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전략가 金正日〉은 B6 용지(176×124mm) 크기의 소책자이다. 페이지도 190페이지 정도로 작심하고 읽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을 분량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은근히 우리를 화나게 한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질투심(?)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북한을 포인트로 해서 동북아의 흐름을 거시적인 면과 아울러 미세한 대목까지 잘 분석해 놓았다. 북한이라면 정작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인 한국에서 이처럼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실사구시적인 분석을 해놓은 책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 책의 저자는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라는 일본인이다. 저자는 박사과정까지 마쳤으니 공부도 할만큼 했고, 일본의 방위연구소에서 일하면서 현장에서도 활동을 한 사람이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한국의 대학강단에서 한국어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특히 책상머리에서 나온 자의적이고 관념적인 한국학자들의 글에 식상해 하고 있을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현장 감각이 묻어나는 이 책이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올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부시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 움직임이 일어나자, 한국 언론들은 ‘강경노선’이라는 수식어로 이 상황을 다 설명해버리려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이 왜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려는지 그 구체적인 동기나 과정에 대해 파악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장 유력한 정보의 원천인 언론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자 국민들은 부시 정부가 마치 남북관계에 제동을 걸고자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라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원하면서도 일종의 길들이기 차원에서 이런 접근을 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가치 있는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부시 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려는 것은 북한의 핵 위협 등에 대한 검증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1994년 경수로 건설을 중심으로 한 ‘북·미(北·美)합의’시 1호기가 건설되기 이전에 과거 핵무기를 개발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하기로 했는데, 이를 북한이 거부하는 것에 대해 불신을 하고 있다고 한다.

1994년의 북미기본합의에서 미국의 입장은 “핵 의혹 문제 해결을 연기한 채, 우선 핵개발 활동을 중지시키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북한의 사고방식을 유화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미합의 이전 북한의 핵개발 여부의 검증문제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는 것이며, 부시 행정부는 이 문제를 분명히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왜 하필 부시 정부가 초기부터 이 문제를 제기하는지 의혹의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수로 1호기는 2004년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정부가 교체된 지금 북한과의 첫 대면에서 핵사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아무런 보장도 없이 경수로만 제공하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결국 ‘북미합의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페이스에 미국이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북한의 관심

이 책은 올해 상반기까지의 상황을 담고 있는데, 저자는 현재의 남북관계의 진전을 북한의 변화보다는 ‘남한의 변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역설적으로 들릴 이 주장은 결국 북한이 변화되었다고 할만한 확실한 근거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북한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한국 내의 인식변화가 남북관계 진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중단되었던 남북대화가 9월에 재개되었으나, 지난 금강산의 장관급회담을 거치면서 다시 대화중단에 빠져버렸다. 작년 6.15 정상회담 이후 남한에서 강하게 번지던 북한의 변화에 대한 신뢰는 올해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이젠 다시 점검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흥분이나 기대를 넘어서, 북한의 대남접근의 과정과 내용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남북대화를 중단시킨 명분은 결국 ‘미국’문제였다. 이번에는 미국테러로 인한 한국의 비상경계태세를 문제삼았지만 결국은 한미공조체제를 걸고넘어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태도를 놓고 어떤 해석을 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비상경계태세에 북한이 실제로 위협을 느끼고 있는 만큼 북한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다는 주장에서부터 북한이 이제 남북대화에 관심이 없어서 억지를 부린다는 주장까지 여러 갈래이다. 저자의 의견은 실제로 북한이 한미관계의 불협화음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미공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초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문제삼아 남북대화를 중단시키자 한국정부가 부시 정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는 등 북한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바 있다. 이번에는 한국정부가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국 내의 진보주의자들은 남북대화 결렬의 책임을 한국정부에게 묻고 있다. 역시 북한은 얻은 것이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북한이 지금은 남한 내 반미감정의 고조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중단을 감수할 만큼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시작할 때는 분명히 남한의 지원에 바탕한 일정한 개방을 구상했다는 여러 증거들이 있다. 특히 개성의 경제특구 정책이 그렇다. 그러다가 중국과의 관계가 급격하게 가까워지면서, 신의주의 개방이 거론되는 등 중국과의 연계하의 개방을 추진하는 기미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개방과 관련된 실제적인 진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은 물론이고 남북철도 연결, 신의주 개방 등 어떠한 영역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없는 것이다. 대신 한미공조에 대한 시비와 한국 내의 반미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개방에 대한 관심보다는 한미공조체제의 균열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대북정책이나 동북아 정책의 재검토를 요하는 상황변화이다. 물론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또 어떤 변신을 할지 알 수는 없다. 어차피 북한체제가 아주 심각한 위기는 넘겼다고는 하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한 것이 아니고 미봉으로 한숨 돌린 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김정일 정권의 개방 유보는 어떤 것도 명확하게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의 어려움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북한연구 풍토

여하튼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기계적인 남북관계 분석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을 정확히 보는 그런 연구성과들을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정권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요구된다. 얼마전 한 토론회에서 어느 발표자가 “북한의 식량난 등 경제파탄의 책임은 전적으로 김정일에게 있다”고 했더니, 모 대학의 정치학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사람이 논평을 하면서, “내가 배운 정치학에서는 한 사회의 발전문제에서 최고권력자의 역할은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다”며 반론을 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치학은 민주주의 사회를 전제로 하고 거기에서 작동되는 일반적인 법칙을 다루고 있다. 이걸 일인독재체제인 북한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오류는 한국학자들 내에서 아주 흔히 발견된다. 북한정권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국민들의 견제를 받고, 북한의 발전에 큰 관심이 있다는 식으로 자기 멋대로 설정해 놓고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무슨 학문적(과학적)인 작업의 결과물인 것처럼 내놓는다. 이것에 대해 문제제기 하면 냉전적이니, 수구보수니 하는 비난을 퍼붓는다. 여간해서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폐쇄성과 지적 오만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의 행태도 거의 비슷하다. 북한바로알기는 단순히 무지한(?) 대중들의 과제만은 아닌 것이다. 사족(蛇足)으로 덧붙이자면 일본인이 남북관계나 북한문제에 대해 어떤 글을 쓰고 발언을 하면 무슨 불순한 의도라도 있는 것처럼 무작정 색안경부터 끼고 바라보는 분들은 차라리 이 책을 피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