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를 조명해 볼 때 많은 위인들이 존재해왔다. 과학, 문학, 기술, 종교, 철학, 사상 등 특정 분야에서 인류 발전을 위해 공헌한 사람으로부터 전쟁이나 폭동 등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름 없는 무명의 용사들까지. 이들은 삶의 대부분을 하나의 목표를 향해 헌신하여 인류 진보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거나, 위급한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타인 혹은 조국을 위해 바친 사람들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들의 숭고한 업적을 기려서 그들의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하거나 기념비적 건축물에 바치기도 하고 동상과 기념관 등을 만들어 후손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인류사의 큰 흐름에서 간혹 예기치 않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타인들은 전혀 인정해 주지 않는데 자기 스스로 동상 등 상징물을 만들어 자신의 업적을 알리려고 (대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노력하는 또 다른 위인(?)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독재자’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독재자들은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초 같은 역할을 한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의 인류를 죽게 한 히틀러,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수백만의 사람을 숙청한 스탈린과 폴포트 등은 상징조작을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자국민들에게 강압적 방식으로 세뇌 시켰던 독재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20세기의 위대한(?) 독재자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하는 21세기의 독재자가 있다. 다름 아닌 한반도의 반쪽 땅 북한에서 현재 권좌에 앉아 있는 김정일이다. 얼마 전까지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과 더불어 21세기 독재의 두 태양이었으나 현재는 유일무이한 하나의 태양이 되어 있다.

김정일의 상징 조작은 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하고 전무후무한 것이다. 고대 시대 왕조의 국왕도 하지 못했던 방식의 우상화가 지금껏 북한 전역과 전 부문에 걸쳐 일어나고 진행되어왔다. 학문, 산업, 기술, 문학, 예술, 교육 등을 우상화의 도구로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자연물과 각종 건축물에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을 붙이고 자기 가족을 전부 우상화하여 지명을 바꾸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름다운 바위에다 김일성 김정일의 글씨를 새겨서 후대까지 천년만년 영향을 끼칠 환경파괴를 아무 거리낌없이 자행하고 있다. 또한 어떠한 위인 혹은 독재자도 생존에 엄두도 내지 않았던 자기 이름을 붙인 ‘꽃’까지 만들게 된다. 그들 부자이름의 꽃 탄생(?)은 상징화의 일면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는 죽은 아버지의 꽃에 버금가는 아들 김정일의 꽃 즉 ‘김정일화(金正日花)’라는 식물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우상화의 결정판 '김정일화'

1988년 김정일의 46회생일 때부터 소개된 ‘김정일화’에 대하여 북한은 선전매체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김정일화는 일본 시오즈까현 가께가와시 가모창포원 주임인 가모 모도데루가 20여 년 동안 정력적인 탐구 끝에 육종해낸 새로운 품종의 꽃이다. 그는 김정일 장군님을 열렬히 신뢰하고 흠모하면서 조선식 사회주의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그이의 고마운 은정에 보답하려고 자기가 육종해낸 가장 아름다운 꽃에 김정일의 존함을 모시여 ‘김정일화’라고 이름지었다. 1988년 2월 16일에 '김정일화' 꽃을 정식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가져와 김정일 생일 때 바쳤다.”

이 꽃은 개화하는 기간이 120일이나 되어서 북한에서는 ‘불멸의 꽃’으로도 불린다. 이 식물은 남미가 원산인 베고니아를 개량해서 만든 것으로 줄기는 30∼60㎝가량이며 5∼6번째 잎사귀에서 첫 꽃이 피어서 10∼15개의 꽃이 차례로 피면서 올라간다고 한다. 이 꽃의 잎은 둥근 푸른색이고 꽃은 붉은 색을 띄고 있으며 번식력이 강해 15∼25℃의 온도만 유지하면 비교적 손쉽게 기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실제 김정일화는 조금만 가꾸기를 게을리해도 시들어버리고 번식도 굉장히 어려운 '까탈스러운' 꽃이라고 한다.) 김일성은 죽기 전에 김정일화를 보고 "새로운 꽃인 김정일화가 아주 곱습니다. 꽃이 피여 넉 달 이상 볼 수 있다니 더욱 좋습니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1988년 김정일화가 소개된 이후 북한은 ‘김일성화’와 더불어 이 꽃에 대한 우상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게 된다. 우상화의 일환으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1997년 김정일의 55회 생일부터 전시회를 열었으며 올해 2002년에는 60회생일 기념으로 대규모의 6차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올해의 '김정일화' 전시회는 ‘조선김정일화연맹’의 주관으로 이루어 졌으며 이들은 주민들의 열의를 높이기 위해서 내각 성, 중앙기관과 지방단위에 대하여 ‘김정일화 재배일꾼 강습’을 세 차례 실시하였고 연맹일꾼을 온실 등에 파견하여 꽃 재배에 관한 기술지도 사업 등을 병행하였다고 한다. 전시회에서는 김정일화 경연과 김정일화 재배 경험 발표회 등이 인민무력부를 포함한 80여 개의 단체에서 기른 1만４천300여 그루의 꽃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김정일화 재배에서 우수한 단위들과 출품자들에게 각종 상과 훈장을 수여하였다. 김정일화 키우기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의 척도로 인식되므로, 도·기관별로 매우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실시된다고 한다.

이와 아울러 북한은 김정일화의 보급을 위해서 1998년 평양 대성산 중앙식물원에 김정일화 온실을 건설한 후에 각 군마다 김정일화 온실을 짓고 있으며 현재는 전국적으로 100여 개의 온실이 지어 졌다고 한다. 특히 김정일은 이번에 김일성의 90회 생일과 자신의 60세 생일을 기념하여 ‘김일성화 김정일화 전시관’을 대동강 기슭에 건설했다. 이 전시관은 평양 대동강구역 동평양대극장 인근에 세워진 것으로 2000년 1월에 착공되었다. 조선중앙TV 에 따르면 총 부지 면적은 3만㎡, 건축면적은 1만1천600㎡ 규모에 3층 건물로 건설되며 내부시설로는 꽃 재배장과 전시 홀 그리고 중앙 홀에는 춤추는 분수를 만들고 3층까지 2개의 계단승강기(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이 전시관은 기단층에는 화강석을 붙이고 나머지 벽체와 지붕 경사면들에는 모두 반사유리를 끼워 넣게 하였고 전시관에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를 사계절 재배 전시할 수 있게 온도와 습도를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현대적인 설비들을 갖추는 등 최신식으로 건설하였다.

이러한 김정일화는 다양한 문학작품에도 우상화의 상징으로 이용된다. 김정일을 찬양하는 내용의 시와 영화, 대중가요 소재로 ‘정일봉’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중에서 박미성이 작사하고 우정희가 작곡한 ‘김정일화’는 90년대 초에 북한에서 많이 불려졌다 한다. 이 노래의 1절 가사는 <그리워 달려가는 우리의 마음처럼 / 이 강산에 붉게 붉게 피어난 꽃송이 / 아 붉고 붉은 충성의 김정일화 / 송이송이 어려있네 따르는 한마음>으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 졌다.

한낱 꽃이 사람보다 존대 받는 사회

꽃의 아름다움은 꽃 자체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그것을 기르는 사람의 정성과 사랑에 따라 더욱 강해진다고 한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일화’라고 불리는 꽃은 자신도 원하지 않았겠지만 더 이상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다.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북한의 인민들은 온실을 지어야 했고 자신들의 배를 움켜지면서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죽어갔다. 온실건설에 들어가는 막대한 경비와 인력동원 즉 온실의 꽃 하나를 키우기 위해 인민들의 피와 땀이 수없이 바쳐진 것이다. 이러한 인민들의 피와 땀을 자양분으로 김정일화는 더욱 붉은 색을 띄게 되었고 붉다 못해 핏빛에 가까운 ‘악마의 꽃’ 이 되어 버렸다.

봉건시대에 평민들은 귀족들 집의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었다. 평민이 귀족 집 말(馬) 한 마리를 실수로 죽이면 그에 상응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봉건시대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현재 북한의 김정일에 의해서 태연히 일어나고 있다. 일하는 짐승도 아닌 ‘꽃’이,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인민이 바로 사회역사의 주체라고 부르짖는 북한에서 사람보다 더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꽃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인간의 고귀한 생명과는 그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인민들보다 꽃을 소중히 하는 김정일은 '21세기의 빛나는 독재의 태양'이라고 불러도 모자랄 것이다.

지난 해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은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장에게 김정일화를 선물하였다. 그리고 북측 이산가족 중 한 명인 김수조 피바다가극단 총장이 자신이 직접 기른 김정일화 3포기를 남한에 거주하는 조카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남한에 온 김정일화는 독재의 자양분이 빠진 평범한 꽃이 될 것이다. 식물조차도 숨을 쉴 수 없는 억압적인 김정일 정권에서 그 꽃들은 자유의 공기를 마시는 행운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만약에 남한에 온 김정일화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독재의 더러운 자양분을 벗어 던지고 싶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바짝 마른 팔과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채 그들을 온실 밖에서 바라보는 슬픈 북한 인민들의 모습을 증언할 것이다. 김정일화가 거짓과 가면에 둘러싸인 아름다움을 벗어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사람에게 편안한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이름의 꽃으로 거듭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