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남보다 잘난 맛에 산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원래 갖고 있던 능력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것이 좀 심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 잘났다는 생각이 지나치다든지,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리 존경받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데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왕자병(王子病)' 혹은 '공주병(公主病)'이라고 부른다. 또 ‘도끼병’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찍었다고 생각하는 망상에 빠져 있는 사람을 도끼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한다.

너그럽게 보아주면 이런 왕자·공주병, 도끼병이라는 호칭 역시 애정의 한 표현으로, 가족이나 학교, 직장에 이런 별명 가진 사람이 한 두 명 있는 것은 오히려 조직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좀 심각해지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까지 뒤적거리면서 그 사람을 분석해 볼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 왕자·공주병은 나르시시즘(Narcissism)으로 불린다. 알다시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의 일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신과 요정(妖精)사이에서 태어난 나르키소스는 빼어난 미소년(美少年)이었다. 그가 태어나자 어머니는 예언자를 찾아가 아들의 운명을 물었는데 그때 예언자의 말이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라고 했다고 하니 그의 불행한 최후를 암시하는 듯 하다. 숱한 처녀들과 요정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사랑의 열병을 앓게 했던 나르키소스는 결국 그 아름다움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는데, 그에게서 거절당한 처녀 중 하나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를 찾아가 “나르키소스도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네메시스는 이 부탁을 받아들여 나르키소스가 사냥하다 목이 말라 샘을 찾도록 만든다. 샘물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본 나르키소스... 그는 스스로에게 반해 그것을 만지려다 물에 빠져 죽는다. 너무 황홀해 꼼짝하지 않고 얼굴만 들여다 보다 탈진해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르시시즘의 원조인 나르키소스가 이 글을 읽는다면 펄쩍 뛸 만큼 언짢아하겠지만 북조선의 김정일씨 역시 자아도취 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다. 일전에 어느 스포츠에서 ‘왕자병이 가장 심할 것 같은 연예인’을 심심풀이 삼아 설문조사한 적이 있는데, 만약 이것을 지구인 모두에게 적용한다면 그것 역시 김정일씨를 단연 1위에 추천할 만하다. 자, 그럼 이제부터 김정일씨의 엽기 왕자병 행각을 살펴보자.

신기하도다∼ 구호나무!!

수령절대주의라는 것도 기실 왕자병의 다른 표현으로, 김정일씨의 왕자병 증상은 너무도 많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사실 <김정일 시리즈>에 연재된 글 하나 하나가 김정일씨의 왕자병 증상을 사례별로 모아 놓은 것이라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북한에는 이른바 ‘구호나무’라는 것이 있는데 일제시대에 식민지 조선의 인민들이 독립을 염원하고 김일성 가족을 찬양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산에 올라가 나무에다 각종 구호를 긁어 적었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현재 그런 나무 조각이 1만 2천여 점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이 신기한 구호나무는 북한 지방에서는 만개가 넘게 발견되었으면서도 왜 남쪽에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걸까? 거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이북 동포들만 열심히 산에서 구호를 적었단 말인가. 그리고 둘째, 이 신기한 구호나무는 1960년대에 몇 개 발견되기는 했으나 그 후로는 보이지 않다가 80년대에 김정일이 ‘구호나무를 찾으라’는 지시를 내리자마자 몇 달 사이에 수천 수만 점이 발견되었다. 숨어있던 나무조각들이 장군님의 지시에 따라 한꺼번에 “나 여기 있소”하고 소리치며 기어나오기라도 한 것일까. 셋째로 이 신기한 구호나무는 처음 발견됐던 1960년대엔 모두가 비장한 독립의지를 담은 내용이었다는데 80년대에 대대적인 발굴작업에 돌입하니 모든 글들이 김일성 가족에 대한 찬양 일색으로 변해있었다. 내용 중 몇 개만 들어다보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모시고 백두태성 찾아가는 이길에 영광 빛나라" (라선시 선봉군 백학리)

"동포들이여 백두산에 독립백두성 솟았다"(함북 연사군 신장리)

"백두산에 김일성대장 계승인 탄생"(함남 영광군 자동리)

"동포여 보느냐 듣느냐 백두산에 김대장 뜻 이을 광명성 솟았다"(평북 대관군 평화리)

"조선 미래의 광휘 백두광명성 만세"(라선시 선봉군 백학리)

"백두성 5대양 6대주 비칠 붉은 태양으로 키우자"(함남 북청군 죽상리)

더 많이 보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요만큼만 보도록 하자. 여기서 ‘김일성 대장 계승인’이나, ‘백두광명성’은 김정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김일성이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었다 한들 그 아들 태어난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1940년대부터 이 호들갑이었던가. 김정일이 기저귀차며 똥오줌도 못가릴 때에 말이다. 역시 우리민족은 위인을 알아보는 민족이라고 기뻐해야 하는 건가?

이 구호나무가 신통방통한 넷째 이유는, 50년 이상 비바람 된서리 맞으면서도 썩지 않고 고이 간직되어온 나무들이라는 사실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쓴 글들이 반세기동안 형체하나 바뀌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니! 김정일씨는 이러한 사실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주길 바란다. 이것이 세계에 알려지면 한국 나무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니 (플라스틱보다 더 내구성이 뛰어난 나무들이 아닌가!) 전세계의 제지(製紙)업체나 가구제작업체에서 서로 구입을 하겠다고 달려올 것이다. 이러한 구호나무가 지역별로 보면 함북 7400점, 함남 600점, 자강도 500점, 양강도 400점, 평양시 370점, 평남 250점에 이른다고 하는데, 바이어들을 함경북도로 불러모으면 질 좋은 나무들을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다.

남조선의 김정일 열풍?

왕자병이 여기에서만 그치면 그냥 한때의 코미디 정도로만 봐줄 수 있겠는데, 문제는 김정일씨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점에 있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에는 한때 ‘김정일 열풍’이라고 불릴 만큼 김정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증폭되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것을 ‘장군님을 따르는 남조선 인민들의 흠모의 마음’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먼저, 남한에 있는 자생적인 지하당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북한의 대남선전기구 한국민족민주전선(약칭 '한민전' 또는 '민민전')의 방송 한 토막을 엿들어보자.

제목 : 따르는 마음

역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남북공동선언발표로 감격과 환희, 김정일열풍으로 경향각지가 들끓던 때가 어제련듯 싶은데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오늘도 김정일열풍, 평양바람이 뜨겁게 불어 뭇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며칠전이었다. 퇴근길에 나는 아들애를 데리고 상점에 들렸다. 아들애는 이북의 소년단원들이 부럽다면서 늘 빨간 목수건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목수건을 사려고 매대로 가니 물건을 사러온 사람이 너무 많아 좀처럼 물건을 볼 수 없었다. 특히 천매대, 옷매대, 신발매대, 안경매대를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점원들이 물건을 파느라 뛰어다니며 즐거운 비명을 터뜨렸다.

「요샌 현대나 롯데백화점도 경제위기바람에 골머리를 앓는데 여긴 대단한 호경기이네요」 내가 매대 앞에 이르러 이렇게 말하자 「…위인을 따르는 민심덕분이지요. 그통에 우린 판매하느라 눈코뜰새 없어요.」이렇게 말하는 점원의 얼굴에는 긍지와 만족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알고보니 이 상점에서는 지난 6월 평양상봉때 위대한 김정일영수님께서 입으셨던 것과 똑같은 인민복, 잠바, 구두, 안경을 팔고 있었는데 그것을 사러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던 것이다.

점원의 말에 따르면 그분의 옷차림이 여전히 대인기여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상점을 찾아온다고 한다. 「요즘 인민복, 잠바, 구두, 색안경을 찾는 손님이 너무너무 많아요. 우린 그 덕을 톡톡히 본답니다」하며 점원은 즐거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지금 그분의 옷차림만 유행되는게 아니다. 절세의 위인이신 김정일영수님께서 보여주신 인사법과 대화법, 필체와 걸음새와 손새까지도 그대로 본받고 따르려는 위인숭배열풍이 이 땅에 세차게 불고 있다. 그분께서 지니신 만인신봉의 위대한 사상, 주체사상을 따라배우는 운동도 대학가를 비롯한 이남땅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나는 서울에서 진행된 주체사상대토론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사회각계인사들은 김정일영수님에 의해 발전풍부화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민족해방의 사상, 민족자주통일의 횃불로 격찬하면서 자주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을 이룩해갈 결의를 피력했다. 오늘 이남땅 곳곳에서 벌어지는 주체사상연구 및 보급 역시 위인숭배의 열풍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느새 목수건을 사든 아들애가 「엄마, 목수건이 곱지요」하며 이북의 소년단원들처럼 목수건을 매고 소년단경례까지 척 하는 것이었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김정일영수님께로 쏠리는 이남의 민심은 오늘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되고 있다. 나는 위대한 김정일영수님을 따르는 이남의 위인숭배열기가 곧 조국통일열기, 조국통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안고 상점문을 나섰다.

서울 사람 김영만 씨가 쓴 글이란다. 한민전의 허락 없이 인용하였으니 저작권법상 문제를 제기하고 싶으면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와 필자를 고소하기 바란다. 2001년을 마감하면서 한민전은 또 『2001년 10대 열풍』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도 남한 인민들이 한 해 동안 김정일 장군님을 열렬히 그리워하였다고 한심한 주장을 되풀이하였다. 정말 웃기는 짬뽕들이 아닐 수 없다.

2001년 6월에도 평양방송은 『남조선 컴퓨터민심보고서』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남한 대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 김정일을 찬양하는 CD가 제작되어 널리 배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알아본즉, 남한의 철없는 주사파 친구들이 이러한 CD를 제작하여 한총련 출범식이나 노동자 집회 같은 곳에서 무차별 배포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남조선의 민심이라니…. 김정일씨 자신도 이러한 보도를 보면서 얼마나 겸연쩍었을까? 허허허.

여기서 그치면 그냥 웃고 넘어가련만 엽기 코미디는 계속 이어진다. 2002년 2월 조선중앙TV는 김정일 회갑을 맞아 남한에서 제작됐다는 특별 프로그램 『임오년의 태양찬가』를 방영했다. 내용은 김정일 사진이 실린 남한의 신문, 잡지, 방송을 보여주며 김정일을 흠모하는 분위기가 남조선에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김정일을 비난하는 기사에 곁들인 사진까지도 ‘김정일 추앙’으로 묘사했다는 건데, 그 신문사 기자들이 보면 포복절도할 일이다. 김정일씨도 이러한 보도가 나오는 조선중앙TV를 보면서 낄낄낄 웃었으리라.

이런 보도가 여기서 그친다면 김정일씨에게 과도한 충성을 하는 북한 신문과 방송의 문제, 남한내 친김정일 세력의 문제로 넘길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것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김정일씨의 지지와 동의, 지시아래 진행되는 왕자병 행각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4월 조선중앙TV는 또다시 ‘평양음악열풍’이라는 20분 짜리 비디오를 방영하였다. 그 엽기적인 내용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이니 한바탕 웃고 싶으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감상하시길 바란다. (주소는 http://nk.chosun.com/media/asx/20020411.asx) 서울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집회현장에서 가정집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노동자도 농부도 지식인도 대학생도 대중가요가수도 남한에서는 지금 온통 김정일 찬양 노래를 부르는 열풍이 불고 있다고 주장하는 웃기는 비디오다. 이것이야말로 대표적인 ‘도끼병’ 증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정일씨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과 의사!

상태가 이 정도쯤 되면 심리학의 영역을 넘어서 정신분석학으로 증상을 살펴 볼만도 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심각한 왕자병 환자를 ‘자기애적 인격장애(narcisstic personality disorder)’라고 부른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 Freud)는 인간의 성장단계를 자연애 → 자기애 → 동성애 → 이성애의 네 단계로 보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유아기에 사람들은 관심의 영역이 자기자신에게 집중되어있다. 이 상태를 1차적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는데, 나중에 자라면서 관심의 영역은 자기 자신을 떠나 외부의 대상(어머니나 이성)으로 향한다. 그러나 애정생활이 위기에 직면하여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유아기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2차적 나르시시즘이다. (두산세계대백과에서 인용) 사춘기를 거치면서 누구나 이러한 2차적 나르시시즘을 약간은 거치지만 이것이 심각해지면서 편집적 도착상태에 빠지면 정신분열증의 일종이 되고 만다.

정신과에서는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진단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김정일씨는 연필을 들고 자기와 일치하는 항목에는 동그라미 표시를 하기 바란다.

①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예: 성취와 능력에 대해서 과장한다. 적절한 성취 없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을 기대한다.)

② 무한한 성공, 권력, 명석함,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하고 있다.

③ 자신의 문제는 특별하고 특이해서 다른 특별한 높은 지위의 사람(또는 기관)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는 관련해야 한다고 믿는다.

④ 과도한 숭배를 요구한다.

⑤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즉, 특별히 호의적인 대우를 받기를, 자신의 기대에 대해 자동적으로 순응하기를 불합리하게 기대한다.

⑥ 대인관계에서 착취적이다. 즉,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타인을 이용한다.

⑦ 감정이입의 결여: 타인의 느낌이나 요구를 인식하거나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⑧ 다른 사람을 자주 부러워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믿음

⑨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이나 태도

김정일씨, 몇 개나 동그라미가 표시되었는가? 아마 모든 항목에 해당할 것이다. 정신과에서는 이중 5개이상 해당하면 자기애적 인격장애 환자로 분류한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바란다. 자기애적 인격장애에 대해서 정신과 보고서는 “만성적이며 치료하기 어렵다. 중년에 위기를 맞게 되며, 특히 늙음에 직면했을 때 힘들어 한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치료전망에 대해서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치료가 가장 합당하다. 흔히 환자는 치료자를 평가절하하고 돌연히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어쩔까, 김정일씨의 병은 치료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실망만은 마시라. 환자의 재활의지만 분명하다면 전문의의 상담을 받으면서 약물치료 등을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완치가 가능하단다. 북한이 민주화되는 그날, 긴급하게 처리할 일은 김정일씨를 병원으로 모셔 가는 작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