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살았다

산 속에 굴을 파고 5개월 동안 살았던 양강도 청년

- 집결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 간신히 몸만 웅크릴 수 있는 곳에서 하루종일 숨어 지낸다
- 산 속에서 조선 아이들을 마주치면 서로 피한다
- 어쨌든 조선은 살기 싫은 땅이다

숨어살고 있는 양강도 청년을 만났다. 고향은 양강도 김정숙군(옛 신파군). 그곳에서 농장원을 하던 청년으로 나이는 서른 넷이다. 이름은 리길주(가명). 이 친구는 북한에서 두 번 체포되었고, 중국에서는 산 속에 땅을 파고 숨어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주로 어떤 식으로 잡히고 또 탈출하는지, 산 속에서는 어떻게 숨어 지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 친구의 말이 워낙 중구난방 식이라 전체적인 윤곽을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간단히 첫 탈북과 지금까지의 상황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인터뷰 내용 중에 다음 정리 내용과 약간 다른 점이 있으나 이것은 독자들이 양해해 주길 바란다. 산 속에서 살던 동안 길주 씨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 몰랐다. “대강 날이 풀리면 3월쯤으로, 더워지면 6월쯤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면 9월쯤으로” 생각했다 한다. 그래서 자신이 언제 두 번째로 강을 넘었는지도 헷갈려 했다. 12월이라고 했다가 뒤에는 2월이라고 하고, 나중에 재차 물으면 “아무튼 강이 꽁꽁 얼었을 때”라고 말했다.

●2000년 8월 탈북 (1차) → ●중국에 있는 삼촌 집에서 한달 가량 지냄 → ●그해 추석(9월)에 다시 북한으로 들어감 → ●국경지역에서 체포되었으나 매 맞고 돈주고 풀려남 → ●무산에 있는 어느 집에서 몸을 추스림 → ●2000년 12월 탈북 (2차) → ●2001년 2월 중국에서 밀고로 체포 → ●무산군 보위부, 안전부 → ●2001년 3월 청진 집결소 → ●호송되던 중 탈출 → ●무산에 있는 어느 집 → ●2001년 3월말 또는 4월 초, 탈북 (3차) → ●산 속에서 5개월 정도 생활 → ●현재 중국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활

- 처음에 중국에 왔을 때의 이야기를 해달라
“2000년에 왔다. 삼촌네 집에 있다가, 한 두 달 있었나…, 9월 추석인가 다시 조선으로 넘어갔다. 사실은 조선에서 너무 바쁘니까(힘드니까) 삼촌한테 도움이나 받자고 왔었는데, 삼촌이 농촌에서 살다보니 도움 받을 처지도 못되고, 그래서 중국 돈 100원인가 200원 주길래 그것 들고 강을 건넜다.”

- 그런데 어떻게 잡히게 되었나?
“새벽 2시 쯤에 넘어갔다가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산 속에 숨어 있었는데 경비대 아이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잡혔다.”

- 경비대가 어떻게 알고 덮쳤나?
“길을 모르니까 헤맸는데 뙈기 농사짓는 사람들이 산에 올라왔다가 우리를 보고 경비대에게 신고했나 보다.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잡혔다.”

- ‘우리’라니, 여러 사람이 같이 있었나?
“그때 조선 아줌마랑 같이 있었다. 삼촌 동네에 몰래 넘어온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가자 해서 길을 함께 했다. 그러다 잡혀서 짐이랑 돈이랑 몽창 떼우고 혁대 신발까지 다 뺏겼다. 잡힌 곳이 무산 근처였다.

- 잡혀서 어디로 끌려갔나?
“잡혔을 때 돈을 내 놓으라고 그래서 몸에 숨겼다. 그런데 자꾸 두들겨 패니까 나중에는 숨겼던 돈을 내 놓으면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다. 매를 수태 맞고 나중에는 또르래에 태워주겠다고 해서, 그걸 타고 무산으로 갔다. 또르래에 같이 탄 사람들이 거기서 밀수하는 아이네 집을 대주더라. 그 집에서 몸을 추스르고 한 달 후에 다시 탈북을 시도했다.”
‘또르래’는 무산 사람들이 짐을 실어 나르는 물건이다. 다른 지역에 있다는 말을 필자는 못들어 봤고 대개 무산 사람들이 만들어 이용한다. 철로 위에 합판을 놓고 레일에 맞춰 바퀴를 단 것이다. 그것을 오르막에는 밀고 올라가고, 내리막에는 타고 내려온다. 그 지방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운송수단 중 하나다. 무산군에서 연사군 사이에 철로가 있는데 이곳을 또르래를 이용해 많이 왕복한다.
- 그래서 언제 2차로 강을 건넜나?
“몸이 회복되자 10월 쯤에 건너려고 했는데, 그때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너무 불어 못건너 가겠더라. 그래서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강이 얼자 12월에 건넜다. 나무하러 가는 척 하면서 휙 건넜다.”

- 무산 그 집에서는 어떻게 그리 오래있었나?
“그 집 사람들은 중국에 친척이 있는데, 경비대랑 잘 알고 있어서 뇌물 주고 일 없이 건널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그편에 우리 삼촌 집에 들러서 돈 좀 얻어오라고 부탁했다. 100원짜리 하나 보내더라. 그 돈 갖고 살다가, 12월 18일 날 건넜다.

- 두 번째는 중국에서 체포됐다는데 어떻게 해서 잡혔나?
“딱 두 달만인 2월 19일에 잡혔다. 삼촌은 일하러 나가고 아주머니도 일하러 나가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공안이 막 들이닥치더라. 들어오자마자 중국말로 뭐라고 물어보는데 나는 중국말을 한마디도 건넬 줄 모르니까 쾡해(멍하니) 있으니 ‘가자’ 그래서 붙들렸다. 그때 아주머니가 뛰어와서 말하길 ‘꼬장(밀고)이 들어와서 잡힌 것이니 돈을 써도 빼내기 바쁘다(힘들다). 어쩌겠는가, 조선으로 건너가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끌려갔다. 거기서 하루동안 꼬박 밥을 안 주고 밤을 새운 다음에 화룡으로 끌려갔다. 거기서 이틀 정도 있다가 북한으로 호송해 가더라. 3명을 한 묶음으로 묶여서 갔다.”

길주 씨가 잡혀서 처음으로 끌려 간 곳은 중국 변방대 초소인 듯 하다. 보통 여기서는 밥을 주는데, 송환될 일이 막막해 밥이 입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길주 씨가 잡혀 간 곳은 아예 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화룡으로 옮겨지면 그곳에 변방부대 대대가 있고, 감옥도 있다. 일정기간동안 이 감옥에 있다가 어느 정도 수가 채워지면 북한으로 보낸다.

“거기서 차를 타고 로가 쪽으로 나가서 삼장세관으로 갔다. 가니까 보위부에서 나와서 대기하고 있더라. 그때 나랑 함께 끌려간 사람들이 16명이었다. 거기서 중국 족쇄 벗기고 조선 족쇄로 바꿔 채우고, 무산 보위부로 끌고 갔다. 거기서 취급(취조)받고, 먹을 것 때문에 중국으로 간 ‘일반 도강자’로 확인 받고, 군 보안부로 호송한다. 거기서 머리를 빡빡 깎고 3일 있었다. 그리고는 청진집결소로 갔다.”

- 모든 사람들이 청진 집결소로 갔나?
“아니다. 무산군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풀어주고, 우리 같은 것은 도(道)가 다르니까 집결소로 걷어 넣는다.”

이 점을 약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탈북자들이 중국 변방대에서 취조받을 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봐서 자기 고향 근처의 국경도시로 넘겨준다. 길주 씨 같은 경우는 사는 곳이 혜산 시와 가깝기 때문에 혜산 쪽으로 보내는 게 맞으나 무산 건너편에서 잡혔기 때문에 그냥 그곳으로 넘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산 안전부에서 조사를 받고 나면, 자기 주소지에 통보를 하고, 해당지역 보안원이 와서 데려가야 한다. 따라서 무산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곧장 무산 깡판(‘노동단련대’의 은어)으로 옮겨지지만 무산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모두 청진 집결소로 가 데리러 올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이 집결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탈북자들은 “이런 점에서 국경지역 아이들은 좀 혜택(?)을 받는다”고 말한다.

- 청진집결소에서는 얼마나 있었나?
“거의 20일 있었다. 거기는 신원을 확인해서 고향에 통보하는데, 보안원이 데리러 와야 나간다. 그런데 기차도 제대로 다니지 않고 특별한 노임도 없는 그 먼길을 제 돈 팔아서 데리고 갈 보안원이 어디 있겠나. 또 집결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죽어 가는 아이들이니까 부축해 가지고 가야 한다. 제 돈 들여서, 들쳐 메고 갈 보안원은 조선에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집결소 안에 들어가 있는 놈들은 일단 죽어야 한단 말이다. 먹는 건 방정치 않지…. 그 안에서 죽는 사람을 나도 여럿 봤다.”

이 말은 약간 과장된 말이긴 하지만 본질을 잘 말해주고 있다. 집결소에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은 의무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 해당 지역 보안원이 와서 데려간다. 그러나 데리러 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일부러 미적거리는 것이다. 그동안에 ‘죽어 주면’ 귀찮은 혹 하나 떼었다고 생각한다. 또 길주 씨가 말한대로, 간혹 건강상태가 아주 나쁜 탈북자라면 의도적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데려가다 죽으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길주 씨의 경험담중에 뒤이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거기서 별난 기회가 오더라. 20일쯤 있으니 양강도 무슨 리 보안원이 자기 고장 사람을 데리러 왔다. 그런데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죽는 게 내일이냐 모레냐 할 정도였다. 온 몸에 이가 부글부글하지, 누워서 입만 까닥거리지…. 그런 상태여서 자기가 업고 갈 수 없으니까 업고 갈 사람을 찾게 됐다. 그때 우리 감방에 열댓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몸 상태가 제일 괜찮게 보였나 보다. ‘야, 네가 업으라’해서 내 문건까지 찾아가지고 왔다. 나도 전혀 먹지 못한 상태에서 눈앞이 아찔거리는데 어떻게든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그 환자를 업고 철문을 나서게 되었다.”

- 그래서 거기서 바로 도망쳤나?
“먼저 무궤도전차(청진에는 무궤도전차가 다닌다. 철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바퀴로 맨 땅을 다닌다.) 역 앞까지 걸어왔다. 제 몸도 움직이기 어려운데 다 죽어 가는 애를 업고서 가자니까, 아… 너무 힘들더라. 좌우간 거기까지 가 무궤도를 탔는데, 걔(환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동상을 입었지, 얼어붙은 부분이 썩어서 벌레가 기어다니지…. 막 한심해서 이대로는 못데려가겠는지, 보안원이 이 근처에 자기 먼 친척이 살고 있다며 거기에서 하룻밤 재워 데려가자고 하더라. 그런데 그 집에 가자 환자가 갑자기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의사를 데려다 치료를 시켰지만 그날 저녁에 죽었다.

그러니 안전원이 나보고 그러더라. ‘어쩌겠는가, 죽었으니까 산에 가서 땅을 파자.’ 그런데 시내에서 산을 찾아가자면 15리 이상 떨어졌는데 거기서 시체를 메고 갈래야 갈 수도 없고, 그 친척 집에도 늙은이만 살고…. 마침내 든 생각이 집결소에 다시 가 거기 사람들 좀 동원하자는 것이었는데, 집결소에서는 ‘우린 내보냈으니까 상관없다’고 모른척 하는 거다. 결국 도 보안국에 가보자고 해서 둘이 거기로 갔는데, 보안원이 도 보안국 직일관(당직근무서는 사람)과 뭐라고 이야기하는 사이 대변보러 가겠다고 말하고 족쇄를 푼 다음 뛰었다.

그때 청진 역까지 한 40분동안 쉬지 않고 뛰었다. 거기서 기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일 들어온다 모레 들어온다는 기차는 오지 않지…, 3일 동안 굶다가 기차가 오자 몰래 탔다.”

- 기차를 타고 어디까지 갔나? 가면서 검열은 어떻게 피했나?
“무산까지 갔다. 가면서 검열을 4번 했다. 증명서 검열 2번, 차표 검열 2번. 검열 할 때마다 저 쪽에서 안전원들이 오면 승강기 밑에 숨어 있다가, 열차가 서면 빙 돌아서 다시 앞 칸으로 옮겨 타면서 무산까지 갔다. 잡힌지 딱 한 달되는 날이었다. 그때 무산에서 아는 집에 찾아 들어가니 그 집 식구들이 나를 금방 못 알아보더라. 온 몸이 너무도 못쓰게 되어서 해골처럼 보이니 ‘누군가?’하고 물어보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그때야 알더라.”

- 그렇게 몸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바로 국경을 넘었나?
“원래는 그 집에서 며칠간 보양을 받자고 들어갔는데, 식구 중 맏아들이 앓아 누워 있더라. 간에 물이차 배가 올챙이만큼 부어 올라있는데, 영 오래 살 것 같지 않았다. 한 사흘 있다가 나까지 폐를 끼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강을 건넜다.”

- 세 번째는 어떻게 건넜나?
“또다시 나무꾼 행세를 하고 건넜다. 조선에서는 쇠때바(와이어 로프)로 나무한 것을 끌고 온다. 나도 쇠때바를 얻어가지고 경비초소 앞을 쑥 지나가니까, 보초가 그냥 나무꾼인가 해서 가만있더라. 그리고 삼촌네 마을이 바라보이는 곳을 향해 훌쩍 뛰어 넘어 갔다. 그때가 3월 말이다.”
이 뒤로 길주 씨는 체포를 피하기 위해 산 속에서 숨어살았다. 그는 5-6개월 정도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로, 삼촌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개는 산 속에서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먹을 것을 찾아 민가에 내려갔다 잡히기도 하고, 벌목장에 들어가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 곧바로 산에 들어갔나?
“아니다. 처음에는 며칠 간 삼촌 집에 있었다. 삼촌 집에 들어서니 거기서도 나를 못알아 보더라. 워낙 얼굴이 못쓰게 됐으니까. 거기서 몸을 추스른 다음에 어디 가서 일 좀 하자니까 밀고가 들어왔다. 그때 무슨 일인지 경비가 대단히 삼엄해졌다. 산 속까지 수색했다. 하지만 갈 수 있는 곳은 산 속 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로 도망쳤다. 그 뒤로는 내내 거기서 살았다.”

- 산 속에서는 어떻게 숨어 있었나?
“대체로 골짜기 같은데 숨었다. 도끼와 연장을 갖고 산에 올라가서 땅을 파고, 나무 찍어서 세우고, 바닥에 짚을 깔고, 비닐 치고, 거기 들어가 살았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딱 맞는 공간이다. 굴은 개울물이 흐를만한 곳에 만든다. 물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입구는 비닐로 덮고 나뭇잎 같은 것으로 위장한다.”

- 계속 한 자리에만 있었나?
“몇 번 옮겼다. 좀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싶으면 바로 자리를 옮겼다.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겼는지 모른다.”

- 밥은 어떻게 먹었나.
“하루에 한 두끼 씩 먹었다. 삼촌이 한꺼번에 밥을 많이 갖고 올라오면 저장해 놓고 먹었다. 반찬이 없으니까 간장이나 소금, 고추장으로 대신했다. 이따금씩 달걀이나 오리알 절인 것을 가져다 준다.”

- 여름에는 고생이 많았겠다.
“내가 있었던 기간이 여름이었기 때문에 모기한테 많이 물리고, 잠도 자지 못했다.”

- 비가 오면 고생이었겠는데?
“굴 주위에 빗물 빠져 나갈 도랑을 파놓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다.”

- 산에서 살 때 다른 탈북자들을 만난 적이 있나?
“그런데 이따금 조선 아이들이 지나가다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만나면 서로 자리를 피한다. 자기가 있는 위치가 노출될까봐 그런다. 나도 그럴 때면 한번 식사를 같이 한 후에 곧바로 내 위치를 옮겼다. 부부를 만난 적도 있고…, 탈북자들을 한 4번 정도 만난 것 같다.”

- 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나보다 거기에 들어와 있은지 오래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많이 익숙해 있더라.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친척들이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

- 혹시 산짐승을 잡아 먹지는 않았나?
“짐승이 없다. 있다고 해도 내가 있는 곳에서 10미터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디 함부로 짐승들을 잡는다고 뛰어다니겠는가. 나무하러 오는 사람들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나도 바짝 엎드려야 하는데….”

그에게 “하루 종일 굴속에만 있으려니 심심했겠다”라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마당에 ‘심심하다’는 것은 얼마나 사치스런 이야긴가. 이렇게 다섯 달 넘게 지내다가 겨울이 다가오자 그는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 그렇게 고생하면서 북한에 안들어가고 중국에 있을려는 이유는 뭔가?
“솔직히 말하면 다시 들어가고픈 생각이 없다.”

- 왜?
“여기로 말하면 뭐랄까….”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딱히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쨌든 조선은 살기 싫은 땅이니까”라고 대답했다.

- 그래도 조선에 들어가면 적당히 먹고는 살수 있지 않는가?
“거기선 벌어 먹고 사는 게 너무도 힘들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무슨 장사를 하자고 해도 못한다. 혹시 남의 등이나 쳐 먹고 산다면은 모를까…? 바깥 세상에 나와보니 조선에서 듣던 거와 많이 다르더라. 그래서 ‘죽을 때 죽어도 여기가 조선보다 많이 낫다, 여기서 버티고 살아보자’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가 떠오르지 않았던 단어, 조선에는 없는데 중국에는 어느 정도 있는 것, 아니 훨씬 많은 것 - 그것은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그가 ‘자유로운 조선’에 돌아갈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