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았던 사람' 유태준씨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MBC 뉴스를 통해 보도되어 유태준의 생존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지난 7-8월호 Keys에서 우리는 "유태준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유태준 문제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제야 그 미스터리의 핵심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가 살아있다니 다행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MBC는 살아있는 유태준씨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테잎을 공개하면서 '공개처형 당했다'고 추측 보도한 조선일보와 이를 국회에서 질의한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성토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어쩌면 Keys는 오보(誤報)라는 멍에로부터 자유로울 지도 모릅니다. Keys는 한번도 단정적으로 유태준씨가 죽었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씨의 실종소식, 그리고 그가 공개처형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북한민주화네트워크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사회의 속성으로 볼 때,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다시 끌려 갔다면 온전하게 살아있을 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성급하게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껏 네트워크의 입장은, 유씨의 생존여부를 TV 등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확인시켜 줄 것을 북한 당국에게 요구하는, 어찌보면 대단히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미스터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냉정하게 중립을 지켜 그릇된 보도를 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반성의 마음이 더 큽니다. 북한이라는 사회를 대상으로 해서, 객관적으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북한이 밝혀줄 때까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태도가 과연 옳은가. 과연 '객관'과 '중립'이란 옳은 것인가. 특히 북한이라는 철저히 폐쇄되고 조작된 사회를 대상으로 하여 객관과 중립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조차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당파(黨派)에도 속하지 않고,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침묵을 지키는 것을 중립이나 객관, 혹은 점잖은 행동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어떠한 운동이나 주의와 주장이든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져야겠지만, 이러한 사실(팩트)은 이것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통해 얻어질 수 있습니다. 즉 팩트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야만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 팩트를 찾아내고 팩트가 운동을 견고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번 유태준씨 문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씨가 공개처형을 당했다는 것은 정확한 사실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기자(記者)로서는 치욕스러운 오보이겠지만, 시민단체들의 경우는 이와 반대입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다고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치욕이고, 사실확인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투쟁하고 호소하는 것이야말로 본연의 역할입니다. '유태준 진상규명위원회' 등의 지속적인 노력과 헌신이 없었던들 북한이 이 문제에 꿈쩍이나 했겠습니까. 유태준씨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의 오보를 비판하는데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지금 그 손가락을 돌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자가 운동가(運動家)는 아니지만, 다행히 나는 오보를 내지 않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기자들은, 무엇이 유태준씨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게 해주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유태준씨의 생존확인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을 이서 목사님을 비롯한 '피납·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들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하였을 어머니 안정숙씨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북한에 있는 유태준씨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유태준씨가 아들의 송환을 주장하였으니,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유씨의 자유의사 확인도 곧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독재와 맞서 싸우는 투쟁에서 '갖춰진 팩트'를 요구하는 사람은 싸우지 말자고 주장하며 독재를 돕는 사람"이라는 말로 이번호 후기(後記)를 대신하며, 객관과 중립으로 위장되었던 비겁을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