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국내 입국 탈북자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데에는 인민들의 생활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를 차지한다. 그리고 남한의 실정이 북한 인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도 재중(在中) 탈북자들의 한국행 결심을 늘게 하고 있다. 또 탈북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탈출루트가 생겨난 것도 국내 입국 탈북자 증가의 한 원인이며, 먼저 입국한 탈북자들이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것도 주요인으로 들 수 있겠다. 물론 한 해에 1천 여명이 입국한다 해도 이 숫자는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숫자에 비하면 아직도 극히 작은 숫자이다.

최근 입국하는 탈북자들의 특징은, 과거에는 생계형 탈북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이제는 점차 정치적 이유의 탈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깥 세상의 물정을 모르고 그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가 국내에 입국하던 시기와 달리, 최근에는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껴 몇 번 체포되었다 다시 탈출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악착같이 한국으로 찾아오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다. 또 남한체제의 우월성에 대해 일방적으로 동조하던 경향에서 이제는 남북체제의 장단점에 대해 나름대로 소신을 이야기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출처 : 격월간 「시대정신」 2001년 7-8월호>

이렇게 탈북자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데 아직도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증언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 믿지 않는 것일까.

악의(惡意)에 찬 일부 사람들은 “탈북자들은 대개 북한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정권이 주장하는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며, 북한이 흘린 정보를 그대로 믿고 이를 사실인양 이야기한다. 탈북자 김모는 횡령을 하고 도망친 사람이며 최모는 불륜을 저질러 도망친 사람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주장이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통용되었을지 모르지만 국내 탈북자들의 숫자가 2000명을 넘어선 현시점에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수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죄를 짓고 그렇게 국경을 넘는단 말인가. 만약 그중 일부가 혹시 북한에서 형사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왔다 해도, 그것이 북한의 현실 증언에 대한 진실유무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 증언의 사실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질 것이지 왜 개인적인 험담을 앞세우려 하는 것일까.

국내에 입국하면 생중계로 귀순 기자회견이 방영되고, 아파트에 자동차, 가전제품 등을 제공하고 이를 크게 보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국내의 정보기관에 의해 미리 계획된 대로 발표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문제에 의문을 품고 일단 분석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은 좋다. 또한 탈북자들의 의견을 100% 곧이 곧대로 믿으라고 권유하고 싶지도 않다. 그중에는 분명 과장된 증언이 있을 수 있으며, 개인적 감정이 실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에서 탈북자들의 증언을 일관되게 통제하고 있을 것이란 주장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일단 수적으로 그 많은 탈북자들의 입을 단속할 수가 없다. 특히 청장년뿐만 아니라 어린애, 늙은이까지 들어오는데 어떻게 그들 한 명 한 명을 교육하면서 이렇게 말하라 저렇게 말하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과거에는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남북체제 대결에서 남한의 우월성을 국민들에게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특정 증언을 강조하라고 요구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정권은 어떻게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판에, 특별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북한을 자극할 증언을 탈북자들에게 하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정치범 수용소 등 특수한 환경에 처해있던 탈북자들을 특별히 관리하며 증언을 막는데 급급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거기다 요즘은 독립언론을 내세우는 다양한 언론단체들이 생겨났고, 이른바 진보적인 성향의 잡지들도 자유롭게 취재와 보도를 하고 있다. 조작과 과장이 있다면 날카로운 기자의 눈에 얼마든지 포착되어 폭로되었을 것이다. 몇 해 전에는, 탈북자들이 입국후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 인권유린을 당했다며 재야운동단체와 연대하여 기자회견을 한 사건도 있었다. 정보기관이 탈북자들을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탈북자들의 의견은 일부에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오늘날에는 의미 없는 질문이 되었다. 2천명이 넘는 인원을 어찌 ‘일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연령별로도 다양하고 지역별로도 북한지역 거의 모든 시, 군을 망라하고 있다. 직업도 과거에 주로 군인이나 유학생에 국한되어 있던 것이 비해, 이제는 의사, 교수, 교사, 과학자, 설계사, 농민, 무용수, 운동선수, 노동자, 광부, 기관원 등 너무도 다양하다. 최고위층에 있었던 사람도 있고,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도 있다. 해방이후의 과정부터 모두 증언할 수 있는 80 노인도 있고, 세 살배기 어린이도 있다. 이들의 증언을 모두 모으면 커다란 북한박물관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북한 일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가.

또 혹자는 더 많은 정착금과 남한에서의 지위를 바래 거짓 증언을 경쟁적으로 늘어놓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철없는 궤변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 것이다. 앞서 말했듯 어떻게든 북한 정권을 자극할 수 있는 증언을 차단하려고 하는 정부가, 북한 실정을 잔혹하게 과장한다고 정착금을 더 주고 지위를 보장해 주겠는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으로 북한 사회를 이해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누차 북한의 실정을 알려면 탈북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조해왔다. 이제는 통신이 발달되어 인터넷으로도 탈북자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탈북자동지회의 자유게시판이나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의 ‘탈북인과의 대화’ 게시판에는 연일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이들의 증언에 대해 묻고 답하는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문제에 열의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의심을 품을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 만나볼 수도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등에서 주최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봉사자로 참가하여 만나보면 된다. 감시하고 통제하지 않으니 얼마든 묻고 논쟁해도 좋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 사람들은 아우슈비츠를 탈출한 유태인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 인간을 개스실에서 그리 잔혹하게 죽이고 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 수 있느냐며, 유태인들이 나찌에 대한 투쟁을 재촉하기 위해 증언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의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지식인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한때나마 그들의 증언을 흘려 들었던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우리는 이 교훈을 새겨들어야 한다. 아직도 일부의 사람들은, 며칠동안 북한당국이 이끄는 대로 평양시내와 몇몇 사적지, 관광지를 다니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잘 믿고 감동스러워 하면서 탈북자들의 증언은 경원시 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날, 땅속에라도 숨어들고 싶을 정도로 후회될 날을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탈북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그들과 손을 잡고 북한의 민주화와 혁명을 위해 싸우자. 늦게라도 과오를 뉘우치고 새로운 길에 나서는 사람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