녀왔다고 하여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인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인민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까?”

- 일반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할 뿐입니다.

“이산가족들이 서로 상봉한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까?”

- 예, 그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이후 북한에서 달라진 것은 없습니까?”

-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한 물품들을 팔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거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남한 상품이 중국 상품보다 훨씬 질이 좋다하여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 상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반역죄 취급당하던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입니다.

“주로 어떤 물건들이 팔리고 있습니까?”

- 옷, 화장품, 신발 등이 많습니다. 지금은 그 전에 못 팔고 묻어두었던 것까지 다 나와서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한국 상품을 많이 쓰겠습니다.”

- 예, 중앙당 간부들이 한국 물건들만 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 한국이 잘 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

“평양에서는 잘 사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많겠습니다.”

- 예, 부자들은 평양이 제일 많고, 다음이 나진, 선봉이라고 합니다.

“부자들은 달러를 많이 가지고 있겠습니다.”

- 예, 간부 등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은 북한 돈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로 달러를 가지고 다니며 사용합니다. 거래를 할 때도 달러로 직접 합니다. 평양에서는 북한 돈을 내화, 달러를 현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값을 매길 때 현화 얼마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한국에는 거지들이 우글거린다고 선전했는데 지금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겠습니다.”

- 물론이죠. 지금은 한국이 딴 것은 몰라도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지난번에 정주영이 북한에 테레비를 100대 이상 가지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 테레비들은 상표명만 “금강산, 해바라기”등으로 바꾸어 일선 군대에 모두 나누어주었습니다. 물론 군인들은 그 테레비가 남한에서 왔다는 것을 다 알죠. 그러니 이제 군인들도 한국 것이 좋다는 것은 다 압니다.

“군인들이 한국 테레비를 쓰면 군인들의 사상에 괜찮습니까?”

- 글쎄요.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남한 것을 노획해서 군인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선전합니다. 군인들이 진심으로 그 말을 믿는지는 몰라도 겉으로는 믿는 척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북한에 한국 상품들이 자유롭게 유통된다는 것은 정말 아주 최근의 소식이다. 그리고 작년 이산가족 상봉 이후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남한에 대한 커다란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앞으로도 이런 추세라면 북한 내에서 남한 풍이 불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계속 남한 상품이 북한에서 자유롭게 유통되는 것을 허용할까?

“김정일이 앞으로도 계속 남한 상품의 유통을 허용하겠습니까?”

- 글쎄요. 김정일이 단속을 명령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속하더라도 이미 인민들이 맛을 들여버렸는데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장마당 보십시오. 단속한다고 없어집니까?

“혹시 김정일이 정상회담 하러 남한 간다는 이야기는 있는지요?”

- 김정일의 남한 방문 이야기는 북한에서 전혀 되고 있지 않습니다.

■ 청진 개방이 어려운 이유 … 북한 개방의 딜레마

“지난 번 청진 청년을 만났을 때 청진이 개방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데요?”

- 예, 그런 이야기가 일부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청진은 사통팔달이라 개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북한의 북서쪽 주요 지역인 회령, 대홍단, 온성 등은 청진을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청진을 개방하면 그 파급 효과가 주변지역으로 급속히 퍼집니다. 그러니 개방할 수 있겠습니까?

“남포는 어떻습니까?”

- 남포는 이미 들어와 있는 외국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 원조품이 주로 남포로 들어왔기 때문에 남포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아주 높은 편입니다. 또 최근에 남포가 평양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남포가 평양으로 편입되었다면 남포를 개방하기도 쉽지 않겠습니다.”

- 예, 제 생각에도 그저 몇몇 외국 기업은 들어올 수 있어도 개방구역으로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 개방 대상 지역으로 물색되고 있는 곳이 있습니까?”

- 단천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천은 동해안의 조그만 항구인데 시내까지 10리 정도 떨어져 있어서 입지 조건은 괜찮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내부에 영향이 적은 지역을 개방해야 하니까요.

필자는 여기서 북한의 개방에 대한 아주 큰 딜레마를 알 수 있었다. 개방의 효과를 크게 보기 위해서는 교통이 좋은 곳을 개방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바로 체제에 영향을 주니까 개방을 꺼리게 된다. 그리고 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지역을 개방하려고 하면 외국 기업에게 별 매력이 없는 지역인 것이다.

■ 김정일이 상해에서 배운 것

“김정일이 중국에 두 번 다녀온 것은 알고 있습니까?”

- 두 번입니까? 저는 한 번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상해 다녀온 것 말입니다.

“아, 예, 상해 방문 전에도 중국에 왔었는데 보도가 안 나온 모양입니다.”

- 예, 한 번만 갔다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상해 다녀와서 천지개벽했다고 하여 한국에서는 북한도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간다고 떠들썩한 적이 있습니다. 김정일의 상해 방문 이후 북한의 변화가 있습니까?”

- 예, 있습니다.

“어떤 변화입니까?”

- 김정일은 상해 다녀와서 집을 크고 화려하게 꾸리라고 교시했습니다. 상해에 가보니 아주 좋고 큰 건물이 많아서 근사하던데 우리 북조선은 그렇지 않아 보기 안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화려하게 지으면 자본주의풍이라고 단속했는데 이제는 모두 교시에 따라 크고 화려하게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약간 참담했다. 사실 김정일이 중국에 다녀온 뒤 조금이라도 개혁, 개방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일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 미리 예단할 수 없지만 중국 상해 다녀온 이후 첫 실천 조치가 바로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지으라는 것이었다니!! 아마 김정일은 진정한 개혁, 개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상해에 다녀온 한 선배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 선배는 상해에 가 보니 제일 높은 건물이 동방명주이던데 아마 김정일의 통 크게 노는 성격으로 볼 때 북한에서 그 건물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으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다.

“혹시 최근에 북한에서 아주 높은 건물을 지으려는 움직임은 없습니까?”

- 있습니다.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는데 김정일이 ‘통일탑’을 지으라고 하는 교시가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높다고 합니다.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는데 역시나였다. 물론 김정일이 통일탑을 지으라고 교시한 것이 반드시 상해의 동방명주를 본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못다 지은 유경호텔 등 김정일이 큰 것을 선호해 온 사실에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이러한 추측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북한 테레비 재미없어, 외국 영화 많이 봐

“북한이 개방되고 있다는 징조는 없습니까?”

- 글쎄요. 다른 것은 없고 외국 영화를 과거에 비해 많이 보는 것은 있습니다. 조선말로 번역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영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주로 싸우는 것이 많습니다. 사실 북한 테레비는 볼 게 없지 않습니까. 김정일이 현지지도만 하면 같은 내용이 일주일 내내 나옵니다. 그래서 주로 외국 영화를 많이 봅니다. 외국 비디오풍이 돌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영화는 없습니까?”

- 한국 영화는 여전히 철저히 금지합니다. 감히 보다가는 수용소 들어가죠. 그리고 올 초 국경지대에는 일제 검열이 나와 채널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테레비 100대 정도를 압수했다고 합니다.

“채널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 예, 북한에서는 테레비, 라디오, 사진기 등은 등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테레비나 라디오는 고정된 채널만 볼 수 있도록 조작을 하지요. 채널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신고,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압수하는 것입니다.

개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북한의 내부 개혁에 대한 이야기도 아울러 물어보았다. 지난 번 청진 청년은 정부에서 나누어주었던 산의 소토지를 다시 회수해갔다는 증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다.

“지난 번 청진 청년은 과거에 나누어주었던 소토지를 다시 회수해갔다고 하는데 함흥은 어떻습니까?”

- 함흥에서도 회수해 갔었습니다. 그러나 올 해 배급을 또 못 주자 배급 대신 소토지를 나누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올 여름 가뭄이 무척 심하지 않았습니까? 일반 농지들도 농사가 안 되는 판에 산의 조그만 밭뙈기가 농사가 제대로 될 리 있겠습니까?

■ 군대, 안전부 세도 다시 강해짐

화제를 군대, 안전부, 보위부의 횡포로 돌려보았다. 올 3월 청진 청년과의 대화에서 그는 군대와 안전부의 세도는 한 때 꺾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물어보았다.

“군대와 사회 안전부의 세도가 약간 꺾였다는 말이 있는 데 지금은 어떤지요?”

- 예, 잠깐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군대 공병 7, 8총국이 일부 군인들이 번호가 216으로 시작하는 외국인이 탄 차에 횡포를 부려 그 부대들이 해산된 적도 있습니다. 216은 김정일의 생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216으로 시작하는 차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차인데 건드린 것이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지 2, 3달 지나지 않아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사회 자체가 이미 군대, 안전부, 보위부가 강해질 수밖에 없을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검열이 있어도 한 때 뿐입니다.

“안전부의 세도도 여전하다는 말입니까?”

- 예, 사회안전부가 서관희를 무고하게 죽였다는 판결을 받은 이후 김정일은 사회안전부 사람들만 보면 분노가 치민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건 이후 사회안전부가 보안성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 안전부 사람들이 풀이 꺾였지만 그것도 잠시 뿐 다시 활개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번 청진 청년과의 대화에서도 서관희가 명예회복이 되어 열사릉에 묻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서관희가 왜 명예회복이 되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서관희로 화제를 돌렸다.

“서관희가 열사릉에 묻혔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 예, 북한 정부는 서관희는 원래 애국자인데 서관희를 시기한 사회안전부에서 무고하게 서관희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사회안전부를 모두 잡아넣고 대신 서관희는 명예회복 시키고 가족도 다시 원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아, 그랬군요. 그럼 서관희사건 때문에 사회안전부가 인민보안성으로 개칭된 것입니까?”

- 예,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김정일 호위사령부의 세도는 북한에서 제일 세죠?”

- 예, 말하다 뿐이겠습니까? 호위사령부는 평양의 김정일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그 힘은 막강합니다. 사람들 소문으로는 호위사령부에서 하는 공연은 일반 인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고 합니다.

■ 안기부는 북한 인민 탄압의 단골 명분

“한국 안기부에 대한 선전은 계속 합니까?”

- 예, 무슨 나쁜 일만 있으면 안기부가 꾸몄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한테 돈 받은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안기부에서 받은 걸로 선전됩니다.

“한국에서 안기부의 이름이 국가정보원으로 바뀐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 아니, 모릅니다. 그럼 지금은 안기부란 이름이 없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건 그렇구요. 북한에서 안기부와 관련된 큰 사건이 있었습니까?”

- 예, 2, 3년 전 황해 제철소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 제가 들은 바로는 황해 제철소에서 안기부 돈을 먹고 반란을 모의했다고 합니다. 간부들까지 모두 합세해서 말입니다. 이를 안 김정일이 그 제철소를 탱크로 세겹 포위하여 제철소 사람들을 싹쓸이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김정일은 안기부 세력이 북한 내부까지 깊이 침투했다 하여 혜산을 필두로 호위 사령부가 직접 나선 검열이 시작되었습니다.

황해 제철소 사건은 최근 월간 조선에서 본 기억이 났다. 이 함흥 청년 말대로 제철소 사람들을 싹쓸이했다고 했다. 물론 진실은 안기부 돈이 아니라 식량 문제였던 것 같다. 여기서 필자는 북한이 어떤 명분으로 반대파나 불만 세력을 제거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남한의 안기부라는 유령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불만 세력들은 모조리 남한의 안기부와 연계시켜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인민들은 여전히 안기부에 대한 공포심과 적개심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이러한 선전은 아직까지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 남한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할 때 북한의 간첩과 연결시키는 것과 흡사하다. 남한의 민주화운동이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남한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반북, 반공 의식이 상당히 약화된 것이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북한 사람들의 남한 사람들에 대한 미지의 적개심과 공포심을 약화시키는 것은 북한 사회의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호위 사령부 검열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 우선 혜산에서 간부들, 돈 많은 사람들을 조사하여 숨겨둔 수많은 달러들을 압수했다고 합니다. 안기부에서 그 달러들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혜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이후 청진, 남포, 함흥, 원산으로 호위 사령부 검열이 확대되었습니다.

“안기부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이 있습니까?”

- 예, 무산의 외화벌이 과장 윤대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안기부 돈을 많이 받아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김일성 연구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안기부 돈으로 김일성 연구실을 만들었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애국한 것 아닙니까?”

- 아니, 어떻게 김일성을 연구실을 그 더러운 안기부 돈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당연히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애국이 아니죠.

“그래서 그 윤대일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올 해 남한으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그 집 아주마이가 윤대일을 신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주마이는 무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알거지가 되었다고 하지만요.

■ 반미선전 갈수록 강도를 더 함

“미국에 대한 비방은 여전합니까?”

- 여전한 정도가 아니라 저는 올해만큼 반미 선전의 강도가 높은 때를 못 보았습니다.

“주로 어떤 내용으로 합니까?”

- 전쟁시기에 미국에게 학살당한 사람들, 과거 제너럴 셔먼호 사건, 또 과거 미국 선교사들이 북한 인민들에게 저지른 만행 등이 주 선전 내용입니다.

“그럼 전쟁 대비 훈련을 심하게 하겠습니다.”

- 예, 한 달에 한번씩 반항공훈련을 합니다. 훈련할 때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탱크 소리도 납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청년 근위대, 노농 적위대, 교도대등에 속하여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북한의 기독교도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까?”

- 2000년에 황해도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만 자세한 내용은 잘 모릅니다.

“혹시 기독교 신자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 북한에서 내놓고 기독교를 믿을 수 있습니까.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 김정일 빼놓고는 다 욕해

“북한 인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 글쎄요. 속마음은 몰라도 겉으로는 다 충성한다고 합니다.

“그럼 간부들에 대해서는요?”

- 김정일 빼놓고는 모두 욕합니다. 개같은 새끼, 반동같은 새끼, 저 놈은 죽어야 한다는 등 노골적으로 욕합니다.

“그렇게 욕해도 괜찮습니까?”

- 예, 괜찮습니다. 김정일 자신이 간부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욕하기 때문에 인민들이 욕해도 상관없습니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도 간부들은 욕해도 괜찮았나요?”

- 물론 그때는 꿈도 꿀 수 없었죠. 그렇게 욕하면 체제에 불만있는 사람이 되니까요. 그 점이 바로 과거에 비교해서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습니까?”

- 원래 인민들은 마음 속으로는 모두 간부들 저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김정일이 고난의 행군 시기의 책임을 자기 밑의 간부들에게 모두 뒤집어 씌웠습니다. 북에서는 “고난의 행군은 김정일과 백성들만 했다” 는 말이 퍼져있고, 또 김정일도 의도적으로 이를 퍼뜨리거나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백성들도 주저없이 간부들 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최근 북한 사회의 아주 중요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되었다. 과거에는 북한 사회에 대한 어떠한 불만 표출도 금기시되었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가 지난 지금은 김정일을 제외하고는 불만 표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즉 인민들 내부에서 적어도 그 외형적 타깃이 김정일은 아니지만 분노가 표출될 대상이 생기고 저항 의식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는 김정일 스스로도 일익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간부들을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의 사회적 충격이 워낙 큰 것이었기 때문에 김정일도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이런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저항 의식의 축적과 분노의 표출이 결국은 김정일 자신을 향할 수밖에 없음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반김정일 삐라 같은 것이 뿌려진 적은 없습니까?”

- 있었습니다. 작년 평양시 안전부 앞에 반김정일 삐라가 뿌려졌다고 합니다. 공화국 역사상 그런 삐라가 뿌려진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 새벽에 삐라가 뿌려져서 안전부 사람들이 제 때에 수거를 못해 많은 사람들이 그 삐라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 삐라를 뿌린 사람은 잡혔습니까?”

- 아직 잡혔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