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원광대학교, 전북대학교, 성균관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대학생 1000여명이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자원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원광대학교를 다녀왔다. 『함께 하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주제로 장애우사랑, 아이사랑, 또 특별하게 탈북자들에 대한 사랑표현까지 참 범위도 다양했다. 책에서 배운 지식을 실천활동을 통해 현실 속에 펼쳐 놓는 대학생들의 땀방울이 그렇게 아름답고 장해 보이고 감동적일 수 없었다.

북한의 주민들은 남한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자원봉사의 개념을 모를뿐더러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남한에 온 탈북자들조차 대가나 보수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랑과 열정을 다 바쳐 헌신적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고, 성금을 모으는 행렬을 한참동안 잘 이해 못한다.

북한 당국이 겉으로는 “인민들의 일심단결”, “사회주의 대가족”을 선전하기 때문에 이러한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상당히 헌신적이고 순수하며 단결을 잘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의도적으로 북한 사회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보더라도 개인주의이고 자본주의 사회라는 남한 사회가 집단주의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 사회보다 오히려 더 온정이 넘치는 것 같다.

물론 북한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나빠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우선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오랜 시간 고통의 날들을 보내다 보니 인심이 대단히 척박해 졌다.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내 한몸 건사하기 힘든데 ‘봉사’가 다 무엇이란 말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북한의 정치조직 체제가 사람들의 노예근성을 심화시켰지 않나 생각한다. 로봇과 같이 사상을 주입하고 평생동안 관료주의적 명령 체계에 익숙해지다 보니 북한 사람들은 자주성과 창조성의 개념을 남한 사람들보다 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자주성과 창조성은 책에나 있는 이야기지 북한 주민들의 삶 속에는 한치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이 타도되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인민의 삶도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우리 민족이 원해 마음이 따뜻하고 어려울수록 서로 도우며 단결하는 민족이니, 김정일이 타도되고 정상적인 사회운영이 가능해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회복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민주화운동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와야 할텐데….

북한에도 남한대학생들의 자원봉사와 비슷한 ‘사회정치활동’이 있다. 사회정치활동은 대학생들이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본질적 내용은 남한 대학생들의 사회봉사활동과 같아도 자각적이고 적극적인 창조력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사회정치활동은 개념상 “계급적 민족적 이익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주권과 정치조직을 통하여 벌리는 사회적 활동”, 또는 “학생들이 배운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실천활동을 통해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하는 활동”으로 정의하면서 대학생들이 방학동안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을 강조한다.

북한의 대학생들의 방학은 보통 여름방학은 10∼15일, 겨울방학은 20∼30일정도 진행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학생들은 짧은 방학을 이용하여 사회정치활동을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할까? 대학생들의 방학이 다가오면 대학 당위원회의 비준 하에 ‘김일성주의청년동맹’에서는 개별적인 학생들에게 사회정치활동 강연과제를 주거나 특수한 경우 탄광, 광산, 건설장 등에 노력지원을 가도록 한다.
먼저 “강연 과제를 주어 사회정치활동에 참가시키는 경우”를 알아보자.

우선 대학 김일성주의청년동맹 조직에서는 대학생들 각자에게 ‘사회정치활동 강연자료’를 필기시킨다. 예를 들어 “김정일 장군님의 선군정치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자!”가 강연제목이라면 김정일의 말씀을 상단에 모셔 놓고 해설을 진행한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혁명은 총대로 시작되었고 총대로 완성하여야 합니다.” 등 내용에 맞는 말씀을 근거로 선군정치의 필요성, 정당성, 의의를 말하고, 끝으로 과업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나열한다.

물론 이러한 강연자료를 학생이 개인적으로 작성하는 것은 절대 금지다. 강연자료는 주로 대학의 사회학 강좌(사회학부)에서 작성하는데 작성 후에는 반드시 당 위원회의 비준을 받고 배포한다. 강연은 어디까지나 군중심리를 사로잡는 의식교양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강연자료를 준비시키지 않으면 즉흥적으로 당 정책과 위배(違背)되는 호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강연자료 필기가 끝나면 강연 후 증명을 받아올 수 있는 확인서를 지급받는다. 강연지는 본인이 방학동안을 보내게 될 집 주변의 가두인민반이나 기업소로 정한다. 이 정도 되면 “강연 과제를 주어 사회정치활동에 참가시킨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판 ‘브나로드(Vnarod)운동’이라고나 할까? 대학에서 교육받은 ‘김정일에게 충성을 바치자’는 내용의 강의를 제 고향집에 찾아가 주민들에게 똑같이 전해주고 확인 도장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대학생들이 방학기간에 이런 사회정치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은 극히 적다. 왜냐하면 우선 ‘사회정치활동’에 대한 적극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조건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한 대학생들의 방학과는 달리 북한 대학생들의 방학은 기간이 짧다. 평양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학생이 함경북도의 북부지역인 고향집까지 다녀오자면 철로 위에서 4∼6일을 보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열차운행 사정이 어려울 때는 10일 동안 헤매는 것은 보통이다. 10∼15일 기간의 여름방학인 경우 고향집에 도착해서 바로 돌아로면 방학이 끝나는 식이다.

북한의 대학생활을 남한 대학생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군대와 같이 규율이 세워져있다. 북한 대학생이들이라고, 20대의 그 젊은이들이 맘껏 놀고 싶지 않겠는가. 방학동안만이라도 지긋 지긋한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충동에 들떠있게 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자기만의 행동계획을 세워 둔다. 사회정치활동이 아무리 조직적 분공이라 하더라도 요령 있게 처리한다. 인맥이 있는 인물을 통하여 사회정치활동을 한 것처럼 인민반 또는 해당기업소의 확인증명서를 받아 거짓보고를 하는 것이다.

사회정치활동이 잘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대학생들이 사회정치활동을 하게 되면 주민들을 ‘성분 분류’를 하는 분한 북한사회의 특성상 주민들 속에 어색한 분위기만 조성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방학동안에 마을사람들에게 강연을 한다면 대학생 자식을 둔 부모 형제들은 자랑스러워할지 몰라도 일부 주민들의 속마음은 쓰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어디까지나 출신성분에 따라 대학에 선발된다. 자식에게 대학공부를 시키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은 다 같은데 출신성분이 나빠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부모, 형제, 당사자들은 대학생들의 강의가 곱게 보일까? 정말 속없고 허영심에 가득 찬 학생이라면 몰라도, 그래도 좀 똑똑하고 사람 마음 헤아릴 줄 아는 학생이라면 나서기를 꺼려하게 된다.

사회정치활동이 잘 안 되는 세 번째 이유는, 북한대학생들의 방학은 그리운 부모형제들을 볼 수 있는 만남의 기회인 동시에 당분간이라도 굶주림을 해소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자유가 있는 남한대학생들은 아무런 신분증이 없어도 국내 어디든 갈 수 있고, 학기 중에 돈을 모아 방학 때 해외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그러나 북한의 대학생들은 휴일이라 해도 통행증이 없으면 여행을 할 수 없다. 간혹 일부 대학생들이 부모형제를 만나기 위하여, 또 굶주림 해소를 위하여 위법(違法)여행을 시도하지만 단속에 걸리면 사상투쟁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위법여행을 반복하면 출학(퇴학)처분도 각오해야 한다. 방학 때는 통행증 신청이 보장된다. 그때가 되어야 자유롭게 부모 형제, 친지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방학기간을 ‘굶주림 해소기간’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북한의 대학생들에게 있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은 강압적인 규률생활과 함께 ‘굶주림’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지금의 굶주림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7, 80년대에도 북한의 대학생들은 항상 굶주림에 허덕였다. 부모가 자식을 대학으로 떠나보내며 가장 근심하는 것이 배고픔이다. 돌도 소화해낼 듯 한창나이에 대학 기숙사의 한 주먹 옥수수밥과 소금 국으로만 살자니 왕성한 혈기를 보충할 수 없다. 따라서 가정에서는 매달 자녀들에게 없는 돈 있는 돈을 다 모아 부친다. 돈이 없는 가정에서는 미숫가루나 닦은 옥수수를 돈 대신 보내기도 한다.

노동자, 농민들과 같이 월수입이 적은 가정의 자녀들은 경제적 부담이 어려워 대학입학이 가능해도 대학공부를 포기하거나 재학 중 영양실조로 대학을 중퇴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남한의 대학생들은 친구들끼리 서로 협조를 해가며 아르바이트를 하여 용돈을 해결하는 경우가 있지만 북한의 대학생들은 규정상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또 사회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직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전북지역의 대학생들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아체험을 하는 현장을 가보았다. 나흘동안 굶는 일정이었는데, 그들도 모여 앉아 잡담을 할 때 ‘입말식사’ 하는 것을 보았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을 참기 위해 “저기 있는 돌이 떡이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서로 먹을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입말식사’라 한다. 남한 대학생들이 기아체험을 하면서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입말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배고픔을 참아 가는 사람들의 표현 수법은 어디나 같은가 보다’하는 생각을 했다. 북한 대학생들이 잡담을 하면 자연히 입말식사로 번져간다. 항상 배고프니 습관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방학때가 포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다. 집에 가면 사회정치활동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소화제를 먹어가며 마음껏 포식하고 다음 학기의 육체적 부활을 꿈꾸게 된다.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요리조리 사회정치활동을 피해간다. 절대다수가 그렇다. 실제로 사회정치활동 강연을 진행한 학생은 공식적인 학생회의에서는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일반 학생들은 그런 학생을 ‘주제파악도 못하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따돌린다.

사회정치활동의 차원에서 노력지원을 가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대학생들이 방학기간에 노력지원을 하는 경우는 국가적 대상건설(국가에서 주요건설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나 경제적 의의를 갖는 탄광, 광산에 동원이 필요할 때이다. 이때에는 학생들이 자금을 모아 노동자들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작업장갑, 마치, 정대와 같은 작업공구들을 구입하여 현장을 찾아간다.

현장에는 상급 당조직에서 대학마다 부과한 작업과제가 정해져 있다. 대학에 맡겨진 작업과제를 원만히 수행하려면 대학생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당 간부들은 알고 있다. 소대(학급)앞에 맡겨진 작업과제를 수행하는 즉시 집에 갔다 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방학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방학기간에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갔다오려면 작업과제를 앞당겨 끝내야 한다. 결국 그동안 만나지 못한 부모 형제들을 하루 빨리 만나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기살기로 열심히 일한다.
이것이 북한 대학생들의 사회봉사활동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정치활동의 면모이다. 북한에서 살아보았고 지금은 남한에서 살고 있으니 자연히 남과 북을 비교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가능한 객관적으로 평가하려 애를 쓰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살펴보려 한다. 그러나 봉사활동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사회정치활동에 그리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할 것 같다. 남한의 대학생들은 관심, 취미, 이해, 욕망에 따라 자각적으로 사회봉사활동에 참가하면서 ‘더불어 사는 가치관’을 세워간다면, 북한의 대학생들은 시키면 할 수 없고 안 시키면 더욱 좋다는 ‘관료주의 요령주의적 가치관’에 적응되어 가는 것 같다.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사람들 사이 전반에 사랑과 믿음의 원리가 통하는 미래사회를 희망해 본다. 북녘 땅에도 머지않아 그런 날이 열리리라.