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로 전 세계가 뜨겁습니다.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중 중국 대 터키 전을 한 탈북인과 함께 보러갔습니다. 경기를 보러 가기 전 저는 중국 팀을 응원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터키 팀을 응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중국에서 겪었던 고초와 수모를 생각하면 절대 중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분 이외에도 남한내 탈북인들에게 물으면 거의 절대 다수가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감정 정도로 아니라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국 공안들에게 체포되어 북한으로 송환된 적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북한 민주화의 과정에, 그리고 북한 민주화 이후에도 한반도와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반중(反中)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만나본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정일이 처단되고 북한이 중국 쪽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되면 북한 땅에는 반중 감정이 극에 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보여집니다. 더불어 이야기하자면 반남(反南) 감정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2

제가 뙤약볕 밑에서 손에 땀을 쥐고 '중궈 자유!(中國 加油·중국 힘내라!)'를 외치고 있던 때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중국 경찰인력과 대사관 직원의 격렬한 몸싸움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려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고 외교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한국. 결국 중국은 치외법권 지역을 짓밟고 취재기자까지 폭행하는 폭거(暴擧)를 자행하며 50대 탈북자를 경비초소로 끌고 갔습니다.

월드컵만 아니었다면 한국 국민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을 테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다행히(?) 지금 한국 사람들은 온통 축구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한국정부의 엄중한 항의에도 중국정부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중국 경찰의 폭행장면을 찍은 장면을 관영 CCTV를 통해 송출하는 것조차 강제로 막아버렸습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다음 날에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모든 책임은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아주 많은 북한 사람들이 일찍이 수 차례 북한에 송환됐다가 또 수 차례 중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많은 외국 언론들이 묘사하듯 상황이 그렇게 엉망인 것은 아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3

류젠차오 대변인님, 신문이나 제대로 보십니까? 좌우파를 막론하고 숱한 세계 언론들이 북한의 인권상황을 생생히 보도하고 있는데 이 무슨 망언(妄言)이십니까. 북한 상황이 그렇게 엉망인 것은 아니라고요? 이번 호 Keys라도 똑바로 읽어보십시오. 류젠차오 대변인은 아마도 탈북자들이 북한 땅을 떠나올 때 동구 밖까지 따라나온 어머니의 배웅 받으며 괴나리봇짐 메고 룰루랄라 휘파람 불며 중국으로 넘어오는 줄 알고 있나 봅니다. 국경 넘을 때 근무하는 경비대 아저씨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저쪽으로 가면 연길(延吉)이란다" 정중히 길 안내 받으며 넘는 줄 아나 봅니다. 그리고 체포되어 북한으로 돌아가면 보안원들이 "그동안 수고했다. 손발 씻고 이젠 고향으로 가라"고 어깨 토닥거리며 먹여주는 밥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아나봅니다. 그들이 어떤 고생을 하며 국경을 넘는지, 체포되어 돌아가면 그들에게 어떠한 운명이 다가오는지, 왜 또 다시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하는지 제발 두 눈 똑바로 뜨고 이번 호 Keys 특집기사를 읽어보십시오.

4

6월 13일 베이징 대사관에서의 사건을 우리는 임오국치(壬午國恥)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한국 소녀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사건 또한 발생했습니다. 숨진 학생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마도 남한의 일부 친북세력은 미군 장갑차 사건에는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항의 시위를 벌이며 두고두고 반미선전의 소재로 활용할 것입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국권침탈과 탈북자들의 인권문제에는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겠지요. 그리고 혹시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난민문제를 두고 북한만을 시비한다"는 예전의 그 무지몽매한 주장을 앵무새처럼 읊조릴지도 모릅니다. 또 탈북자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언론과 단체를 수구냉전세력이라 몰아붙이고 저급한 언어로 공격하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것입니다. 지난 호 Keys를 통해 말한 바 있듯 대통령 아들이나 정치인의 시시콜콜한 뒷 이야기까지 다 관심을 갖고 투쟁의 주먹 불끈 쥐던 사람들은 또 이런 문제에는 '알 수 없다'로 일관하겠지요. 머지 않은 날, 올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