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집단체조 「아리랑」
북한은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릉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아리랑」을 공연할 예정이다. 대집단체조 「아리랑」은 10만명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0년에 공연되었던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에 10만명이 동원된 바 있으니, 규모는 아마도 그 이상일 것이다. 「아리랑」공연의 특징은 ‘관광상품’의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과거 내부결속과 대외과시, 김정일의 관람을 위해 만들던 집단체조들과 달리 ‘수익’을 바라며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북한 조선관광총국 시장개발국 일본부 명의의 안내문을 보면, 「아리랑」입장료는 특등석 300달러에서 삼등석 50달러까지 4단계로 나눠져 있다. 북쪽은 또 공연 관람을 포함해 평양시내, 묘향산, 남포, 장수산, 구월산, 개성 등지를 관광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평양방송은 “국가관광총국 대표단이 스페인의 세계관광기구 본부를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대표단의 국제관광기구 방문은 집단체조 「아리랑」에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이 주요했다. 북한은 최근 인터넷사이트 ‘조선인포뱅크’ 에 홍보페이지를 개설하고, 외국신문에 광고를 내는 등 세계 각국의 관람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아리랑」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연과 때를 맞춰 평양∼일본 나고야를 오가는 130명 탑승 규모의 전세기도 운항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아리랑」이라는 공연을 기획한 것일까. 거기다 하필 그 시점이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시기일까. 여기에 대해 "월드컵에 맞불을 놓으려 한다",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 탄생 100주년 기념작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지 90해를 기념하기 위한 정치작품이다” 등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간단하게 위 해석의 타당성을 짚어보자. 먼저, 월드컵에 맞불을 놓으려 한다는 주장은, ‘맞불’보다는 ‘편승’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한국(남한)으로 갈 관광객을 북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보다는, 월드컵을 맞아 한국과 일본을 찾을 외국인들이 북한에도 잠시 들렀다 가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월드컵에 맞불을 놓는다고 해서 효과를 거둘 리 만무하다. ‘나운규 탄생 100주년작’이라는 해석은 우스개 소리에 가깝다. 대다수의 인민들이 ‘나운규’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운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무슨 그런 행사를 준비한단 말인가. 혹시 ‘나운규는 김일성의 비밀 조직원이었다’는 억지 사료라도 만들어 놓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한다면 모를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작’이라는 해석은 절반은 맞는 이야기다. 애초에 「아리랑」은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 작품으로 준비되어 오다가, 「아리랑」으로 변화했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북한이 왜 아리랑을 준비하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시각에서 이를 바라보아야 할 지 살펴보자. /편집자

대집단체조「아리랑」에 깔려 있는 다각적인 포석

아리랑의 원제(原題)는 '첫 태양의 노래'

북한이 준비하는 집단체조 「아리랑」에는 다각적인 포석이 깔려 있다. 먼저, 집단체조 아리랑은 원래 김일성이 태어난 지 9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는데, 김정일이 지시하여 다른 내용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 부소장이자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공연기획자인 리철우는 “내년 4월말 공연에 들어갈 집단체조 아리랑은 ‘첫 태양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지난해부터 기획돼 준비돼 오다가 김 국방위원장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아리랑으로 하자’고 제안해 현재의 형태로 바뀌게 됐다”고 구랍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김정일이 전술적인 판단에 굉장히 능숙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대목인데, 특별한 의미 없는 내부행사로 그칠 수 있는 김일성 생일맞이 행사보다는 대중적, 민족적 행사로 전환시켜 올해의 정세를 이끌어 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여진다.

우선 대내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올해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의 보편적인 어조(語調)는 ‘우리는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했다. 올해는 승리를 자축하며 새로운 도약을 할 때이다’는 식이다. 지난해의 공동사설에서 이미 ‘고난의 행군은 끝났다’고 선포했던 것을 이어, 올해는 이를 '즐기며' ‘여유있게 정세를 관망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여기에 「아리랑」은 북한 주민들에게 ‘승리의 자축장’으로 선전될 것이다. 나라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신념을 심어주는 일종의 ‘민심수습책’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어느 정도 소문이 돌 수밖에 없는 남한의 월드컵 개최 소식을 「아리랑」을 통해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짐작할 수 있다. 즉 남한과 일본을 향해 월드컵에 맞불을 놓는 행사라기보다는 북한 인민들의 ‘마음’에 맞불을 놓는 행사이다.

서서히 떠오르는 남한 내의 「아리랑」 관람 주장

「아리랑」의 주요한 의도 중 하나는 남한의 여론을 흔들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김일성 생일을 기념한 ‘첫 태양의 노래’라는 집단체조라면 “여기에 우리도 참석하자”는 남한 내 여론을 형성하기 힘들겠지만, 「아리랑」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남한 내부에서는 “월드컵과 아리랑을 결합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한겨레신문은 「아리랑」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남 월드컵-북 아리랑축제 협력 모색할 만”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8·15 민족통일대축전 남쪽 대표단장이었던 김종수 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신부)은 “월드컵과 북한의 아리랑축제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다양한 교류협력 방안을 마련해 실천하는 게 올해 남북관계 진전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다.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 김창수 씨는 “남북이 월드컵과 아리랑 축제를 서로 축하할 수 있도록 협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쪽의 사절단이 월드컵을 앞두고 남한을 방문한다면 남한의 참관단이 아리랑 축제에 함께 하는 것도 자연스레 풀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박인배 기획실장은 “남북 양쪽 당국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 「아리랑」을 월드컵 개막행사에 포함시키자”고까지 말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의 강태호 기자는 올해 남북관계와 북미-북일관계를 전망하는 기사에서 “올해와 같은 국면에서는 남북 당국간 관계보다는 오히려 국민적 차원에서 남쪽이 월드컵을, 북쪽이 아리랑을 축제로 치르는 분위기를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쓰고 있는데, 여기서 ‘남북당국간 관계보다는 국민적 차원에서’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북한이 올해 남북관계에서 취하려고 하는 태도를 정확히 대변해준 말이기 때문이다.

올해 공동사설에서 보여지듯 북한은 이제 남북 당국간 관계는 기대를 저버린 듯 하다. 특별한 긴장관계를 조성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지원물자와 금강산 관광료 등을 접수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지난해부터 북한이 취해온 자세이다. 북한의 대남전술은 전형적인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당국간 교류와 민간교류를 적당히 활용하면서 화해와 긴장, 지연과 속공(速攻)을 왔다갔다하는 것이다(북한에는 당국과 민간이 따로 있을 수 없으니 교류라인을 이리저리 바꾸어도 남한처럼 특별히 골치 아플 것이 없다.). 먼저 정부간 공동합의를 한다. 이 합의문구는 대단히 모호하게 설정하는데 나중에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우긴다. "6.15 공동선언은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역사적 합의"라고 주장하는 최근의 예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재현될 수 있는 남한 뒤흔들기

그러면서 마치 남측은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은 합의를 이행하려는 사람들인 듯, 혹은 자신들은 합의를 이행하고 싶은데 남측의 분위기 때문에 실행할 수 없는 듯한 분위기로 선전의 고삐를 당긴다. 동시에 남쪽의 친북세력을 동원해 합의이행을 주장하게 하고, 여차하면 반정부투쟁으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당국간 대화 라인을 끊어버린다. 당국간 라인은 지연시키고 민간 라인은 더욱 가속화시킨다. 남한 정부가 남북 당국간 대화와 그 성과에 목말라 하는 정권일수록 이러한 전술의 효과는 커져 차후 당국간 회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만약 남한정부가 이러한 민간 라인을 탄압하면 또 ‘반통일정권’이라는 비난의 소재를 제공하게 된다.

올해 북한은 지난해보다 더 줄기차게 민간 차원의 교류를 추진할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체조 「아리랑」도 향후 행방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남한의 일부 세력은 "애족적 차원에서" 또는 “이웃의 축제에 함께 기뻐해 줘야 되지 않겠느냐”, “당국간 대화 결렬의 공백을 민간이 어떻게든 채워야 되지 않겠느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아리랑」관람을 합리화하려 할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런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허가한다면 남한 내 보수여론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그렇다고 막아서자니 지금까지 남북관계에서 쌓아온 성과를 원점으로 돌릴 것 같아 부담스럽다.

또 만약 「아리랑」관람단이 지난해처럼 북한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임기 말의 남한 정부로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선거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고, 월드컵으로 어수선할 분위기에 이런 이념갈등까지 겹친다면 온 나라가 벌통 쑤신 듯한 상황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갈팡질팡하는 정부, 그러면서 남한 내 여론매체를 타고 더욱 널리 알려질「아리랑」, 친북세력의 준동(蠢動)... 이것이 김정일의 주요한 노림수이다. 작년에 이어 ‘남한 뒤흔들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첩첩산중 달러기근의 숨통 트기

실효성은 의심되지만, 「아리랑」은 어느 정도 외화벌이와 국가 이미지 개선의 의도도 있어 보인다. 아리랑의 관람료는 50∼300달러. 10만명이 출연하는 거대 작품을 감상하는 비용치고는 굉장히 싸다. 하지만 가장 낮은 등급의 관람료인 50달러만 해도, 북한 노동자 한 명의 7-8년 치 봉급과 맞먹는다고 한다. 물론 이 공연으로 인한 수익이 노동자와 인민들에게 돌아갈 리 없지만, 달러가 궁한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방식으로라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절실하다.

최근 북한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달러 부족 현상에 직면해 있을 것이다. 우선 대테러전쟁 이후 미사일 등 무기수출이 어려워졌다. 또 마약거래도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데, 얼마전 동중국해에서 일본경비선에 의해 침몰된 북한 국적(추정) 괴선박도 마약밀수 임무를 띄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정부의 대북정책이 한층 강경해졌고 든든한 돈줄이었던 조총련의 사정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몇 해 동안 주외화소득원 중 하나였던 현대의 금강산 관광료도 계속 연체되는 상황이다. 첩첩산중의 달러기근이다.

이러한 때에 「아리랑」을 잘 활용하여 월드컵에 ‘편승’하는 차원에서 관광객을 모집한다면,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예상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아리랑」관광객 유치를 위해 인천 국제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을 잇는 서해상의 남북 직항공로 개방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이 관광객 유치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적극적으로 이 사업에 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올해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일시적으로나마 남한당국에 상당한 양보를 하면서까지 「아리랑」관람객을 유치하려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또 북한은 아리랑을 홍보하면서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2002년 1월 1일자)를 통해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조선신보는 이 기사에서 “중국, 러시아와의 친선협조 관계의 발전, 유럽 나라들과의 잇단 외교관계 설정 등 조선의 대외적 지위가 높아 가는 가운데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조선에서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면 단순한 행사의 테두리를 벗어나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서의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랜 시간 외국 관광객을 제한하였던 나라’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제한적으로나마 여러 곳의 관광을 허용하면서, 어느 정도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테러지원국 바로 옆 나라에서 열리는 한일 월드컵이 무사하게 치러지고, 자신들은 나름대로 준비한 「아리랑」을 무난히 공연한다면 대표적인 ‘테러지원국’이라는 이미지도 어느 정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EU 등 서방국가와의 수교협상도 가속화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다.

인민들만 혹사시키면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북한경제가 급속하게 어려워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은 89년에 열렸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꼽는다. 이 축전의 준비를 위해 김정일은 축전 개최 3년 전부터, 수도 대건설 명령을 통해 전국 동원령을 내렸다. 여기에 47억 달러라는 거액의 자금이 투입되었다. 130여개국, 3만여명의 해외 초청객에 대한 교통과 숙식은 대부분 주최국인 북한이 부담하였다. 이 예산 중 상당부분은 조총련이 갖다 바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최근 조총련계 은행인 조은(朝銀)이 파산 위기에 몰리고, 조총련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간부들이 구속된 것도 모두 이때의 후과(後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자금과 정성을 투입하며 준비한 축전이었건만, 바로 그 해 말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줄이 붕괴되면서 공을 들인 보람마저 없어져 버렸다.

이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88 올림픽에 대한 맞불의 성격이 강했다. 그렇게 뱁새가 황새 좇는 식으로 흉내를 냈다가 그렇지 않아도 휘청거리던 국가경제를 완전히 거덜내고 말았다. 그래서 “북한경제가 아직 완전한 회복단계에 이르지 않았는데 또다시 겁 없이 거대한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이유는 뭔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정확한 비용산출은 어렵지만 집단체조를 준비하는데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집단체조는 89년의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는 비교하자면 그리 많은 예산이 들지 않는 행사이다. 속된 말로 ‘몸으로 때우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미 있던 경기장에 주민들을 동원해 카드섹션과 무용을 보여주는 것이니 특별한 예산이 투여되지 않는다.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 필요도 없고, 참석자들의 숙식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오직 인민들을 혹사시키면 된다. 그리 큰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주민통제를 강화하고, 남한 여론도 흔들어놓고, 외화벌이를 할 수 있고, 테러지원국의 멍에도 벗을 수 있는 ‘일석삼사조’의 효과가 집단체조 「아리랑」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