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보정당을 자임하는 '사회당(社會黨)'이 출범과 함께 '반(反)조선노동당' 노선을 선포하였다. 이는 상대적으로 '민족해방계열(NL)'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당원들과 의견 대립을 불러오면서 진보정당의 대통합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사회당이, 그동안 진보정당들의 정강(政綱) 정책에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북한체제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중점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당은 북한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읽고 있음에도, 그 문제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릇되게 판단하여 '반조선노동당'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먼저 사회당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사회당의 원용수 대표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사회당은 대한민국의 모든 진보세력을 '반(反)자본주의, 반(反)조선노동당'의 기치 하에 단결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원 대표는 조선노동당의 성격을 "국가제일주의적이고, 봉건적이며, 반(反)노동자적이고, 민족지상주의적"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반(反)조선노동당 노선에 대해 주한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가 이인수 공동의장 명의로 반론을 제기하자 며칠 뒤 김태호 사회당 정치연수원 부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령 자본주의"라는 제목의 글로 사회당의 입장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 글에서 김 부원장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절대주의'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수령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수령절대주의'로 바꾸어 불러도 표현하려던 취지에 크게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김 부원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은 화폐로 표현되어야만 노동의 자격을 부여받듯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개인의 활동은 수령을 빛내는 한에서만 활동으로 취급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당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그것이 인민의 삶을 어떻게 강제하고 질식시키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령 반대'로 되어야 할텐데, 사회당은 느닷없이 '조선노동당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왜 조선노동당을 반대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은 아직 부족하다. 아마도 사회당은 '수령체제의 봉건성과 기형성을 타파하자'는 주장을 '반(反)조선노동당'으로 대변한 듯 한데, 조선노동당을 반대하는 것과 수령을 반대하는 것은 엄연히 틀린 문제이다.

북한은 공공연히 "조선노동당은 수령의 당"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수령이 없으면 당도 국가도 인민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노동당조차 수령의 통치도구, 혹은 장식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反)조선노동당이 아니라 반(反)김정일, 또는 반(反)수령절대주의가 본질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다. 어떤 악인(惡人)의 잘못에 대해 쭉 이야기하다가, 판결할 즈음이 되어선 갑자기 그의 옷에 달린 단추가 맘에 안 든다고 이야기해서야 되겠는가.

'반(反)조선노동당'이라고 하면 의도하지 않게 김정일에게 어느 정도의 면죄부를 쥐어줄 수 있다. 알다시피 북한의 수령절대체제는 60년대 말 김정일의 등장과 함께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고, 유일사상체계의 칼자루를 쥐고 미친 듯이 커나갔으며, 80년대 초 권력의 공식승계와 함께 완성되었다. 그런데 반(反)조선노동당 노선은 이러한 수령체제의 근본적 책임을 그 절대적 주범인 김정일에게 묻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이에 동원되었던 조선노동당에게 물음으로써, 종범(從犯)에게 죄를 들씌우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 반(反)조선노동당 노선은 북한의 민주화와 재건과정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조선노동당의 과오를 전혀 묻지 않을 수는 없지만, 앞서 말했듯 그것은 김정일의 폭정아래 어쩔 수 없이 동원된 것뿐이다. 특히 개별 당원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서는 당연히 입당해야 하는 사회 시스템 때문에 조선노동당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북한에 태어났다면 누구든 그러한 길을 걸었을 것인데 그것이 어찌 그들의 잘못일 수 있으며, 또 3백만 당원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북한의 민주화과정에 우리는 이러한 입장을 분명히 하여 선량한 당원들을 쟁취함으로써 '반(反)김정일' 전선에 묶어 세워야 하며, 김정일 타도 과정에 자신이 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또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형사범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에게 과거를 묻지 않고 너그러이 이해하도록 당부해 전 인민이 새로운 국가 건설에 참여할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조선노동당을 인민의 당으로 만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명실상부한 인민의 공화국으로 되돌리는 길이며, 남한의 진보정당으로서 북한의 민주화와 재건 과정에 사회당이 갖고 있는 형제애적인 책임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당이 반(反)조선노동당 노선을 재고(再考)하고 이를 반(反)김정일, 반(反)수령절대주의로 수정할 것을 제의한다. 반(反)조선노동당 기치는 단순히 사회당이 '빨갱이'라는 사회적 누명을 벗기 위해 내세운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체제의 속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북한문제에 더욱 애정을 갖고 접근하기를 또한 바란다. 물론 우리는 사회당의 진심을 믿는다. 조만간 올바른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2002년 1월 22일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