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러첸씨의 시선

독일인이 북한을 방문하고 쓴 책은 대표적으로 두 권이 있다. 먼저 것은 유명한 루이제 린저의 '또 하나의 조국'이란 책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출판된 노베르트 폴러첸씨의 일기이다. 물론 두 책은 북한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다르다. 또한 책의 배경이 완전히 다른 시대이므로 수평적으로 두 책을 비교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비교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누구를 중심으로 북한 사회를 바라보느냐는 게 문제다. 역사와 혁명 사적, 그 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어 간다고 주장하는 수령의 눈이냐, 아니면 그 모든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배고픔과 추위, 가혹한 인권유린에 무방비로 노출된 북한주민의 눈이냐는 것이다. 이 점에서 폴러첸씨는 충실하게 북한주민의 눈을 따라 북한 사회의 곳곳을 보고 국제사회에 그대로 증언하는 미덕이 있다.

흔히 남한의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간의 북한 인식이 남한의 반공주의 교육 때문에 왜곡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북한측의 이데올로기적인 역사 인식을 수용하고, 북한 현실의 수용을 북한의 공식적인 선전을 인정하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그런 인식하에서 유럽사회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를 단순히 '서방적인 시선'으로 몰아 가려는 편견도 일정하게 깔려 있다. 그러나 폴러첸씨는 그러한 전통적인 남한의 진보적 인사들의 대서방 인사들의 편견에서도 자유로운 듯 하다.

폴러첸씨는 북한의 현실을 개선하는 문제에서부터 북한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까지 시종일관 북한 사회의 전통과 주민의 입장에 충실하며, 불가피한 대안으로 상정되는 개혁과 개방의 폐해를 우려하여 현실적인 개선방안까지 고민하는 흔적을 책 곳곳에 기술해 놓았다. 이런 이유로 폴러첸씨는 언론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서방 선동꾼의 혐의를 벗고, "언론의 힘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북한주민의 입장에 입각한 진정한 휴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외국인이 본 북한의 실상

폴러첸씨가 북한 당국이 보여주고 싶은 '이데올로기적인 북한'의 모습 속에 감쳐진 '현실의 북한'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모순에 기인한 것이다. 폴러첸씨는 북에서 의료활동을 한 공로로 김정일로부터 '공화국 친선 메달'을 받았는데, '공화국 친선 메달'이 주는 특권으로 말미암아 북한 사회의 여러 실상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특권만이 전부는 아니고 오히려 폴러첸씨가 "기자보다 더 기자적인 열정"을 가진 의사였기에 가능했다는 게 더 정확인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같은 폴러첸씨의 태도는 최근 빈번해진 남북 교류의 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북한의 모습만 담거나 그것에 대해 치열한 진실의 규명 노력을 게을리 한 남한의 언론이나 많은 통일인사들에게 귀감이 되는 태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풀로첸씨는 '캅 아나무어' 위원회 '인도주의 지원팀' 요원들의 일원으로 평양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구호 물자의 운송료까지 요구하는 희한한 나라인 북한에 도착한 폴러첸씨는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자신의 피부를 이색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공화국 친선 우정의 메달'을 수여 받는다. 이 '우정의 메달'로 인해 북한 사회에서 유명인사가 된 폴로첸씨는 재령병원, 해주 제일병원 등에서 각종 의료활동과 교육을 펼치고 북한 사회의 혹독한 현실을 체험한다. 물론 북한 사회의 참혹한 현실은 "수천년 전통의 문화와 자연 친화적인 의술, 풍부한 인적 자원, 태양열, 풍력, 수력, 간만의 차를 이용한 조수력과 같은 에너지 자원, 거기에 더해 무진장의 광물자원을 자랑하는 나라"의 북한주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폴로첸씨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하여 고민한다. 우선 그는 서방 세계의 일부 인도주의적 지원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첫째, "북한에서 일하고 있는 서방 세계 '봉사자'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북한주민들과의 만나는 방법과 과정에서 기인하는데",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이들 원조기관 봉사자들이 이 시대의 마지막 야만적 식민주의자들인 양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유럽과 세계의 다른 '발전된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연금 생활자들은 이들이 북한주민들의 굶주림을 다루는 회의를 하면서 호화판 뷔페음식을 먹는" 등의 모순에 대한 지적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더 핵심적이자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 당국이다. 폴로첸씨는 첫째, 여전히 그리고 개선될 조짐이 없는 북한주민들의 고통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자들이 요구하는 서방세계의 지원, 주로 돈과 물질적인 도움"을 대가로 "서방세계는 북한에 대한 외교 전술을 바꿔 그들로 하여금, 이를테면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갖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자들은 그와는 반대로 비이성적인 태도와 행동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것은 점점 큰 군사 위협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평양에는 다양한 종류와 성격의 국제 원조 기구들이 들어와 있으며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은데, "북한 당국이 이들의 고귀한 인도주의 정신과 뜻을 외교적으로 농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 산하 몇몇 원조기구 책임자들이 수많은 축하영정 만찬회에 참석,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외치면서 술잔을 높이 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폴로첸씨는 북한에서의 "인도주의적 정치투쟁"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는 정치적 변화를 통해서만이 보편적인 인권 존중은 물론 북한주민들에게 참다운 의료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는 왜 그 누구도 북한의 저 끔찍한 현실에 대해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폴로첸씨는 남한에서 언론을 통해 북한 당국과의 "인도주의적 정치투쟁"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 역시 "남북한 모두에서 겪은 희한한 경험"에 의해 좌절하고 절망한다. 당연히 도움을 주리라 예상했던 남한의 당국자들은 '햇볕정책'을 폴로첸씨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한다는 성명을 이끌어내는 데만 골몰하고, 일부 언론들은 폴로첸씨의 증언을 의심하고 불신을 증폭시키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다.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에 압박을 가해야 북한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된다고 믿는 폴로첸씨는 남한 당국과 일부 언론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제 사회 곳곳을 돌면서 북한의 현실을 증언하고 지원을 호소하는데 지금도 여념이 없다. 폴로첸씨는 북한주민의 실상과 개선책을 같은 동포인 우리들 남한사람보다 더 깊이 고민하고 어리둥절한 남한과 국제여론에 문제 제기하는 것이다.

사실 폴로첸씨의 이 책은 그의 "인도주의적 정치투쟁"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체적인 북한 현실의 증언이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참혹한 북한의 의료 현실, 관리들의 부패, 일부이긴 하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대의에 맞지 않는 국제기구 종사자들의 그릇된 행태 들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한 인도주의적인 외국인에 의해 밝혀지는 우리 동포들의 처절한 삶을 같이 아파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묻는 지금의 남한 현실에 대해 우리도 그와 함께 반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왜 그 누구도 북한의 저 끔찍한 현실에 대해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