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무상치료, 무상교육은 없다

탈북 3일째인 어머니, 탈북 5년째인 딸을 만나다


- 살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
- 남북한 생활격차가 워낙 크니 남한 얘기를 아예 하지도 않는다
- 병원에 갈려면 자기 약을 사 가야 한다
-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

국경지역을 여행했다. 나무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이 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식당주인에게 “혹시 이 마을에 조선 사람 데리고 있는 집 있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꼬드겨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로 갔다. 한 조선족의 집에, 국경을 넘은지 3일 된 아주머니와 그의 딸이 있었다. 딸은 탈북한 지 5년이 넘었다. 중국에서 어느정도 돈을 번 딸이 어머니를 불러낸 것이다. 그 집에서 북한에서 아주머니가 나올 때 들고 온 송어 한 마리를 안주 삼아 독한 중국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처음엔 녹음기를 보고 긴장했던 아주머니도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시원시원 말씀을 잘 하셨다.

딸은 올해 나이 서른 둘. 어머니는 나이를 묻지 못했지만 예순 살 가까이 되어 보였다. 이 딸이 지금 중국에서 조선족과 결혼하여 살고 있다길래 처음에는 팔려온 줄 알았다. 중국에 있는 탈북여성중 상당수는 결혼을 전제로 팔려다닌다. 그러나 사실은 성적노리개와 다름없다. 재미없어지면 또 다른 데로 팔고, 나중에는 술집에 넘겨지고…. 그러나 이 여자는 다행히 조선족인 삼촌이 남편을 소개해 준 덕에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다. 한족 말(중국어)를 유창하게 잘했고, 말씨도 연변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호구(신분증)도 만들어 놓아 검문에 걸려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밝혀 둘 것은, 이런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것이다.

이 집 딸의 생활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족 말을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질문에 “숨어 지낼 때 사전을 한 권 구해 밤새워 통째로 외웠다”고 답했다. 성조(聲調)가 다양한 중국말을 독학으로 배웠다는 말에 혀가 내둘러졌다. 이야기를 해보니 기억력과 계산력도 비상했다. 고향은 양강도 갑산이다. 이미 소개했듯, 아주머니는 필자를 만나기 3일전에 강을 건넜는데, 조선족 친척이 미리 약속한 곳에 기다리고 있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데려왔다. 이것도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필자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 위해 처음에는 단답형으로 답할 수 있는 것만을 물어보았다.

- 요새 장마당 가격이 어떻게 되나?
“내 여기오기 전에 혜산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는데, 강냉이가 한 키로에 25원, 입쌀 한키로에 65원 했다.”

- 배급은 나오나?
“그저 명절 때, 2월 16일 이런 때…, 입쌀하고 조금 준다. 조선에서는 자기 도(道)에서 생산해야 노동자들도 먹고살고 그러는데 양강도 같은 산악지대는 감자만 심는 데니까, 다른 도보다는 바쁘다(힘들다).”

- 보따리 장사는 많이 들어갔는가?
“그게 없으면 못살지.”

- 기차가 빽빽하게 가는 일은 이젠 없다고 하는데?
“그전보다 좀 사람들이 다니는 율이 줄어들었다.”

- 일주일 생활을 하면 전기가 얼마나 오나?
“금년 1월 달부터 한번도 없고, 그 어간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했다. 4·15부터는 조금 풀렸다. 내가 올 때까지도 텔레비전은 어쨌든 봤다.”

- 올해 4·15 때는 배급이 어땠나?
“보름분이 나왔다. 입쌀 50프로에 밀 50프로.”

- 식량을 언제부터 안줬나?
“93년도부터 안줬는데 영 끊긴거는 94년도부터다. 90년대 들어서 주다 안주다 그랬다.”

- 텔레비전은 몇 집이나 있나?
“열 집에 네 집 정도가 없다. 60프로는 대개 텔레비전 있다.”

- 채색 텔레비전은?
“거의 없다. 채색 텔레비전을 넣은 집은, 그 집이 잘산다고 본다.”

- 냉장고는?
“백 세대에 하나쯤?”

- 세탁기는?
“그런 게 어딨나.”

- 전화는 몇 집이나 있나?
“그건 법적으로 일반 집에 못 놓게 되어있다.”

- 장마당에서 국수를 판다는데 한 그릇에 얼마 정도 하나?
“20원짜리, 15원짜리가 있다.”

- 잘 팔리나?
“녹말국수니까 여름에 시원하게 해서 판다. 감자 갈아서 면을 만든다.”

- 하루 몇 그릇이나 팔리나
“열킬로 국수 만들면 한 70그릇 될려나? 많이 팔면 하루에 한 2000원까지 들어오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땔나무값, 양념값 같은거 떼고 나면 하루에 한 400원 정도 남는다. 못 벌면 하루 100원 정도 남기도 했다.”

- 북한에서 4인 가족이 한달 사는데 생활비는 어느 정도 드는 것 같은가?
“내가 지금 4인 가족인데 들어가는게 하루에 300원 정도 된다. 그러니까 한 달에 만원 돈 들어야 한다. 돈 벌어서 나무, 부식물, 쌀 등 일체 모든 것을 사는데, 그래도 고기는 못 먹는다. 그러니까 한달에 만 5천원은 되야 넉넉하다.”

이 정도면 굉장히 장사를 잘하는 편에 속한다. 아주머니는 “그날 그날 하루 먹는 생활은 한다”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식량난 때도 별로 굶지 않고 꽤나 잘 사는 축에 끼었던 것 같다. 중국과 북한을 왔다 갔다 하며 무역을 하는 조선족 친척의 도움도 있었고, 원래 장사수완이 좋은 아주머니인 듯 했다. 북한 돈 만원이면 중국 돈으로는 400원 정도고, 한국 돈으로는 6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 병원 의약품 상태는 어떤가?
“병원에 입원해도 자기 돈이 있어야 약을 산다. 장마당에서 약을 사 갖고 들어가야지, 못 사 갖고 들어가면…, 어쨌든 병에 해당한 약을 시장에 나가서 사야 된다.”

- 약이 없으면 치료 못받나?
“그럼 좀 바쁘지(힘들지). 우리 조선은 무상치료라고 하는데 지금은 국가가 없으니까 무상치료가 없어졌다고 봐야지.”

이때 딸이 옆에서 거들었다. “나 학교 다닐 때는 일 푼 안내고 다녔는데 그후로는 없어졌다고 봐야지. 80년대 그때는 고중까지는 무조건 나온단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 없으면 학교도 못다닙니다.”

- 아주머니가 지금까지 조선에서 살아오면서 가장 형편이 나았던 때가 언제였던 것 같은가?
“나는 편안한 때가 없었건 같단 말야….”

- 최근 남한 정세 교육은 어떻게 하던가?
“한국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없다. 그저 정세에 대해 알려주는데 파키스탄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알려준다.”

- 한국에서 월드컵한다는 소식은 들었나?
“우리 같은 늙은 이들은 월드컵이라는 말 자체를 모른다. 여기 와서 들었다. 지금 북조선은 남조선과 너무 생활격차가 나고 경제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남쪽 사정을 일체 이야기하지 않는다.”

- 혹시 장사만 하니 세상 돌아가는 실정을 잘 모르는 건 아닌가
“젊은이들이 와서 국수랑 사먹으니까 대충 알고 있다. 소문을 많이 듣는다.”

- 요새 주로 듣는 소문은?
“앞으로는 자꾸 풀린다(사정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그거야 가봐야 알지. 배급 풀려봐야 풀리는지 알지, 그 전에는 못 믿겠다.”

-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준다는 소리가 있던데?
“7월 1일부터는 배급을 다 풀어주고 노임도 17배 올려준다고 했다.”

- 북한에 식량을 지원한 국제기구들이 식량 배급이 잘되는지 감시한다는데 그걸 본 적이 있나?
“그런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럴 때는 손님들이 온다고 장마당에서 국수도 못 팔게 한다.”

이제부터는 딸과 대화를 했다. 딸이 중국에 온 것은 96년이다. 필자가 묻기도 전에 그녀는 “나는 조선 이야기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삼촌이 “애는 골(머리)이 좋으니까 중국어를 잘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딸은 “그래도 자기 나라가 최고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프다. 자기나라에서 살아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기 와서는 꿈을 꿔도 잡혀가는 꿈뿐”이라고 했다. 중국 말도 잘하고 신분증도 있으니까 “이제는 뭐 나를 건드릴 사람도 없고 암만 나를 뭐라고 해봤자 거기(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북조선이 달라지면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 농촌에 있는 조선족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기르다가, 아이가 크니까 국경인근의 도시로 일하러 와 있었다.

- 5년 동안 제일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
“항상 힘들다. 그중에서 제일 어려울 때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민족이 사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날고 뛴다 하더라도, 무엇을 해보고 싶어도 여기서는 할 수가 없다. 조선족들은 북조선에서 왔다하면 무턱대고 자기네들보다 못한다 하구선 많이 무시한다.”

- 그 동안 돈은 많이 모았나
“아직 많이 못 모았다.”

-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없기는…. 내가 농촌에 살 때 조선족하고 결혼한 북조선 여자가 또 있었는데, 나랑 친구하며 지냈다. 그 친구가 지금은 한국에 가 서울에 배치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전화가 와서 한국에 와 같이 살자고 하는데, 부모님이랑 형제들만 없다면 가서 살겠는데, 그러질 못한다.”

- 탈북자들이 대사관에 들어가 한국으로 망명 신청하는 것은 알고 있나?
“알고 있다. 거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 방법 알고 있으면 선생님이 내게 이야기 좀 해 달라.”

- 그것 때문에 탈북자들이 많이 잡혀가지 않는가?
“맞다. 그러나 그 전에는 탈북자들은 안 잡아갔나? 마찬가지다.”
다시 어머니와의 대화로 옮겨갔다.

- 조선에 물품은 많아 졌나?
“여기(중국)께 많이 건너갔다. 겨울에 ‘바꾸’를 많이 한다.”

‘바꾸’라는 말은 국경지역에서 쓰는 은어다. 밀수, 또는 물건 교환이라는 말로 풀이 할 수 있겠다.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서로 물건을 바꾸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상대편을 향해 ‘바꾸!’하면 얼음으로 물건을 휙 미끄러뜨린다. 그럼 상대방도 물건을 던지는데, 이런 거래를 ‘바꾸’라고 한다.

- 겨울에 방에 불은 때는가?
“우리 집은 영업하니까 불을 땐다. 식당을 한다.”

- 보통 일반 가정집은 불을 때고 사는가?
“돈만 있으면 살지…. 나무고 탄(연탄)이고 다 사서 때니까.”

-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는 들었나? 올 봄 금강산 상봉은?
“말은 들은 것 같다.”

- 혹시 평양에 가 본 적 있나?
“작년 8월에 평양 가봤다. 여맹(조선여성동맹)에서 대표로 뽑혀 수령님 계시는 기념궁전 갔다 왔다.”

- 그곳 생활은 어떻던가?
“잘은 모르지만 거기는 배급 다 준다고 그러더라. 조선에서는 지방은 못 줘도 평양은 다 준다.”

- 학습생활총화 같은 데는 참석하나?
“일주일에 한번씩 참여한다. 젊은 아이들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자각적으로 간다.”

-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막 대한다는 말이 있던데?
“장사하면 보안원들이 단속 나와 늙은 사람들보고도 ‘이 쌍간나’ 하면서 욕한다.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이…. 도덕이란 게 영 없어졌다.”

-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도 북조선이 남조선보다 더 잘산다고 생각하나?
“그럴거다.”

이 아주머니는 ‘그럴거다’라고 했는데 대체로 나이 든 사람은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주머니의 ‘그럴거다’는 답에 딸도, 옆에 앉은 삼촌도 크게 웃었다.

장마당 가격이 어느 정도 되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물었다. 강냉이 쌀이 35원, 고추 ‘하나’에 10원, 오이 하나에 25원 정도, 고깃국밥이 최고 50원 짜리에서 100원 짜리가 있고, 국수가 10원∼15원 사이, 배추는 한킬로 45원…, 양강도는 해산물이 비싸기 때문에 문어(남한에서는 ‘오징어’)가 1000원이라고 했다. 월급 100원 받던 노동자가 17배 임금이 인상되어 월 1700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오징어 두 마리 살 돈이 안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장마당 가격을 고정시킨다고 하지만, 경제에 초보적인 발상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실제 임금인상 조치가 발표된 이루 장마당에서 장사가 별로 안된다고 했다. 북한 돈은 이제 영 통용가치가 없어졌다고도 한다. ‘반미(反美)’의 나라 조선에서 주민들사이에 가장 가치 있는 화폐로 꼽히는 것은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그려진 ‘달러(dollar)’다. 워싱턴, 제퍼슨, 링컨, 헤밀턴 등은 북한 인민들의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담겨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