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당원 할머니

공화국 여권을 소지하고 공식 입국한 35년 당원

- 이제 기차는 조금 제대로 운영된다
- 30년 전에는 내가 중국 친척을 도와주고 갔다
- 월드컵 그거, 아리랑이 샘 나서 하는 거지…
- 남조선 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가?

우연이었다. 또 어쩌면 행운이었다. 박정옥(가명) 아주머니를 만난 것은. 평안도 말투는 연변에서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워낙 틀리기 때문이다. 연길 역전에서 평안도 목소리를 들었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막 나오는 아주머니를 다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역전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무심코 두 분이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마중 나온 아주머니는 연변사람인데, 찾아온 손님은 분명히 북한 평안도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남한 말투인 걸 알고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같은 동포를 만나게 돼 기쁘다”며 이야기를 좀 나누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도 “그럼 우리 조국통일에 대해 맘 터놓고 이야기해보자”며 대화에 응했다.

이름도 물어보지 못해 필자가 이제야 ‘박정옥’이라는 이름을 붙여본 이 아주머니는 여권을 가지고 정식으로 중국에 넘어온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게 돼 필자로서는 신기하기만 했다. 아주머니 나이는 추측컨데 예순 살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이 아주머니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하나에서 알 수 있다. 아주머니는 4남매를 모두 보안원, 보위원으로 키웠다. 상당히 성분이 좋은 집안임에는 틀림없고, 자식 공부도 열심히 시킨 것 같다. 그래서 “자식 농사를 잘 지었네요”하고 말했더니 “내가 키웠나? 당이 키웠지.”라고 대답한다. 68년도에 입당 했다니 35년 정도 당원생활을 했고, 퇴직을 한 이후에도 생활총화나 학습회 같은 곳에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여권을 받기 위해 3달 동안 불려 다니며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필자를 ‘가르치시려’ 하였다. “우리 수령님 마련해주신 6·15 기치 따라 빨리 우리 민족끼리 힘 합쳐 통일 해야지”라고 말하며 대화의 앞부분은 거의 북한에서 배워온 이야기를 설교하셨다. “아주머니, 저는 북조선 동포들 사는 것이 궁금합니다”라며 대화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져가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 북한에서 원래 다니던 기업소는 어디인가?
“철도에서 일했다”

- 역전 안에서 일했는가?
“어렸을 때는 안내원을 했고 나이 들었을 때는 사무실에서 일했다.”

- 구체적으로 무슨 일하나?
“늙어서는 간단한 사무도 보고 수령님의 초상화 보위하는 일을 했다.”

- 최근에 수령님 초상화가 장군복으로 바뀌지 않았나?
“어떤 집을 가면 군복 입은 초상이 있다. 우리 수령님도 군복 입고, 김정일 동지도 군복을 입고, 김정숙 동지도 군복을 입고 있는 초상화다. 초상화가 두 개 있고 그 옆에 사업토의상(김일성, 김정일이 이야기하는 모습의 사진)을 모시는데, 그 옆에 장군복을 입고 있는 형상을 따로 모시는 것이다.

- 김정숙 동지 초상도 같이 모셔야 되나?
“3대 초상(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백두산 3대장군’이라고 한다)은 모셔도 되고 아니 모셔도 된다.”

- 이사할 땐 초상을 어떻게 다루나?
“이사해서 도배를 깨끗하게 한 다음에 초상화를 모신다.”

북한에서는 이사할 때 수령의 초상화를 걸지 않으면 입주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초상화에는 꼭 유리를 끼워야 한다. 유리를 끼우지 않은 초상화를 걸었다가는 큰 일난다. 식량난 때 초상화에 쓸 유리가 없어 교실 유리창을 도려낸 이야기, 입주하지 못해 다른 집에서 며칠동안 보낸 이야기 등을 탈북자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아주머니에게 해줬더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거 다 나쁜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했다. 식량난 때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 조국 사정이 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나쁜 사람들이 다 꾸며낸 이야기들이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통일이 되면 남보다 더 잘산다. 남조선은 농사를 하고 북조선은 공업을 해서 잘 살 수 있다.” 는 이야기만 계속했다.

- 요즘 기차는 제대로 운행하나?
“요즘 기차는 조금 제대로 운영한다. 연착이 좀 덜하다.”

- 예전에는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수가 많아 사람들이 지붕 위까지 올라탄 사진도 보았는데, 요즘에도 그러나?
“철도를 개편할데 대한 김정일 동지의 말씀이 있어서 규율을 세웠는데, 그래서 그 전보다 적어졌다.”

북한에는 전기기관차가 약 700대 정도 있다. 북한의 철도는 험한 산악지대를 힘을 내 달려야 하는 사정 때문에 대개 전력화(電力化)되어 있다. 한국처럼 내연기관 기차는 별로 없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전기기관차들이 거의 굴러가지 않는다. 전기사정도 그렇지만 전동기에 들어가는 절연지가 없어서 전동기 수리를 못하는 바람에 가동을 못한다. 이 절연지는 예전에는 소련에서 수입을 해왔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수입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기차가 가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북한 실정에 대한 어느정도 자세하게 알고 있으니 아주머니는 놀라는 듯 했다. 느닷없이 “중국에 가면 남조선 안기부 놈들이 사방에 깔렸다고 당에서 배웠다”는 말을 했고, 북한에 대한 자랑을 죽 늘어놓았다.

“우리는 2월 16일하고 4월 명절에 쌀 한키로와 사탕 과자, 술 한 병씩 주는 게 있다. 학생 아이들은 한 키로씩 사탕 과자를 선물로 준다. 나는 여기(중국)와서 살라면 못 살겠다. 왜냐면 첫째로 의료비가 들기 때문에…. 우리는 교육이랑 의료는 무상이다. 중국에서는 수술하려면 돈이 없으면 못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어도 한다. 학생복과 교과서도 무상으로 탄다. 내가 한 달에 노임을 500원 탔는데 그 돈으로 옷도 사입고 쌀도 사먹는다.”

아주머니와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속으로 어이없는 웃음이 쏟아져 나오고, 또 맘 속으로 울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 너무도 뻔한 거짓말을 한다. 한달 노임을 500원을 타다니…. 중앙당 간부도 그렇게는 안받는다. 도당책임비서도 약 250원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최근에 임금을 15배 이상 인상한다는 이야기가 많은 터라 그럴 수도 있다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하며 넘어갔는데, 나중에 경계가 풀리면서 아주머니가 스스로 사실을 말했다. 한 달 노임 500원이라는 말을 하면서 약간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내가 이런 황당한 거짓말을 하다니’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순박한 아주머니였다.

- 그런데 그렇게 잘살면서 왜 중국 친척집에 왔나?
“내가 사실 60원 노임 타 갖고 생활이 안맞지…. 그래서 도움이나 받자고 왔지….”

아…, 정말 몹씁 짓이었다. 자꾸 아주머니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 다음부터 아주머니는 비교적 진실되게 북한 실정을 이야기해 줬다. 박정옥 아주머니는 중국에 먼 친척이 있다. 자식들이 계급도 꽤 높은 보안원, 보위원들인지라 지금껏 생활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종합해본즉 최근 들어 자기 생활이 많이 어려워졌나 보다. 고지식한 이 아주머니는 그동안 장마당에서 장사도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장사밑천을 좀 마련해 보고자 중국에 온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중국에 처음 온 사람이 아니었다. 30년 전에 한번 왔고, 10여 년 전에도 왔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10년 전과 지금의 중국이 어떻게 달라졌더냐”고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이 질문이 가장 아주머니를 흔들리게 했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많이 달라졌지, 많이”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실 아주머니가 연길 역전에 도착했을 때 무척 놀랐다고 한다. 첫째로 놀란 것은 기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여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것에 놀랐고 (평생을 철도원으로 살았으니 이 부분에 가장 관심이 갔으리라), 역전에 마중 나온 친척 아주머니의 행색과 달라진 연길 역의 모습에 놀랐다 한다. 친척 아주머니를 처음에는 몰라봤다고 한다. “10여년 전보다 더 젊어진 것 같기 때문에.” 그 조선족 아주머니는 연변에서 중산층 정도의 행색이었다.

30년 전에는 어땠냐고 물으니 “그때는 중국 친척을 내가 도와주고 갔었다”고 말했다. 10년 전에 왔을 때도 도움을 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10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이다. “그 변화의 이유가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앞에 있는 물컵 만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내 가슴도 울컥 메이는 듯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의 깃발을 들고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끌어 오는 동안 북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 조선족 아주머니가 10년 전보다 더 젊어지는 사이, 연길 역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번창하는 사이, 북조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더란 말이냐.

옆에 앉아 있던 조선족 아주머니가 말했다. “언니, 한국은 이보다 더 잘산다우!” 박정옥 아주머니는 영 믿지 않았다. 필자가 “한국에서 제일 낙후한 시골 역이 여기 연결 역보다도 나을 것”이라고 하자 거짓말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너무도 미안했다. 내가 이렇게 사치스러운 것이.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아주머니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냥 중국 친척에게 돈을 빌려 조용히 목적하던 바를 이루고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갔을텐데 괜히 내가 마음을 흔들어 놓지는 않았나….’ 천기(?)를 누설한 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내가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사상이 오염되기 때문에…. 그런데 생활이 워낙 어렵다나니 온 거라고…. 내가 거기서 30년 넘게 당생활을 했기 때문에 당에서 나를 믿고 보내 줬어.”

“요새 북조선 사람들 사는 것은 좀 어떤가”하고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93년도부터 97년 사이보다는 지금 좀 나아졌다”고 했다. “요만한 땅덩이라도(뙈기밭이라도) 옥수수도 심고 부지런히 하면 살게 되지”라고 말했다. 그리고도 “수령님 대에 통일을 못했는데 우리 대에 통일 해야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도 자식들만큼은 이런 고생스러운 삶을 살지 말아야겠는데 하는 희망이 있을 뿐이다. 나는 통일이 곧 되겠지 하는 생각에 참고 산다.”라고 주문 외듯 토를 달았다.

- 한국에서 월드컵 하는 건 아나?
“월드컵을 왜 알겠는가 우리 아리랑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하는 아리랑만 잘하면 되지 않는가. 월드컵 그거 우리 아리랑 하는 게 샘 나서 만들어낸 것 아니냐.”

- 북한에서 남한에 소식을 많이 듣나?
“한국 소식 알면 안되지. 우린 그런 것 모른다.”

한일 월드컵은 북한의 아리랑이 샘 나서 하는 것이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것이 아주머니 혼자 생각인지 당에서 가르쳐 준 것인지 물었다. “당에서 배워(가르쳐) 준 것”이라고 했다. 화제를 돌려 요새 북한에서 나오는 임금인상, 토지배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북한에서 노동자들 노임을 대대적으로 올려준다는데?
“그거 선포했다. 노임을 16배로 올리고 쌀값은 국정가격을 20원으로 한다고 한다.”

- 현재 쌀은 장마당 가격이 어느 정도 되나?
“ 장마당에서는 120원이다. 예전에는 입쌀 한키로 국정가격이 1원(80전) 이었는데 노임을 높여주니까 20원으로 올리는 것이다.”

- 그것을 노동당 정책으로 올해 발표했는가?
“발표했다. 그런데 아직 당장은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 농장은 어떤 식으로 노임을 주나?
“농장에서는 분조에 땅을 주고, 중국에 있는 친척들한테 가서 비료를 가져 올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라도 농사를 자체로 지으라고 한다. 어떻게든 작업반 농장 수확고를 내라는 요구다.”

- 전국적으로 그렇게 하는가?
“몽땅 정책을 그렇게 만들었다.”

2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아주머니는 친척집으로 갔다. 아주머니는 “조국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써내야 한다”고 했다. 옆에 있던 친척 아주머니는 “이 언니는 순진해서 선생님 만난 것까지 아마 다 쓸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아주머니에게 “남조선과 북조선 여권이나 좀 바꿔서 구경하자”며 내 여권을 보여주었다. 아주머니는 무척 신기해하면서 여권 속 사진과 필자를 번갈아 보고, 속지를 뒤적거렸다.

그안에 다른 나라를 다녀온 기록이 있다며 이것은 언제 무슨 나라를 갔을 때 찍은 도장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남조선에서는 이렇게 다른 나라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돈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주머니는 필자가 한국에서 굉장히 부자이거나, 정보기관 요원쯤 되는 줄 알았다. “나는 한국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고 생활수준은 못사는 편에 속한다”고 말해주었다. 여권을 서슴없이 보여주니 그때서야 모든 경계심을 푸는 듯했다.

말로는 설명이 안되니 남한 실정이 어느 정도인지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딱히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는 서울 사진이라도 몇 장 들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갖고 다니는 디지털카메라를 보여주었다. 생각해보니 중국으로 떠나기 전 세 살 난 우리 아이의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놓은 것이 있었다. 그것을 보여주었을 때 아주머니의 표정이란…. “이거 움직이는 텔레비전이구만…”하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지금쯤 아주머니는 북한에 있을 것이다. 친척집의 도움을 받아 장사라도 시작했을지 모르지. 나중에 북한의 닫힌 문이 활짝 열리는 날, 아주머니 고향에 찾아가 자식 넷을 출세시킨 철도원 아줌마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